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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장비 내부로 극장 안에 있던 공기를 통과시켜서 
공기중의 박태리아나 세균을 살균 소독한다.
▲ 1차살균장비. 흰색 장비 내부로 극장 안에 있던 공기를 통과시켜서 공기중의 박태리아나 세균을 살균 소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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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시작 20여 분 전. 아직 아무도 입장하지 않은 영화관에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깨끗한 공기를 내뿜고 있는 공기살균정화기의 바람소리. 그리고 은은한 갈색 조명이 공간을 채운 전부다. 이 때, 영화관의 적막을 깨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이 자리가 딱 좋겠다. 여기 진짜 좋아. 팝콘 하나 더 받아올까?"

영화관 나들이에 신이 난 백혈병 환아 연희(가명, 11)가 상영관에 들어오며 말을 한다. 연희는 조혈모세포이식(골수이식) 후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게 됐다.

"어… 나… 아프니까 영화관에서 영화도 못 봤었는데… 여기 좌석이 다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처음 오는 극장 나들이에 기분이 좋은지 계속해서 아이는 말을 잇는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표정이 마냥 흐뭇하다. 지난 28일 연희네 가족은 일찍 일어나 새벽처럼 채비를 하고, KTX를 타고 극장으로 달려왔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 온 가족이 전남 무안의 집에서 용산역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연희 엄마 말에 따르면 병원에 가는 날도 이렇게 일찍 안 일어난다는데, 28일엔 오전 11시 상영시각 20분 전에 도착할 만큼 특별한 날이다.

극장 내부의 벽, 의자, 쿠션 등에 항균제를 뿌리는 2차 항균화 작업. 이때 뿌리는 항균제는 소독제와 달라서 처리 후에는 새로 들어오는 균까지도 사멸시킬 수 있다.
▲ 2차, 항균화 작업. 극장 내부의 벽, 의자, 쿠션 등에 항균제를 뿌리는 2차 항균화 작업. 이때 뿌리는 항균제는 소독제와 달라서 처리 후에는 새로 들어오는 균까지도 사멸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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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시간이 있으면 어디에서나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풍경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반인 보다 감염 위험이 높은 백혈병 환자들에겐 영화 관람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28일 토요일, 용산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백혈병 환자도 감염걱정 없이 안심하고 영화를 볼 수 있는 클린시네마 행사는 색다르다. 이 때문에 수연이 가족은 이날의 여정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

지난 28일 용산의 한 영화관에서는 한국백혈병환우회와 관동대학교 의과대학 명지병원 주최로 클린시네마 행사가 열렸다. 지금까지 수술 후 면역력이 약해진 환자들에게 영화관은 감염의 위험이 큰 공간이었다. 때문에 영화가 보고 싶어도 대부분의 환자들은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영화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28일 행사를 위해 한국백혈병환우회는 새벽 3시부터 나와 사전준비를 했고, 감염관리전문업체는 새벽 6시부터 나와 2중 3중으로 항균작업을 했다.

항균작업은 총 네 단계에 걸쳐 진행된다. 먼저 1차 살균으로 공기 중의 기본적인 바이러스나 세균을 없앤다. 2차는 항균제를 극장의 시트와 의자, 벽 등 실내 곳곳에 뿌려 새로 들어오는 세균을 막아주는 항균화 작업이다. 3차는 안정화 작업이다. 항균작업을 거친 공간에 천연 피톤치드 마이크로 캡슐 처리를 해서 살림욕장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 실내를 안정화시킨다. 4차 최종적으로 공기의 상태가 어떤지 측정을 한다. 모든 과정이 끝나면 환우들이 안심하고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비로소 조성이 된다.

극장내부 항균화 작업을 총 네 단계의 작업을 거쳐 실시하고 있다.
▲ 극장 내부 항균화 작업. 극장내부 항균화 작업을 총 네 단계의 작업을 거쳐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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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는 안전한 영화 관람을 위해서 명지병원 의료진도 영화관에 동석했고,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지하에는 구급차를 대기시켰다.

백혈병 환우회와 함께 행사를 주최한 또 다른 주최 측 명지병원의 김세철 원장은 "결핵암 환아들이 자기들도 큰 대형스크린 앞에서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팝콘 먹으면서 영화보는 것. 그것이 소원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환아들이 영화관에 가려면  항균치료를 다 해야되거든요. 공기정화장치를 다 해야해요. 그래서 6월 2일 통합 암센터 개소기념으로  환아들만을 위한 오늘과 같은 이벤트를 만들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또한 영화 시작 전 인사말을 통해서는 "어려운 걸음을 했으니, 여러분 완쾌하시고, 좋은 생활 하십시오" 라며 환아들을 격려했다.

백혈병 환아와 가족들이 쿵푸팬더를 보고 있다.
▲ 영화를 보고 있는 초청 가족들. 백혈병 환아와 가족들이 쿵푸팬더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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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자 30여 명의 소아백혈병 환아와 그 가족들은 '쿵푸팬더2'를 감상했다. 용인의 집에서 서울까지, 처음 나온 극장 나들이에 9살 수훈(가명)이는 아빠의 손을 꼭 붙잡는다. 화면에 빠져들 듯 고개를 빼고 영화를 봤다. 팬더의 모험에 숨죽여 집중하다가도 재미있는 장면에선 여지없이 곳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화가 끝나도 수훈이는 계속해서 두 팔을 휘두르고 손벽을 치며 좋아했다.

백혈병 환아와 가족들이 쿵푸팬더를 보고 있다.
▲ 영화를 보고 있는 초청 가족들. 백혈병 환아와 가족들이 쿵푸팬더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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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영이 끝나고 수훈이 아버지는 "지난 5일 어린이날에도 사람이 많은 곳에는 갈 수 없어서 집에서 보내야 되었는데 오늘과 같은 행사로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니 참 기쁘다" 고 말했다. 수훈이 또한 앞으로 같은 행사가 있다면 또 올 것이냐는 물음에 "또 오고 싶어요" 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백혈병환우회의 안기종 대표는 "오늘 행사에 참석한 대상자는 백혈병 환우와 그 가족들의 신청을 받은 후 명지병원 전현정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환자의 의학적 상태를 고려해 최종 선정했다"며 앞으로 "환우들에게 감염예방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치료 종료 후 영화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클린시네마'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영화관람 후 환자 가족들과 환우회 관계자가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클린시네마 단체사진 영화관람 후 환자 가족들과 환우회 관계자가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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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공인혜 기자는 백혈병환우회 봉사자입니다.



태그:#클린시네마, #한국백혈병환우회, #맑은누리, #명지병원, #공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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