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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법정 스님의 의자> 중 한 장면.
 다큐멘터리 <법정 스님의 의자> 중 한 장면.
ⓒ KBS미디어·포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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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내가 살던 집 뒤로는 약 이백 미터 거리를 두고 가파른 달동네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 달동네의 옹기종기 모인 불빛 사이엔 조그만 절이 한 채 끼어 있었다. 평지의 주민들은 마치 그곳을 불가촉천민들의 움막처럼 도외시했는데, 그 절의 주지인 묘행 스님(가명)은 신도들의 대부분을 이루는 달동네 주민들과 더불어 화목한 화엄세상을 가꿔 나갔다.

그 시절 도시 곳곳에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크게 위반하는 군중집회가 자주 열렸고 거기에서도 묘행 스님은 천진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자주 앞자리에 계셨다. 그런데 집이 가까워 자주 그곳을 드나들게 되면서 묘행 스님과 나 사이엔 미묘한 갈등의 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스님은 나를 자꾸 머리 깎고 자신의 상좌가 되라고 회유하기 시작했는데, 스님은 짧지 않은 법랍에도 법통을 이어갈 상좌가 아직 한 명도 없었다.

번쩍이는 속세의 네온사인과 주변에 얼쩡거리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딱딱한 계율과 엄격한 금기만이 유일한 지침인 불제자의 세계로 출가할 의향이 추호도 없었던 나는 스님의 엉뚱한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렇지만 스님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나를 자신의 상좌로 만들기를 무척 희망하셨다.

주변의 음전하고 방정한 아가씨들 다 놔두고, 성격도 차분하지 못하고 품행이 다소곳하지도 않은 내게 왜 자꾸 출가를 하라는 건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주변 선후배들은 각자 미묘하게 얽힌 현실적 이해관계 때문에 나를 스님 밑으로 밀어 넣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내게 왜 자꾸 출가하라는 건지... "얘, 긴말 말고 머리 깎아버려!"

청암사 뜰 앞. 꽃이 참 예쁘지요?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곳이에요.
 청암사 뜰 앞. 꽃이 참 예쁘지요? 청암사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는 곳이에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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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심심사(가칭)로 출가만 해라, 이제 심심사는 우리가 접수한다. 수시로 와서 머리도 식히고 모여서 차도 마시면서 담소 나누고 회의 장소로도 그만이지. 여차하면 숙식도 해결될 테고. 우리한테는 근사한 아지트가 하나 거저 생기는 거지. 얘, 긴말 말고 머리 깎아버려. 속세에 뭔 미련이 있다고. 네가 출가하면 스님 맏상좌가 되는 거야. 스님들 위계질서 그거 무시 못한다 너."

"달랑 상좌 한 명에 맏상좌는 무슨. 그렇게 좋으면 언니가 하지 왜 나한테 머리를 깎으래?"

"나? 안 돼야 나는. 술 못 마시면 극락도 난 지옥이다. 그리고 내가 좀 게으르니?"

그런가 하면 후배 S의 논리는 훨씬 더 정연하고 현실적이었다.

"언니, 비구니치고 묘행 스님만큼 진보적인 스님도 드물어. 그니까 언니가 묘행 스님이랑 의기투합해 가지고 심심사를 환상적인 사회 참여적인 비구니 사찰로 만드는 거야.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근거지도 되는 거지. 상좌 한 명 없이 스님 혼자서 활동하시랴 절 살림 꾸리시랴 힘드시잖아. 언니랑 스님은 인연인가봐 인연. 스님이 한사코 언니만 상좌 삼겠다잖아."

"인연은 무슨…. 가까이 살아서 만날 부딪치니까 나만 갈구시는 거지. 야, 그리고 우습지 않니? 집이 바로 지척인데 어떻게 이백 미터밖에 안 되는 절로 출가를 한대. 그렇게 스님이 존경스러우면 네가 출가해서 환상의 비구니 사단을 이루던가."

"안 돼! 난 아침잠이 많아서. 새벽에 일어나는 건 진짜 싫어. 나 은근히 겁도 많다, 언니. 아무도 없을 때 절에 혼자 있는 거, 아휴, 무서워."

자신들은 갖가지 이유들로 세속을 버릴 수 없고 대신 만만한 나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심정으로 이 한 몸바쳐 주변을 두루 이롭게 하라는 요지의 말들이었다.

