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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부터 추진되어 온 대구미술관이 지난 5월 26일 드디어 문을 열었다. 그러나 미술계와 시민단체 등이 줄곧 제기해온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개관하여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시민들이 접근하기에 너무 외진 곳에 있다는 점, 건립 방식에 허점이 많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는 점, 소장 작품 수도 미미하다는 점, 그리고 허술한 행정처리로 인해 볼썽사나운 소송에 휘말림으로써 첫 이미지부터 나쁘게 형성되었다는 점 등등.

대구미술관. 2011년 5월 26일에 개관했다.
 대구미술관. 2011년 5월 26일에 개관했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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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에 개관한 대구미술관에 이틀 뒤인 28일 가보았다. 26일은 개관 행사일이라 작품 감상을 방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이 작용하여 포기했고, 그 이튿날인 27일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다가 결국은 토요일인 28일을 방문일로 잡았다. 그렇게 결정한 것은, 개관 직후의 첫 토요일인 28일에 가보면 대구 시민들이 이 미술관에 가지는 기대와 관심의 수준을 알 수 있으리라 판단한 때문이었다.

28일 오후 1시 조금 넘은 시각, 대구미술관 근처로 갔다. 과연 소문에 듣던 대로 어디로 가야하는지 헷갈렸다. 한때 대구미술관의 현 소재지인 수성구 시지동에 거주한 적도 있는 사람마저 이 지경인데, 초행자나 아이들이라면 어떻게 찾아오겠나, 대뜸 그런 걱정부터 들었다.

미술관의 리플릿은 대중교통 이용자에게 '대구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 하차 후 시내버스 849-1번 환승, 대구미술관 하차'와 '대구지하철 2호선 사월역 하차 후 시내버스 849, 604번 환승, 대구미술관 하차'를 접근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리플릿을 본 뒤에도, 왜 하필 이렇게 외진 곳에, 대구 시내에서 이보다 더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 달리 또 있을까 싶은 여기에다 시립미술관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줄어들지 않았다.

24분에 한 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미술관으로 오라? 한 번 버스를 놓치면 무려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다시 그 차를 탈 수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것도, 기존 도로에서 미술관까지 차가 다닐 수 있게 하려고 무려 115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새로 들여 길 공사를 한 결과라고 한다. 그만 하면 "기가 찬다"는 비판을 듣고도 남을 거품행정의 표본이 아닌가(대구미술관 개관 주제전의 이름이 <기氣가 차다 'Qi is Full'>이다).

대구미술관 전시동 입구 정면
 대구미술관 전시동 입구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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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조금 넘었을 무렵 전시동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304번째 입장객이라고 한다. '개관 이후 통산 몇 명이 입장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스템이 오늘부터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것. 어쨌든 입장객이 지나치게 적다. 성인 1인당 1천원의 입장료를 받는데, 설마 그 때문은 아니겠지?

1999년부터 10년 이상을 끌어온 대구미술관 개관인데, 시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것이 꼭 접근성 부족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개관 직후의 첫 토요일 오후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하루 1400만원씩 건설업자에게 임대료 내는 대구미술관

이 미술관 때문에 대구시는 하루에 약 1400만원, 한 달에 4억 원 이상 되는 돈을 건설업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미술관을 BTL(Build-Transfer-Lease. 건설-운영-양도) 사업으로 지으면서 향후 20년간 매년 약 50억 원(부가가치세 포함)씩 주기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 지경인데도 입장하는 시민은 이렇게 적다니!

대구직할시교육위원회가 1988년에 펴낸 <우리 고장 대구- 지명 유래>를 보면 1977년의  중앙공원(지금의 경상감영공원) 입장객 누계는 135만8461명이었다. 그 이듬해인 1978년은 144만5153명이었다. 하루 평균 약 4천명이 중앙공원을 이용하였던 것(당시 대구 인구는 약 144만 명 수준).

대구미술관 이용자 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중앙공원은 대구미술관과 비교할 만한 공간도 아니지만, 1977년과 현재의 인구 비례만 감안하더라도 하루 평균 최소 7천명 정도는 입장해야 한다. 그런데 개관 직후의 첫 토요일인 오늘 오후 2시 현재의 입장객은 불과 300명을 넘겼을 뿐이다. 하루에 1400만 원씩 건설업자에게 임대료를 지불하는데 이래도 되는 것일까. 

소장 작품 겨우 100점 넘어 "건물만 크다" 쓴소리

대구미술관은 대지면적 7만1202㎡에 건축면적 8808.27㎡, 연면적 2만1701.44㎡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 건축물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는 "건물만 그럴 듯하다"는 말이 떠돌고 있는 실정이다. 소장 작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구미술관 조감도
 대구미술관 조감도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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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불과 106점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술관 허가 기준을 채우기 위해 100점을 간신히 넘긴 것. 부산이나 광주의 시립미술관들이 2천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는 데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이다.

결국 대구미술관은 커다란 건물만 지어놓은 채 작품을 임대하여 기획전을 여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 때문인지 대구미술관이 입구에서 배부하고 있는 전시장 작품 배치도를 보아도 각각의 작품들이 대구미술관 소장 작품인지, 아니면 임대해온 작품인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해남윤씨종가소장' 등을 밝혀 임대한 것임을 드러낸 작품도 있지만, '대구미술관 소장'이라고 명기한 작품은 거의 없는 대신 상당수 작품에 아무런 표시도 없기 때문.

전시된 작품의 위치를 설명하는 안내도를 보면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을 밝혀 임대했음을 알 수 있는 작품도 있고, '대구미술관 소장'이라 부기되어 대구미술관 소장품임을 알 수 있는 작품도 있는 반면, 상당수 작품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전시된 작품의 위치를 설명하는 안내도를 보면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을 밝혀 임대했음을 알 수 있는 작품도 있고, '대구미술관 소장'이라 부기되어 대구미술관 소장품임을 알 수 있는 작품도 있는 반면, 상당수 작품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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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허술한 행정 탓으로 소송에 휘말려 있어 개관 이전부터 이미지를 구겼다. 건물을 지은 회사에서 소송을 제기한 때문. 전시장 옆의 부속동에서 결혼예식이나 컨벤션 사업 등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조건으로 민간투자사업(BTL) 계약을 했는데, 공원녹지 구역이라는 이유로 허가가 나지 않자 법정까지 시끄러워졌다.

또, 건설회사와 하청업체 사이에 공사대금 체불 문제가 발생하여 개관 직전까지 대구미술관은 시위성 현수막으로 도배가 되는 망신마저 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턱없이 부족한 소장작품 때문에 초기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실패한 판에 소송과 현수막 시위까지 겹쳐 대구미술관은 설상가상의 타격을 입고 말았던 것이다. 

시민들이 찾아가기 어렵고, 엄청난 임대료를 건설회사에 20년 동안 지급해야 하고, 소장 작품도 별로 없을 뿐더러 첫 인상까지 나쁜 대구미술관, 8월말의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부랴부랴 개관은 했지만,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지 관심 있는 시민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목하고 있다.


태그:#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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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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