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리아 정부가 민주화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매도하자 '시리아 시민이 테러리스트란 말인가?'라는 내용의 문구를 들고 있는 시민.
 시리아 정부가 민주화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매도하자 '시리아 시민이 테러리스트란 말인가?'라는 내용의 문구를 들고 있는 시민.
ⓒ <알 자지라>

관련사진보기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40년 넘게 다스리고 있는 나라, 시리아. 지난해 말부터 계속되는 아랍 민주화 바람은 시리아에도 불어왔다. 3월 16일(현지 시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가 시리아 남부에서 시작됐다. 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리아 정부는 시민들의 바람을 온전히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시리아 보안군은 시위대를 향해 연이어 실탄을 발포했다. 또한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하고 비밀감옥에 가둔 후 고문했다(관련 기사 : 안과의사 꿈꿨던 대통령, 국민을 쏘다).

<알 자지라> 기자 도로시 파르바즈의 시리아 비밀감옥 체험담에서 이 점은 잘 드러난다. 취재를 위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를 찾았던 도로시 파르바즈는 4월 29일 보안당국에 체포됐다가 3주 만에 풀려난 후 이렇게 전했다.

"비밀감옥의 벽에는 피 냄새가 진동했고, 그곳은 잔혹한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의 거친 비명으로 가득 찼다."

시리아군이 시위대를 짓밟는 모습을 담은 시리아 청년 아흐마드 비아시의 영상도 시리아의 현재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인디펜던트>는 아흐마드 비아시가 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후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23일 보도했다.

시리아 현지의 인권 단체들은 두 달여 동안 계속된 민주화 시위에서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1000명 이상 숨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이슬람주의자들과 외부의 지원을 받는 테러리스트'라고 시위대를 매도하면서, 이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군인과 경찰이 120명 넘게 숨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제 인권 단체 앰네스티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 24일(런던 현지 시각) 25세 시리아 대학생의 경험담이 올라왔다. 이 학생은 8일(시리아 현지 시각) 아버지(73세)와 함께 바니아(시리아 북동부)의 집에 있다가, 보안군에게 끌려가 심한 구타를 당했다. 

시리아의 오늘날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기에 이 학생이 겪은 일을 소개한다. 아래는 이 경험담의 주요 내용이다. 중간 제목은 기자가 단 것이다.

군인들이 우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몇몇 군인이 문을 두드렸다. 군인들은 장교가 우리 신분증을 보고 싶어 하니 5분 동안 자기들과 함께 가자고 했다. 우리는 군인들을 따라갔는데, (거기에는) 우리처럼 집에 있다가 군인들 손에 이끌려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소년도 보였다. 군인들은 우리를 라스 알 나바 다리 아래에 집결시켰다. 지난달에 이 다리 부근에서는 군인들과 몇몇 무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장 충돌이 벌어졌었다.

그곳에는 군용 차량뿐만 아니라 24인승 도요타 버스 5대와 31인승 마즈다 버스 1대가 있었다. 난 아버지와는 떨어져 있었다. 군인들이 내 앞에서 아버지를 때리면, 아버지도 나도 마음이 몹시 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버스에 타자, 우리를 데려간 3명의 군인이 앞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난 뒤쪽에 앉아 있었다. 그 후 버스는 알 쿠즈에 몇 분간 정차했다. 군인들은 우리를 버스에서 내리게 했다. 한 군인이 가위를 들고 (불법으로) 구금된 우리 머리카락을 아무 이유 없이, 마구잡이로 잘랐다.

군인들은 코니시 거리 끝에 있는 경기장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내가 버스에서 내리자, 군인들은 내 눈을 가리고 전선으로 손을 묶었다(난 앞쪽으로 묶였지만 몇몇은 등 뒤로 묶였다). 그러고 나서 군인들은 우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우리를 경기장의 빈 주차장에 무릎 꿇고 앉게 했다. 그곳에 수백 명이 무릎을 꿇은 채 바짝 붙어 앉아 있어야 했다.

보안군은 우리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손으로 얼굴을 힘껏 후려치고, 군홧발로 몸 곳곳(그중에서도 특히 등)을 걷어차고, 곤봉으로 우리를 두들겨 팼다.

군인들이 몇몇 사람을 무작위로 골라내더니 다른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뜨려 놓았다. 두들겨 패기 편하도록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군인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군인은 군홧발을 내 머리에 얹고, 내 얼굴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눌렀다. 군인이 물었다. "네 주인이 누구냐?" 난 답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대통령)입니다." 군인은 나를 놔줬다. 똑같은 일이 내 친구에게도 벌어졌다. 그러나 내 친구에게 다가간 군인은 군홧발로 친구의 머리를 바닥에 쾅쾅 찧었고, 친구는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다. 군인은 "네 신이 누구냐?"고 계속 친구에게 물었고, 친구가 "바샤르 알 아사드"라고 답할 때까지 놔주지 않았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 <알 자지라>

관련사진보기


군인 "네 신이 누구냐? 네 신이 누구냐구?" - 시민 "대통령입니다"

안대가 흘러내리면 군인들 중 하나가 날 때리고 다시 묶었다. 우리 중 누군가가 물을 달라고 하자, 한 군인이 우리 머리에 물병을 던지고는 마시지 못하게 했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군인들은 "바지에 싸"라고 말했다. 몇몇 사람은 나중에 내게 '바지에 쌌다'고 말했다.