전직 교사 출신 묘행 스님은 특유의 완벽하고 깔끔한 성품으로 많은 존경을 받았지만 슬하의 상좌가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왔다가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하산해 버리는 여성들 때문에 스님의 상심은 커져만 갔고 그때마다 내게 '너, 내 상좌 되어라'는 요구를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하셨다. 시내 모 사찰의 비구 스님은 명성을 듣고 몰려드는 출가 희망자들로 인해 더 이상 돌려 지을 항렬자가 거덜 나서 법명을 짓는 데 고민을 할 지경이라는데, 묘행 스님은 죽 인력난에 허덕였다.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스님이 좀 깐깐하시니? 맑은 물에는 고기가 안 꼬이는 그런 이치인 거지."
"스님도 시대에 맞춰 행자교육 방식을 바꿔야 해. 신세대 행자들을 빡빡한 계율로만 다스리려고 하니 누가 배겨나나. 융통성 있게 하시면 좋으련만. 그나저나 스님이 완만하게 활동하시려면 상좌가 한 명 꼭 들어와야 할 텐데. 일단 우리 나가서 술이나 한잔하면서 그 문제를 좀 더 고민해 보자."

철모르는 경상도 아가씨가 행자로 들어오다

비구니들이 후두둑 떨어진 동백꽃을 모아들고 환하게 웃는다.
 비구니들이 후두둑 떨어진 동백꽃을 모아들고 환하게 웃는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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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심심사에 또 철모르는 경상도 아가씨 한 명이 행자로 들어왔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정탐의 임무를 띠고 나는 즉각 심심사로 파견되었다. 서늘한 눈빛의 소박한 아가씨가 아직 자르지 않은 커트 머리에 품이 큰 법복을 입고 공양간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순박한 행자의 모습을 보자 왠지 예감이 좋았다. 그리고 좋아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나는 여기저기에서 원치 않는 출가 압력에 시달릴 것이고 스님 대하기도 불편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행자 과정을 무난히 통과하고 수계 의식을 치르는 상좌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처지에, 그 지난한 좌절을 번번이 경험하고도 스님은 매번 신입 행자가 들어올 때마다 큰 기대를 걸었다. 이번에도 절 살림일랑 새로 들어온 행자 스님에게 편히 맡겨 놓고 스님은 고통 받는 중생들의 거리에 동참하시느라 절을 자주 비우셨다. 나는 그래서 이 경상도 처자의 고독한 행자 생활을 물심양면으로 적극 돕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미갱씨 있어서 너무 든든해예. 스님은 억수로 출타하시고 절이 적막한데 미갱씨가 자주 와가 있어주니 너무 고마워예."

낡은 절의 재래식 공양간에 앉아 함께 불을 때면서 경상도 처자와 전라도 처자는 주지 스님께서 밤까지 다 외우라고 지시했다는 경전을 암송하느라 함께 머리를 맞대었다. 출가란 그렇게 자신의 속가와 반경 이백 킬로미터쯤은 멀리 떨어진 고장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였다.

"여기 주지 스님 다들 존경해요. 행자님은 정말 운이 좋은 거죠, 훌륭한 주지 스님 만나서."
"그런데 왜 상좌스님이 한 명도 없지예? 그거는 좀 이상하데예."

"네? 어어, 그건, 스님께서 워낙 바삐 활동하시느라 겨를이 없었고 또, 아시다시피 절이 이렇게 가난해서 그렇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절이 좀 가난하긴 해도 주지 스님이 좋으시니까 다행이죠. 그러니까 스님은 다른 생각 하지 말고 꿋꿋이 버텨야 해요. 주지 스님이 아무나 행자로 받는 줄 아세요? 행자님은 행운이라니까요. 자, 아까 우리 어디까지 외웠죠? 다시 한 번 외워보게요. 무상심심미묘진실어중선밀어 무위심내기비심 속령만족제희구 영사멸제제죄업…."
"지 사실은 고민이 있어예."

심심사 공양간 부뚜막에서 우리들의 우정이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자위하던 무렵이었다. 여느 날과 달리 무척 불안정해 보이는 행자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가녀린 표정이 늘 조마조마하더니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필시 속세에 두고 온 옛 애인을 못 잊어 하산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몰래 가출한 딸의 행방을 그만 부모님이 알아내 버렸던가.

"커피! 커피 한 잔만요,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못 견디겠어예"

"지, 너무 힘들어예. 속세에서 따라온 집착이 이리 질긴지 몰랐어예. 의지만으로 안 된다 아닙니까."

