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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 미륵산에 케이블카가 생겼다는 소식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아버진 가끔 시골에 갈 때마다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 하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부모님과 함께 노자산을 다녀올까 했지만 역시 미륵산 얘길 하시는 아버지. 우린 계획을 바꾸어 통영으로 간다. 일찍 챙겨 나섰지만 어느새 햇빛 쨍하다.

 

작년 이맘때쯤 동생 부부와 함께 담담한 마음으로 통영을 찾았던 적이 있다. 이번엔 부모님과 함께한다. 통영은 다닥다닥 붙어 앉은 건물들에 비해 도로가 너무 비좁아서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다시 와보니 길도 많이 넓혀지고 제법 변모한 것 같다. 서호시장, 중앙시장도 새로 단장을 하였고 해안도로는 더 넓어졌다. 전에 없던 건물들이 많이 보이는가 하면 개발이란 명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도 있다.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항구도시. 아름다운 뱃길 한려수도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항구도시다. 뛰어난 주위경관과 좋은 기후 때문일까. 유치환, 김춘수, 유치환의 형인 극작가 유치진, 박경리, 윤이상 등 시인과 소설가 음악가 등을 배출한 감수성이 뛰어난 곳이기도 하다.

 

통영은 육지와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된 미륵도, 그리고 150여 개 섬으로 이뤄졌다. 미륵도를 한 바퀴 도는 22km 길이의 일주도로를 통영사람들은 '꿈결 드라이브 60리'라 부른다.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은 <김약국의 딸들> 첫머리부터 통영을 그림 그리듯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다음과 같이 통영을 묘사하였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 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난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통영 주변에는 무수한 섬들이 위성처럼 산재하고 있다. 북쪽에 두루미목만큼 좁은 육로를 빼면 통영 역시 섬과 별다름 없이 사면이 바다이다. 벼랑 가에 얼마쯤 포전(蒲田)이 있고 언덕배기에 대부분의 집들이 소이버섯처럼 들앉은 지세는 빈약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연 어업에, 혹은 어업과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중략)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타관의 영락된 양반들이 이 고장을 찾을 때 통영 어구에 있는 죽림고개에서 갓을 벗어 나무에다 걸어놓고 들어온다고 한다. 그것은 통영에 와서 양반행세를 해봤자 별 실속이 없다는 비유에서 온 말일 게다.

- 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p13 중에서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주말을 끼고 있는 현충일이라 많은 인파가 몰렸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줄은 예상 못했다. 주차장에는 차를 더 이상 주차할 곳도 없고 길가에 길게 주차해 있는 차들. 마침 빈자리가 있어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미륵산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향한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미륵산 케이블카 승강장 일대에 밀집해 있다.

 

초여름 날씨에다가 북적대는 인파와 소음에 어지러울 지경이다. 매표소 앞에서 줄을 섰지만 줄도 길고 길다. 표를 끊고도 두어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로 주말부터 해금강, 외도 등 거제도의 유명 관광지를 한바퀴 순례하는 사람들이다.

 

온종일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듯하다. 케이블카를 타려면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냥 갈까도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차마 그냥 갈 수 없다. 북적대는 사람들과 소음으로 피곤해진다.

 

마침 옆에 호젓한 숲이 있다. 숲 속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조금 올라가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쉬고 있다. 우리도 나무 그늘에서 쉬며 모처럼 엄마와 도란도란 얘기 나누다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남편은 옆에 신문지 깔고 누워 낮잠을 자고 아버진 숲 속 여기저기 둘러보신다. 방송 소리 들어보니 어느새 4천 번을 넘었다. 곧 우리 차례다.

 

숲을 빠져나와서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한다. 곤돌라에 올라타자 자동으로 문이 닫히고 줄에 매달린 곤돌라, 우린 거기 의지해 미륵산 꼭대기로 향한다. 곤돌라 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어지럽다. 시선을 먼 데 두고 앉았다. 나는 이렇게 공중에 붕 떠 있는 무방비상태를 싫어한다. 다행히 10분도 채 안돼서 미륵산 꼭대기에 도착한다.

 

통영 미륵산 꼭대기까지 가는 길은 나무 계단 길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저기 조망권이 좋은 장소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한려수도 다도해와 통영시가지, 에머랄드빛 바다를 잘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미륵산 정상까지 가는 길에서 점점이 펼쳐진 섬과 바다를 뒤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길가엔 하얗게 핀 찔레꽃 향기도 짙어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더위를 환기시켜 준다.

 

올라가는 길 곳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지만 미륵산 정상에 올라보니 한눈에 드러나는 푸른 바다 빛과 바다에 흩뿌려놓은 듯한 크고 작은 섬들이 한눈에 환하다. 바다 수면은 마치 바람 한 점 없이 정지된 듯 고요해 보인다. 날씨가 흐렸다 맑았다 뿌옇게 흐려 보여 조금은 아쉽다.

 

한려수도 조망케이블카를 이용해 미륵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10대 경관은 일출, 일몰, 야솟골, 한산대첩 승전지, 봉수대, 통영 병꽃 군락지, 통영시 전경, 통영시 야경, 한려수도, 대마도 등을 꼽는다. 봉수대가 바로 눈길 아래 있고 통영 시내와 상수도1수원지, 대마도 등이 뿌옇게 보인다. 야솟골 다랑이논도 눈에 잡힌다.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과 섬들은 바다 빛과 함께 신기루처럼 아득하다.

 

미륵산 정상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이어진다. 통영에서 가장 높은 산군에 속하는 미륵산(461m)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명소 중의 하나다. 자연의 빼어난 경관을 말로 어찌 다 형용하랴. 글의 한계 표현의 한계를 절감한다. 여기 위로 있으니, 정지용의 글이 보인다. 그이도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붓의 한계를 절감했나보다. 정지용의 <통영5> 중에 있는 글이 돌비에 새겨져 있다.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 더욱이 한산섬을 중심으로 하여

한려수도 일대의 충무공 대소 전첩기를 이제 새삼스럽게

내가 기록해야 할만치 문헌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미륵도 미륵산 상봉에 올라 한려수도 일대를

부감할 때 특별히 통영포구와 한산도 일폭의 천연미는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할 뿐이다.

 

이것은 만중운산 속의 천고절미한 호수라고 보여진다

차라리 여기에서 흐르는 동서지류가 한려수도커니와

남해 전체의 수역을 이룬 것 같다.

 

후텁지근한 날씨지만 부모님은 모처럼의 나들이에 흡족한 표정이다. 조금만 차를 오래 타고 가도 내려버리거나 동행하지 않으시려 하던 아버지는 이번엔 완전히 표정이 다르다. 제일 먼저 정상에 올랐던 아버진 흡족한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라곤 하나 없다. 흐뭇! 그 자체다. 가보지 못한 곳도 많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덧붙이는 글 |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
개인: 대인(왕복) 9,000원, 소인(왕복) 5,000원/편도 대인 5,000원. 소인 3,000원
단체: 대인(왕복) 8,000원, 편도 5,000원  소인(왕복) 4,500원, 편도 2,500원
둘째, 넷째 월요일은 휴장함


태그:#통영, #미륵산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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