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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먹자골목 들머리에서 40여 년간 '할매집 감자탕' 가게를 운영해온 양지훈(사진 오른쪽)씨는 "건물주가 우리를 쫓아낸다니 배신감을 느낀다,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가게 모습이다.
 영등포 먹자골목 들머리에서 40여 년간 '할매집 감자탕' 가게를 운영해온 양지훈(사진 오른쪽)씨는 "건물주가 우리를 쫓아낸다니 배신감을 느낀다,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가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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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역 앞 영등포 먹자골목 들머리에 있는 11.55㎡(3.5평) 남짓한 '할매집 감자탕'은 오래 전부터 유명한 곳이다. 이곳을 40여 년간 운영해온 양지훈(82·가명)씨는 "국회의원들이나 연예인들도 많이 왔다"며 "사복차림으로 왔던 박태준 전 의원(현 포스코 명예회장)이나 '전국노래자랑' 끝내고 항상 들렸던 송해씨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 영등포에는 백화점이 없었다, 공업사 뿐이었다"며 "감자탕 골목으로 유명했던 영등포 먹자골목이 내 가게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 4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 막내아들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자고 했을 때 자존심을 이유로 거절했을 정도로 가게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하지만 얼마 뒤면 그는 이곳에서 쫓겨난다. 건물주가 재건축을 이유로 가게를 비워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양씨는 "40년 전, 현 건물주 유아무개씨의 할아버지와 동업자처럼 지냈다"며 "그 손자가 나를 쫓아내려고 하니, 그 배신감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가게의 보증금은 2850만 원. 이 돈을 가지고 감자탕 집을 열 수 있는 가게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양씨는 "기가 막히는 상황으로,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전했다. 김복순(70·가명)씨는 "사장님(양지훈씨)과 17년 동안 이곳에서 감자탕을 만들었다"며 "여기서 쫓겨나면 나이 때문에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살 길이라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건물주 "재건축 후 재입점도, 보상도 거절"... 상인들 "사회적 타살"

영중로6상가 재건축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건물주 유씨는 수천억 원 대의 자산가다. 그는 영등포와 노량진 일대에 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 유씨가 이곳 상가의 임차인 13명에게 2011년 6월까지 가게를 비워달라고 요구한 것은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대책위원장인 문혁(43)씨는 "지난 4월 유씨를 만나, 1년 6개월의 공사 기간 후 재입점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며 "이후 건물에서 나갈 테니, 먹고 살 수 있도록 권리금에 대한 보상금을 달라고 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임차인들의 총 권리금은 20억 원이다. 재건축을 이유로 건물주가 가게를 비워달라고 할 경우, 권리금은 모두 날리게 된다. 4월 이후 유씨는 해외에서 지내고 있다. 대책위원회는 이후 2개월 동안 어떠한 협의도 할 수 없었다. 대책위원회는 최근 유씨의 변호사를 만났지만, 변호사는 "생각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문혁씨는 "보상 없이 상인들을 내쫓는 것은 사회적인 타살이다, 수천억 원대의 부동산 자산가가 돈 때문에 동업자라고 했던 상인들을 내쫓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특히 협의조차 거절한 것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닭발집에 들어간 돈 1억5000만 원, 5개월 만에 나가라니"

서울 영등포역 앞 영등포 먹자골목 들머리에 위치한 영중로6상가 건물의 모습. 건물주 유씨는 임차인들에게 오는 6월 30일까지 가게를 비우라는 요구를 한 상황이다.
 서울 영등포역 앞 영등포 먹자골목 들머리에 위치한 영중로6상가 건물의 모습. 건물주 유씨는 임차인들에게 오는 6월 30일까지 가게를 비우라는 요구를 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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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인 중에는 영업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가게를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은 곳도 있다. 이정혁(가명·48)씨는 친구와 함께 지난해 7월 이곳 상가에서 82.5㎡ 규모의 가게를 얻어 닭발 집을 열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보증금,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등을 합쳐 1억5000만 원이다. 상당 부분은 대출금이다.

이씨는 "7월에 계약할 때는 구체적으로 재건축을 한다는 얘기가 없었다"며 "계약한 지 5개월도 안 된 지난해 12월에 나가라고 하니, 사기 당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식당은 단골을 만드는 데 3년은 족히 걸린다"며 "매일 새벽까지 일하면서 단골이 생기려고 하는데, 돈을 모두 날리고 나가야 한다니 화가 난다"고 말했다.

문혁씨는 "상가에는 부모님과 동생 가족을 포함해 10명의 생사가 달렸다"고 말했다. 문씨와 문씨의 동생은 7년 전 부모님이 운영하던 82.5㎡ 규모의 화장품 가게를 이어받았다. 부모님이 13년 전 이 가게를 얻으면서 권리금만 4억 원을 냈다. 당시 서울 강남구 수서동 79.2㎡형 아파트 4채를 살 수 있었던 돈이다.

문씨는 "최근 아버지 심장병 수술 때문에 목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2억 원가량의 권리금만 받고 가게를 내놓으려고 했다"며 "하지만 재건축을 이유로 쫓겨나면 아버지 수술비 마련이 어렵고, 나와 동생 가족 생계가 막막해진다, 가정이 파괴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건물주 유씨 쪽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유 사장이 해외에 있어 연락이 안 된다,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상인 보호?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인 상인들은 5년의 계약갱신청구권이 보장된다. 최소한 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건물주가 재건축 등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경우, 한 푼도 보상 받지 못하고 가게를 건물주에 넘겨줘야 한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경남 사천)은 이 같은 독소조항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8월 건물주가 재건축 등을 이유로 임차인들과의 계약을 해지할 경우, 보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같은해 12월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뒤, 한 번 도 논의되지 않았다.

강기갑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주택임대차보호법에만 신경 쓰느라, 많은 상인들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논의에는 적극적이지 못하다"며 "향후 다른 국회의원들과 논의해 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태그:#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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