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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은 깊은 산속이나 텔레비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을 타고 다니거나 기네스북에 오르지는 않았더라도,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재주로 우리를 웃게 하는 생활 속의 달인들은 얼마든지 있죠. 혼자만 알고 있기는 너무 아까운 '생활의 달인'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내겐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많은 도서관들이 있지만 모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작은도서관'은 참으로 할 말이 많은 도서관이다.

 

우선 작은도서관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원봉사자들이다. 처음 이분들을 만났을 때는 다 성향이 달라서 많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외면하고 멀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마음고생 참 많이 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는 마음으로 항상 변함없이 그들을 대하다 보니 어느새 자원봉사 아줌마들은 나의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밥도 해오고, 청국장도 해와서 도서관 밖에서 함께 점심을 나눠먹던 기억, 아르바이트비를 받았다며 피자나 통닭을 시켜 나눠먹었던 일, 일을 하다 나른해질 때면 자원봉사하는 아줌마 모두 모여 사다리타기 하며 웃고 즐거워했던 일, 참으로 다른 도서관에서 느낄 수 없을 그러한 특별한 추억들을 만들며 지내왔다.

 

봄이면 도시락을 준비해 가까운 바닷가에 나가기도 하고, 쑥을 뜯어 쑥떡도 해먹고, 매월 가까운 산을 찾아 계절의 변화를 함께 느끼며 동동주에 파전 한 접시를 놓고 일상을 얘기하기도 했다.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고 일이 생길 때마다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던 그 특별한 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정리해야 할 책이 9천 권... 이걸 언제 다 하나

 

올해 들어와 도서관 시스템을 바꿨다. 그래서 소장하고 있던 9천 권 가량의 책들을 일일이 서가에서 빼와 컴퓨터로 전산작업을 하고, 빨간 작은 스티커를 붙여서 다시 서가에 꽂아야 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도서관 사정상 휴관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도서관 운영을 해가면서 틈틈이 해야 했는데, 여간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일들을 같이 하면서 해야 하는 부담은 나뿐만 아니라 자원봉사하시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분들 중 유독 책 정리를 잘하는 분이 계신다. 일 년이 넘어도 서툴기만 한 다른 자원봉사자에 비해 이분은 남달리 손이 빠르다. 한 달의 기간을 두고 전산작업을 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나니, 유독 손이 빠르고 똑부러지게 일을 잘하는 이분이 기다려지는 건 당연하다.

 

빨간 스티커를 붙이는 손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옆에서 보고 있는 나와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며칠에 걸려서 해야 할 일을 몇 시간 만에 다 해버렸다. 3일 정도 작업을 했는데 거의 5천 권 정도를 했고, 이런 식으로 한다면 한 달이 아니라 3~4일 정도만 더 하면 모두 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앉아 쉬는 동안, 일손이 잘 맞는 자원봉사자 셋이서 휴관일인 다음 날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모처럼 도서관 쉬는 날인데 우리도 좀 쉬기로 했다. 그렇게 다들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휴관일 아침, 이른 시간에 전화가 왔다.

 

"샘! 아무리 생각해도 두 왕언니 땜에 안 되겠네요. 샘 말처럼 오늘은 쉬자고 했는데 오늘 쉬는 날일수록 일하기 편하다고 오늘 꼭 하자고 하는데 어쩌죠?"

"네에? 기어이 오늘 할라꼬요? 안 그래도 돼요. 샘, 단순한 일 같지만 그것도 오래하다 보면 어깨며 손이 저려요. 그냥 하지 말자고 해요. 아니, 내가 전화 함 해볼게요."

 

'책 정리의 달인' 말고도 뭐든지 솔선수범해서 일해주는 자원봉사자 두 분이 계시다. 도서관이 좋아서 도서관에서 봉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시는 분들이시다. 내가 전화를 했더니, 그냥 셋이서 손이 잘 맞으니 하는 데까지 하겠다고 했다. 알아서 할테니 나더러 신경 쓰지 말고 집에서 푹 쉬라고 말하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하지만 세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굳이 내가 나가지 않아도 될 것도 같았다.

 

"샘. 그라믄 샘들 믿고 전 하루 푸~욱 쉴랍니다. 안 나가도 되겠죠?"

"네에. 그라소. 우리가 해볼 테니. 일을 그렇게 두고 집에 있자니 도저히. 안 그래도 안샘도 오늘 애들 학교 보내고 집에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셋이 함 해볼게요. 신경 쓰지 마이소."

 

두 자원봉사자 분은 자녀가 다 컸고, 달인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둘이다. 그래도 일 하나는 다들 알아주는 달인 중의 달인이다. 그렇게 내심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했지만 셋이 함께 한다면 정말 믿을 만하였다.

 

달인의 손길이 닿으니, 하룻밤 사이 뚝딱

 

다음 날 아침. 3천 권이 넘는 책들을 다 작업하고, 그것도 서가마다 얼마나 반듯하게 정리해놓았던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했고, 그분들이 오후 늦게 도서관에 들렀다.

 

그냥 웃었다. 일당 주는 것도 아니고 뭐 이득이 있다고 죽을힘을 다해 이 많은 책들을 다 정리해버렸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달인은 내게 웃으면서 두 왕언니가 좀처럼 쉴 틈을 주지 않아서 고생했노라고 말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자원봉사자 분들의 도움으로, 오랜 시간 고생할거라 생각했던 작업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달인'은 나의 유일한 일 친구가 되었다. 새 책이 들어올 때마다 서가의 책들을 옮기고 위치를 바꾸어 정리하는 일은 달인 없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 역시 실감하고 있다. 책 정리, 후다닥 깔끔하게 척척 해버리는 당신이 진정한 달인이다.

 

곧 새로운 '작은도서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난 그곳으로 발령을 받아 지금 개관 준비를 하고 있다. 나와 인연을 맺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준 사람들이 생각난다. 작은 일이지만 서로 기쁨도 나누고 때론 안 좋은 일도 함께 걱정해주며 사사로이 정을 나누며 지냈던 자원봉사자들. 한 분 한 분 모두가 내게 있어 소중한 인연이다. 헤어지기 아쉽고 나만 떠나온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책 정리의 달인은 나를 따라 평일 하루 동안 책 정리를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책 정리만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노라고, 새 책이 들어오는 날 기대하시란다. 달인이 함께한다면 이제 책 정리만큼은 걱정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의 고마움에 대한 보답은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들며 해나가야 할 것이다. 부족한 나를 믿고 따라와준 분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새로운 도서관이 얼른 개관을 하고 또 다른 '달인'들과 인연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태그:#달인, #도서관, #책정리, #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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