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무서워요. 사장님 (때릴까 봐) 무서워요, 불법(될까 봐) 무서워요."

 

사업장 변경 문제로 고용센터를 찾았다가 사장이 고용센터로 온다고 하자, 탄(27)이 눈물 흘리며 한 말이었다.

 

탄은 지난 2일 사내폭행을 당해서 관련 사건을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폭행의 발단은 임금체불이었다. 탄이 일하던 회사는 급여지급일이 일정치 않았고, 한 달 늦게 나오기가 예사였다. 이에 대해 탄은 업체 사장에게 급여지급일을 묻다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업체 사장은 폭행 사건 진정에 대해 취하를 요구하고 있고, 업무 복귀를 하지 않으면 탄을 당장 불법(이주노동자)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이하로 작성된 근로계약서, 문제 없다?

 

폭행사건 진정 후 닷새째 되던 날인 7일, 임금체불과 그로 인한 폭행 건으로 고용노동부 고용센터를 찾아 도움을 호소하던 탄은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하자 근로계약서를 내놓았다.

 

그런데 해당 근로계약서는 최저임금 이하로 작성돼 있는데, 해당 근로계약서를 발급해 준 곳이 고용노동부 고용센터다. 최저임금을 감시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버젓이 최저임금 이하로 작성된 근로계약서를 발급한 것이다. 

 

이후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더욱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고용센터가 "해당 근로계약서가 최저임금 이하로 작성된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 이유는 해당업체가 고용주와 사업자 명의가 변경될 때, 현 업체가 탄을 고용 승계했는데 고용 승계 조건이 근로조건을 똑같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탄은 작년 10월에 베트남에서 김치를 제조하는 M이라는 업체와 근로계약을 작성해 입국했다. 그런데 입국 후 석 달이 지날 즈음에 사측에서 탄을 고용센터로 데려가, 새로운 근로계약을 작성하게 하고 고용센터를 통해 근로계약서를 발급받게 했다. 바뀐 근로계약서에는 업체명과 대표자 명의가 변경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탄이 이상하게 여긴 것은 똑같은 업체에서, 똑같은 사장 밑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왜 사업주와 사업체 명의가 변경됐는가 하는 점이었다. 또, 자신이 알기로는 2011년에 최저임금(4320원)이 인상된 걸로 아는데, 근로계약서에는 2010년 최저임금인 시급 4110원으로 기록돼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최저임금법에 의하면, 당해년도 최저임금 이하로 작성된 근로계약은 무효이고, 이를 어긴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고용주나 노동자간에 이의제기가 없을 경우 해가 바뀌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 근로계약은 당해년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변경된 것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2010년 입국자가 2011년도에 근무업체의 명의 변경으로 근로계약을 갱신할 때, 최저임금 역시 갱신하는 것은 물어볼 필요가 없다. 만일 고용승계를 빌미로 전년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근로계약을 작성할 경우, 결국 근로기준법을 어겨 근로계약이 무효가 된다.

 

이 부분에 대해 고용센터는 "최저임금 이하로 근로계약서가 작성되고, 그렇게 발급된 부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사업주가 사업주와 사업체 명의 변경에 따른 근로계약서 갱신을 금년 2월에 신청했지만, 사유발생일이 작년 11월이라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진정 취소 안하면 불법 만들겠다는 사장

 

그러면서 자신들의 잘못으로 최저임금 이하로 근로계약이 체결된 부분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허가제법에 의하면 고용센터는 근로기준법 위반업체에 대해서 외국인력 고용 제한 조치를,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직권으로 사업장 변경 조치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탄이 요구하는 사업장 변경을 거부하며, 폭행 사건으로 진정했으니 사건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며 사업주에 대한 제재 조치를 회피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해당 고용센터장과 해당업무 담당자들이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업주의 민원은 성가시지만, 이주노동자의 민원은 우습다는 공무원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탄이 일하던 해당업체는 폭행이나 임금체불, 최저임금 위반이 상습적으로 발생하는 업체다. 그런 업체의 경우 고용노동부가 관심을 갖고 지도 감독해야 한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가 시급 4110원, 최저임금 이하로 근로계약서를 고용센터장 명의로 발급해 준 일은 고용노동부 직원들의 근로기준법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탄 같은 경우는 해당업체 사장이 현재 폭행 사건 진정에 대해 취하를 요구하고 있고, 업무 복귀를 하지 않으면 당장 불법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는 "사용자는 폭행, 협박, 감금 및 기타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는 강제근로금지 위반이다.

 

이런 협박 전화가 담당 공무원 앞에서 진행되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현실을 보면, 담당 공무원에 대한 기본 소양 교육이 철저히 이뤄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런 현상들이 과연 말단 공무원들의 소양 부족 문제에만 기인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나치게 사업주 편의만 봐 주고, 노동자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저임금 이하의 엉터리 계약서가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서 발급된 부분에 대해, 관리감독을 해야 할 공무원들조차 전혀 대수롭지 않게 대응하는 현실이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고용현실이다.


태그:#최저임금, #고용노동부, #고용센터, #이주노동자, #근로계약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