난 한 남자가 '천식이 있다'며 군인들에게 애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군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오후 2시 무렵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그렇게 무릎 꿇고 앉은 채 심하게 두들겨 맞고 욕지거리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군인들은 우리에게 일어서서 각자 이름을 적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대기하고 있을 때, 군인 3명이 나와 내 사촌, 이웃과 친구에게 줄 바깥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우리는 대개 공사장에서 쓰이는 길고 두꺼운 막대기로 두들겨 맞았다. 군인 2명이 날 꽉 붙잡았고, 다른 군인 1명이 온 힘을 다해 그 막대기로 내 다리 뒤쪽을 내려쳤다. 그렇게 세 대를 맞은 후 난 쓰러졌다. 정말 끔찍했다.

이름을 적기 위해 1시간을 기다린 후 우리는 선수 기숙사로 끌려갔다. 기숙사는 복도가 길고 넓은 방도 있었다. 군인들은 우리를 한 방에 수십 명씩 우겨넣었다. 무릎을 꿇고 앉자 몸이 옆 사람과 붙었다. 보안군은 우리에게 몸을 움직여 통로를 만들라고 했다. 물론 우리 사이를 돌아다니며 두들겨 패기 위해서였다.

난 이 통로 중 하나의 끝에 있었다. 즉 그들이 손을 뻗어 두들겨 패기 좋은 곳에 있었다는 말이다. 한 군인이 내 귀를 세게 후려갈겼고, 난 그 후 두 시간 넘게 귀가 먹먹했다.

군인들은 우리를 두들겨 팰 때 턱수염이 긴 사람을 특별히 표적으로 삼는 모습을 보였다(턱수염이 긴 사람을 국가에 반대하는 이슬람주의자로 여긴 것 같다). 턱수염이 긴 사람 중 한 명은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라 뱃사람이었다. (그러나) 군인들이 얼굴을 심하게 때려, 이 사람은 피를 많이 흘렸다. 안대가 다소 위쪽으로 올라갔기에 고개를 젖히다가 난 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몇 시간 후 군인들은 우리에게 기숙사에 있던 물을 약간 주었고, 화장실에 가게 해줬다. (그러나 허용된 건) 소변뿐이었다.

소년도, 장애인도, 60대 은사도 군의 폭력을 비껴가지 못했다

군인들에게 잡혀 있는 동안 두 가지 사건이 내 마음을 몹시 상하게 했다. 하나는 내 사촌에 관한 것이다. 그는 내 친구이기도 하다. 사촌은 시력이 매우 좋지 않아 거의 앞을 보지 못한다. 사촌이 보안군에게 말했다. "난 앞을 볼 수 없어요. 내겐 장애인 신분증이 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사촌에게 다가가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사촌의 양쪽 귀 뒤편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또 하나는 열다섯도 안 돼 보이는 소년에 관한 것이다. 그 소년의 손등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다. 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보안군이 라이터로 소년의 손등을 태워서 생긴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미야 알 비르 와 알 하다마트 병원'에서 일하는 서른두 살 정도 된 의사는 심하게 두들겨 맞아 손이 부러졌다. 보안군은 그 병원이 이른바 '테러리스트'(기자 : 반정부 시위대)를 치료했다고 말했다.

내 친구는 내게 '우리가 잘 아는 선생님 옆에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 선생님은 60대셨다. (그러나) 군인들은 그렇게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심하게 때렸다. 친구는 선생님이 자신을 때린 군인들 중 2명에게 '내가 예전에 너희를 가르쳤던 은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고 내게 말했다. 그렇지만 군인들은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오후 11시 무렵, 선임장교가 들어와 이제 그만 때리라고 명령했다. 군인들은 그 명을 따랐다. 잘 시간이 되자 한 사람은 내 허벅지에, 다른 사람은 내 배에 머리를 올렸고 나도 다른 사람 복부에 머리를 두어야 했다. 그런 자세로 자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 다음날, 군인들은 우리를 두들겨 패지 않았다. 대부분은 곧 풀려날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일부는 하루 더 머물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보안군 요원 옆을 지나며 이름을 말해야 했는데, 그들의 명부에 이름이 없어야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시리아 민주화 시위에 대해 보도한 <알 자지라>.
 시리아 민주화 시위에 대해 보도한 <알 자지라>.
ⓒ <알 자지라>

관련사진보기



태그:#시리아, #아랍 민주화, #바샤르 알 아사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