"안 돼요! 세속의 번민이 아무리 깊다 한들 어렵게 출가 결심했잖아요. 초심을 잃으면 안 돼요."

"그렇지만 제 안에 끊을 수 없는 집착이 마구니처럼 따라다닌다 아닙니꺼."
"극복해야죠. 대체 무슨 일인지 털어놔 봐요. 네?"

"커피! 커피 한 잔만요.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 못 견디겠어예. 아! 커피 한잔만 마시면 살 것 같은데!"
"커피요? 아니, 그럼 그깟 커피 때문에, 주지 스님께서, 커피도 못 마시게 하세요?"

"달콤한 음식도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에이, 술도 아니고 마약도 아닌데 커피를 못 마시게 하는 건 너무하시네요. 커피는 차나 음료수처럼 기호식품이잖아요."

"커피가 워낙에 자극적이니까네. 세속에서 비롯된 나쁜 습관은 다 버리라 안캅니까, 주지 스님은."
"그래도 커피까지 못 마시게 한 건 스님이 너무 하신 거죠. 주지 스님 지키라는 거 다 지키다간 남아날 제자가 어디 있겠어요. 이제부터 제가 커피는 계속 갖다 드릴게 제발 하산한다, 그런 말씀만 하지 마세요. 아셨죠?"

"스님 아시믄 혼날긴데, 그라믄 맥OO로 부탁해 예."

다음날부터 나는 경상도 행자의 흔들리는 의지를 다잡기 위해 커피를 밀반입해 날라야 했다. 재래식 부뚜막에 앉아 양은 냄비에 끓인 물로 스텐 공기에 쓰디쓴 커피를 타 마시며 예불문을 외우고 반야심경을 외우고 천수경을 외웠다. 증거는 철저히 인멸해야 했는데 주지 스님의 검색이 치밀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경상도 행자가 무난히 계를 받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까짓 사소한 파계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생각되었다.

그렇게 정성을 다했건만 그 경상도 행자는 어느 새벽 홀연히 절을 떠나 버렸다. 커피 한잔만 마시면 살겠다고 해서 스님 눈을 피해 가며 끊임없이 커피를 공급해 줬건만…. 그녀가 그토록 간절하게 끊을 수 없었던 것은 커피가 아닌 속세의 그 무엇이었나. 우리가 공양간 부뚜막에 앉아 함께 외운 경전들은 여전히 입안에 맴도는데, 내게 지독한 커피 애호의 습을 떠안긴 채 그녀는 떠나버린 것이다.

기대했던 경상도 행자마저 떠난 버린 지 일 년여 뒤 심심사가 있던 자리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절은 더 뒷전으로 밀려났다. 절터가 수용당하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심심사는 삼 층짜리 신축 건물로 일신하였건만 묘행 스님 밑에는 여전히 상좌가 한 명도 들지 않았다. 심각한 얼굴의 아가씨들이 '과거를 묻지 마세요' 식의 표정으로 입산했다가 얼마 뒤 슬그머니 방을 비우고 사라지기를 몇 차례 더 겪었다.

잠잠하던 내 출가 문제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선 잠잠하던 내 출가 문제를 다시금 거론하기 시작했는데, 새로 지운 절에 걸맞은 꽤 구체적인 청사진이 곁들여졌다.

"야! 여기선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좋구나, 예전 동네에 있을 때 비하면 호텔이다야. 전망도 좋고 정말 아깝다, 너 출가해라. 출가해도 출가했다는 생각 전혀 안 들게 우리가 늘 죽치고 있어줄게 응?"

"언니는 스님하고 인연이라니까. 그렇게 많은 행자들이 왔다가도 한 명도 정착을 못 했잖아. 스님처럼 깨어 있고 훌륭한 분에게 정말 이상하지? 언니가 이제 든든한 상좌가 되어 보필하면 스님도 마음 놓고 활동하고 우리한테도 훨씬 힘이 되고. 일단 언니 내려가서 우리 한잔하면서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응?"

그런데 얼마 후 심심사는 의외의 손님을 맞았다.

"언니 저 은실이에요, 오랜만이죠. 저 여기 심심사에 왔는데 언니 보고 싶어요. 집이 이 부근이죠?"

