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그대로

내가 고3이던 1989년 12월 31일 TV로 중계되는 국회 청문회에서 한 젊은 국회의원이 증인석에 앉은 전두환에게 자신의 명패를 집어던졌다. 어린 마음에도,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이었지만, 그해 가을 학교 선생님 세 분이 전교조 문제로 쫓겨나던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던 나는 내 살아생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로부터 불과 13년이 지난 뒤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 '명패 노무현'이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그때 나는 진보정당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노무현의 당선으로 한국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개혁의 길로 들어서리라 기대했고 또 그렇게 예상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돼지저금통을 털어 노무현의 선거자금을 댔던 수많은 지지자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당선자 확실' 보도 이후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민주당사에 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권양숙씨.
 '당선자 확실' 보도 이후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민주당사에 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권양숙씨.
ⓒ 마이너

관련사진보기


그 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의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 한 명 잘 바꾸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던 것이 너무나 순진했던 것일까.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군부에서는 쿠데타라는 말이, 정치권에서는 탄핵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렸고, 평검사들은 대화를 원하는 대통령에게 대들었다.

대형 언론사들은 정체불명의 경제위기를 유포하며 하이에나처럼 덤벼들어 실패한 정권 만들기에 혈안이었다. 개혁에 대한 반발은 여당 내에서도 만만치 않았고 정부 안에서도 밖에서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MB 집권 후 얻은 깨달음, 우리 민주주의가 이렇게 허약했구나!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뽑은 데에는 민주주의는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경제를 더 살려서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바람이 크게 작용했다.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바람 속에는 우리의 탐욕이 숨어 있었다. 도덕성에 좀 문제가 있더라도 능력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 속에는, 그런 대통령을 선택함으로써 우리의 죄책감들 - 위장전입이든 부동산 투기든 약간의 탈세든 간에- 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늘 입바른 소리로 국민들의 마음에 불편한 빚을 안겼던 노무현에 비하면 얼마나 편리한 선택인가. 게다가 대기업 CEO 출신이라는 그의 화려한 성공신화는 모든 국민들을 부자로 만들어줄 경제전문가로 이명박을 포장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그의 경제철학의 귀결점이 어디인가는 자명한 면이 있었다. 1997년 IMF 사태와 2008년의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때 겪었듯이 한국경제가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지나친 대외 의존도를 어느 정도 낮출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북한경제를 포섭하여 실질적인 내수시장을 확대하는 것이고 둘째는 고용과 기술혁신의 중추역할을 떠맡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이다.

알다시피 이명박 경제는 이 두 가지 사항 모두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대기업들의 수출을 늘려주기 위해 고환율을 유지한 덕분에 돈의 가치가 하락한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 안았다. 대기업 CEO 출신의 대통령이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곧 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극소수의 대기업을 먹여 살리는 것(아직도 우리는 외국보다 비싸게 우리나라 대기업 제품을 쓰고 있다)이라는 점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에서 예측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피로 지켜 왔기에 그만큼 굳건하리라고 믿었던 한국의 민주주의는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훌륭하고 뛰어난 지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기보다, 좀 부족하고 이상한 지도자를 뽑더라도 그것을 제어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그것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이른바 '고소영' 사단이 점령한 국가기관들은 본연의 업무보다 철저히 대통령의 수족 노릇에만 열중했다. 이를 감시할 언론은 이미 스스로 권력 기관이 되어 정권의 방패막이로 나서며 '종편 채널'이라는 전리품을 챙겼고 소위 전문가들은 기발한 궤변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으며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의견을 무력화시켰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폐해는 국정의 모든 현안에서 증명된 그 무능함(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선발했음에도) 자체라기보다는 무능함을 만회하고 오류를 정정해 줄 민주적 기제의 작동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린 데 있다. 이는 곧 민주공화국의 권력이 사유화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지난 3년간의 이명박 정부를 돌아보면 대한민국의 실제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 똑똑히 알 수 있다.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재벌, 스폰서 받은 검사들을 봐주기만 하는 검찰, 법과 양심보다는 전관예우가 앞서는 법조계, 종편을 움켜쥐고 빅 브라더가 되려는 언론, 권력에 기생하는 전문가들…. 하나같이 일제시대 친일로 한몫 잡고 미군정과 독재에 야합하면서 국민들을 핍박하며 기득권이 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조항은 이들 앞에서는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다.

