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억 명을 돌파, 10년 내에 중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이 될 것이라는 인도. 그저 인도라는 곳이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다가 지난 2월, 인도의 에이즈 고아들을 살리기위해 애쓰는 한국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달 짜리 휴가를 거기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5월 5일부터 25일간 활동가들과 함께 지내며 겪은 에이즈 고아들 이야기와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 이야기는 휴가기간에도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 기자말

꼴라뿌르 교외 시롤리 마을에 사는 16세 소녀 꼬말과 사촌동생. 외숙모는 꼬말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꼬말이 사촌동생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다.
 꼴라뿌르 교외 시롤리 마을에 사는 16세 소녀 꼬말과 사촌동생. 외숙모는 꼬말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꼬말이 사촌동생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한다.
ⓒ 안홍기

관련사진보기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남서쪽 인구 50만 명 규모의 중소도시 꼴라뿌르(कोल्हापूर·Kolhapur), 뻔지강(영문표기 Panchganga)이 흐르는 시롤리 마을에 사는 9학년 소녀 꼬말(16)은 한 살 짜리 사촌동생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안아줄 수 없다.

안아주기는커녕 손도 댈 수 없다. 꼬말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이다. 꼬말의 부모는 모두 에이즈로 죽었고, 그 몹쓸 병까지도 딸에게 남겼다.

꼬말은 외할머니, 외삼촌 가족과 함께 산다. 외숙모는 꼬말이 사촌동생을 만지는 것 뿐 아니라 음식 만들기 등 조금이라도 위생과 관련된 일은 못하게 한다. 에이즈에 걸린 꼬말을 더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외숙모는 첫째 아이를 가졌다가 유산한 적이 있는데, 꼬말이 에이즈에 걸린 손으로 자신의 임신한 배를 만졌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다시 한 번 아기를 가졌을 때엔 꼬말을 귀신 보듯이 하면서 멀리했고, 이 '접촉 금지'는 꼬말의 사촌동생이 세상에 태어난 뒤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지난 5월 11일 꼬말의 집에 찾아갔을 때 외숙모는 꼬말이 시집 갈 나이가 됐다면서 적당한 혼처를 알아봐야 한다고 수선을 떨었다. 꼬말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 외숙모는 어떻게 하면 꼬말을 이 집에서 내보낼까 하는 생각뿐이다.

16세 꼬말이 강물에 뛰어든 까닭

이날도 라젠드라 라느비셰씨는 꼬말의 외숙모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꼬말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갖고 있지만, 단순한 접촉 정도로는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걸 구구절절 설명을 해줘도 고개만 끄덕일 뿐, 전혀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다.

라젠드라씨의 직장은 꼴라뿌르 시내 메리 원레스(Mary Wanless) 병원이다. '써빙 프렌즈 인터내셔널'이라는 한국 NGO가 이 병원을 재건, 에이즈로 인해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는 CHAD(Community Health And Development)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각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고민 상담도 해주고 있다.

그런데 꼬말은 지난달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달 중순 꼬말은 동네 근처를 흐르는 뻔지강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다행히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이를 보고 물 속에 뛰어들어 꼬말을 구해냈다고 한다.

CHAD팀 매니저인 아뚤 가뜨끼씨가 파악한 꼬말의 자살 기도 원인은 첫째, 외숙모와의 불화다. 자살기도 3일 전 외숙모가 꼬말의 교과서, 공책, 옷가지 등을 모두 집밖으로 내던지며 집을 나가라고 성화를 부린 일이 있었다. 둘째 원인은, 꼬말이 자신이 걸린 병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됐고, 앞으로 자신이 겪어나가야 할 일들에 대한 불안이 쌓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CHAD팀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라젠드라씨를 꼬말이 배웅하고 있다.
 CHAD팀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라젠드라씨를 꼬말이 배웅하고 있다.
ⓒ 안홍기

관련사진보기


할머니·아버지도 같이 살기 거부....미성년 노동자 소프닐

에이즈에 대한 편견은 에이즈 감염 아동·청소년들을 더욱 더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5월 13일 만난 16세 소프닐은 아버지가 살아있지만, 가족과 함께 살지 않는다. 소프닐은 꼴라뿌르 근교 시골마을의 한 호텔에 딸린 술집에서 기거하면서 새벽 1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2000루피(약 5만 원 가량)을 번다. 인도 정부는 이런 미성년 노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런 일들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소프닐은 "나는 가족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독립'의 이유를 설명하지만, 사실은 가족들이 소프닐과 함께 살기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프닐은 지금은 사망한 어머니로부터 에이즈에 수직감염 됐고, 할머니와 아버지는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프닐과 함께 살기 원하지 않는다.  

소프닐은 "학교에 다니고 싶다, 호텔에서 일하는 건 내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학교를 가기 위해선 호텔을 나와야 하고, 그러면 당장 잠 잘 곳이 없다.