거의 이 년 가량 소식이 없던 후배 은실이 뜻밖의 전화를 걸어왔다. 은실은 무슨 행사를 같이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그녀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심심사에서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는 차분하고 침착했다. 원래는 한 왈가닥 하는 아이였다.

"어? 너 은실이? 심심사에는 무슨 일이니? 계집애, 내내 소식도 없다가 하여간 엉뚱하기는, 바로 갈게 기다려."
"아, 잠깐만요 언니. 근데, 나 이젠 스님이에요."

역시 왈가닥 기질에 농담 잘하는 성격은 그대로였다.

"스님? 그래, 절에 오니까 스님 된 기분이냐? 잘 해봐라. 거기 주지 스님 옆에서 그런 농담 함부로 하면 좀 위험한데."
"언니. 나 스님 됐다니까, 이런 말을 농담으로 하겠어요?"

"누가, 네가? 아니, 은실이 네가 그럼 정말 스님이세요? 법명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혜월이라고 합니다. 보살님."

심심사로 가는 길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까마득한 후배가 스님이 되었다며 나를 보살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곧 승속의 구분을 두자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러면 이제 깍듯이 스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아무래도 어색할 거 같다. 가서 스님들께 하듯이 삼배도 해야 하나. 스님. 혜월 스님. 영어 단어를 외울 때보다 더 열심히 발성 연습을 했지만 좀처럼 혀에 붙지가 않았다.

은실이, 혜월은 심심사의 요사채 아랫목에 앉아 나를 맞았다. 머리를 깎고 애써 무게를 잡는데 모습은 예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넓적한 얼굴에 금방이라도 남성들을 걸고 넘는 농담을 흘리며 나를 웃겨줄 것만 같았다. 예의상 일단 절을 한배 올렸더니 어? 얘 봐라, 앉아서 절을 넙죽 받고 있다.

"너무 뜻밖이네요. 스님이, 스님이 된 것이. 그리고 여기 심심사엔 어떻게 오게 되었고요?"

"경상도 큰 절로 출가했어요. 비구니 사찰로 유명한 절인데 거기서 행자 생활 정말 힘들었어요. 뭣보다 사람이 많다 보니까 사람 관계가 가장 큰 고통이었죠. 속세를 떠나자 출가했는데 또 사람들과 시달려야 하나, 회의도 많이 들었는데, 어떻게 무사히 넘기고 계를 받았네요. 우리 은사 스님이랑 묘행 스님이랑 도반이세요. 마침 묘행 스님이 일손이 달린다 하시고, 또 내 속가가 이쪽이라고 휴가 비슷하게 보내주신 거예요, 우리 은사 스님께서."

"아예 여기 상주하시죠. 이렇게 은실이가 아니, 혜월 스님이 와 있으면 우린 정말 좋겠는데."
"여기서 한철만 나고 경상도 큰절로 돌아가야죠. 그때까지 우리 자주 보게요."

"자주 와야죠. 근데 참 아쉽네요. 묘행 스님은 상좌 한 명도 없이 고독한데 혜월 스님은 사람들한테 부대끼며 큰절에서 고생했다니. 스님이 출가할 줄 알았으면 진즉 묘행 스님이랑 연결해 드릴 걸."
"인연이 안 닿았나 보죠 뭐." 

스님은 여전히 천진한 미소를 짓고 계시더라

혜월 스님은 경상도로 떠나고 연락이 끊겼고 나도 결혼을 하면서 심심사와도 점점 멀어졌다. 결혼한다는 말씀을 어렵게 드렸는데 스님은 매우 낙담하는 눈치였다. 가끔 서로 잘 사는지 안부를 묻다가 언제부터인지 그마저도 안 하게 되었다.

지난 2010년 4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에서 참석자들이 '강은 우리의 생명' '4대강 개발 중단'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2010년 4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4대강 생명살림 수륙대재'에서 참석자들이 '강은 우리의 생명' '4대강 개발 중단'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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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텔레비전에서 묘행 스님을 자주 뵌다. 사대강 사업을 끈질기게 반대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짓밟힌 인권을 편드는 자리, 거기에 스님은 여전히 맨 앞줄에 앉아 계신다.

상좌 스님은 어떻게 구했는지 화면에서는 여전히 그 천진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데, 짐작할 길이 없다. 스님은 상좌들이 들어올 때도 떠났을 때도 겉으론 늘 한결같이 저렇게 웃고 계셨으니까.


태그:#출가, #스님, #환경,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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