수 년 전부터 인도에선 교육이 자녀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면서 교육열이 많이 높아졌다. 시골마을 도로가에서도 각종 학교·학위 관련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소프닐과 같이 에이즈로 인해 가정에서 버림받고 이로 인해 학교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에이즈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는다 해도 비참한 상황이 계속될 것은 뻔하다. 라느비셰씨와 가뜨끼씨는 어떻게 하면 소프닐이 술집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를 다니게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소프닐과 친구들. 에이즈로 인해 가족들이 같이 살기 원하지 않는 소프닐은 시골의 작은 호텔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 호텔에서 일하는 건 내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프닐과 친구들. 에이즈로 인해 가족들이 같이 살기 원하지 않는 소프닐은 시골의 작은 호텔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 호텔에서 일하는 건 내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 안홍기

관련사진보기


주사 바늘 하나 때문에 졸지에 고아된 수짓

와날리(Vhanali)의 13세 소년 수짓은 에이즈로 인해 정말 많은 일을 겪은 아이다.

수짓의 아버지에게는 4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수짓의 아버지를 포함해 형제 중 2명이 에이즈로 죽었다. 원인은 인근 3개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진료하는 의사가 주사바늘을 바꾸지 않은 탓에 이 의사에게 주사를 맞은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에이즈에 걸리는, 어처구니없는 일 때문이다.

수짓의 가족들 모두 감염됐고, 결국 수짓만 남기고 모두 에이즈로 죽었다. 수짓은 큰아버지 집에서 살았지만, 큰아버지의 부인이 죽고 둘째부인이 들어오면서 구박을 받았고, 결국 고아원에 들어가게 됐다.

주사바늘 하나 때문에 수짓의 가족들 모두가 에이즈에 감염됐고, 결국 수짓만 남기고 모두 죽었다.
 주사바늘 하나 때문에 수짓의 가족들 모두가 에이즈에 감염됐고, 결국 수짓만 남기고 모두 죽었다.
ⓒ 안홍기

관련사진보기

어느 날 가게에서 도둑질을 한 것이 발각된 수짓은 야단을 맞을까봐 고아원에서 도망치고 만다. 이후 수짓은 마을을 돌면서 노숙을 하다가 결국 어느 농가에서 목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에이즈에 걸린 소년이 에이즈 바이러스 억제제를 끊은 채 비위생적인 숙소와 힘든 목동 생활을 버텨낼 리가 없었다. 결국 4개월 만에 피골이 상접하고 피부에선 피가 흘러내리는 정도로 상태가 악화돼 그 농가에서도 쫓겨나고 말았다.

갈 곳이 없었던 수짓은 결국 큰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 집에서 수짓을 반기는 이는 오로지 큰아버지 첫째부인의 아들 싸따빠씨 뿐이었다. 싸따빠씨의 돌봄 속에 수짓의 상태는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싸따빠씨에게도 고민이 생겼다.

싸따빠씨는 지난달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에겐 수짓이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다. 아내가 에이즈 환자와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을 안다면 도망가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CHAD팀과 싸따빠씨는 메리 원래스 병원 내 에이즈 고아들을 돌보는 '조이풀홈'에서 지낼 수 있도록 수짓을 설득하는 중이다.

에이즈 환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낙인과 차별

인도에도 에이즈 고아원이 있지만, 시설이 열악한데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도 충분치 않다. 그래서 에이즈 고아들에게 조부모나 친척이 있을 경우, 아이들을 돌보도록하고 그들에게 에이즈의 감염경로와 예방법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CHAD팀의 설명이다. 

라젠드라씨는 "아이를 조이풀홈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좋지만, 부양 가능한 친척이 있을 경우엔 그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게 하는 것도 좋다"며 "그렇게 하면 한 아이만 돕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돕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척들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엔 꼬말, 소프닐, 수짓의 경우처럼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편견은 결국 에이즈 환자들을 다시 들판이나 거리로 내몰고 이는 결국 에이즈 환자들을 음지로 숨게 만든다. 

UN 에이즈 계획 (UNAIDS)은 2010년 보고서에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에 대해 "차별적이고 부당할 뿐 아니라 HIV를 음성화하고 HIV예방, 치료, 돌봄과 지원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면서 에이즈 퇴치의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설정했다. 에이즈 환자의 인권을 적극 보호하는 것이 결국 에이즈 퇴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시골 마을에선 에이즈 환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이웃으로부터 '부정한 사람','더러운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아뚤씨는 "어린이가 수직감염된 경우에 대해서는 '감염된 부모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것만으로도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아이들이 에이즈에 감염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같이 사는 친척들에게는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사실들을 알리고 교육해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태그:#에이즈, #고아, #인도, #차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