이른바 친노 세력, 시대와 맞서 싸우기보단 그냥 사람들과 싸워

노무현은 이들에 맞섰다. 그들에 맞서 대통령이 되었으나, 결국 그들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무현은 시대와 맞섰다. 새 시대를 가로막는 구시대, 그 낡은 질서와 싸웠다. 그래서 그가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면서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야만 했던 600년의 역사를 청산하자고 했을 때, 그 말은 단지 수사적인 레토릭이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진심이었다. 그 연장선에 있는 수도 이전은 단지 충청권에서 '재미'를 보기 위한 공약에 불과했던 것이 결코 아니다(혹자는 노무현이 이를 비꼬아서 발언한 것을 두고 본심을 드러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아마도 노무현이 다른 정치인들과 가장 차이나는 점은 이 점일 것이다. 친노 계열의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최근의 유시민을 보면 시대와 맞서 싸운다기보다 그냥 사람들과 싸우는 느낌이다. 모두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고 목소리는 높이지만, 정작 이 시대가 던진 화두에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도 시대와 맞서려고도, 누구도 '조폭 신문'들과 대적하려고도, 누구도 대한민국의 주인 자리를 도적질한 세력과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시대와 맞선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노무현 집권 5년의 교훈을 전혀 배울 수 없다. 단지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국회의원 다수를 당선시켜 의회를 장악하는 것만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 결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출발점(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출발점)일 뿐이다. 일제시대부터 그리고 해방된 뒤로 한국사회를 한 세기 넘게 지배해 왔던 기득권 세력이 부당하게 점유하고 있는 주인의 자리를 스스로 내놓을 리는 만무하다. 대선 승리는 이들과의 지난한 대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좀더 빨리 뼈저리게 깨달았다면 노무현의 5년이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여전히 사실이다.

청와대 입성으로 끝, 꿈 깨!... 세력 교체, 세대 교체 이뤄야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 환멸을 느끼며 재보선 때 표로써 응징과 심판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내년 두 번의 큰 선거에서도 그렇게 투표 잘하는 것으로 우리의 임무가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은 큰 잘못이다. 노무현 5년의 교훈은 단지 내년에 두 번의 투표를 잘해서 훌륭한 지도자를 뽑기만 하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선거에서 이겨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미리 준비가 잘 돼 있어야 한다는 것, 몇몇 정치인 혹은 정치지도자의 교체가 아니라 세력의 교체, 세대의 교체가 이뤄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설령 제2의 노무현이 나오더라도 이미 사회 곳곳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세력들의 조직적인 반격에 그 또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서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주인된 자리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노무현이 계속해서 피를 뿌려야 할지도 모른다.

누가 있어 그를 지켜 줄 것인가? 주권자된 국민으로서 우리가 단지 모월 모일의 투표 한두 번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렇게 우리가 선택한 지도자는 곧바로 무장해제 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노무현이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야권 연대에 '노무현의 교훈' 담아내야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작년의 지방선거와 올해의 재보선을 거치며 떠오른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야권연대다. 이미 정치권에 발을 담고 있는 각 정당들이나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장외 인사들도 백가쟁명 식으로 야권연대에 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처럼 야권연대의 압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은 역설적으로 현 민주당으로서는 시대적 소명을 담아낼 수 없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일정하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1997년 김대중의 집권과 함께 이미 그 역사적 소명을 다한 정당이다. 자기들이 흥행대박으로 뽑은 노무현 후보를 스스로 저버렸던 정당이 민주당이다. 지금은 80석이 넘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 느낌이다. 민주당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거가 끝날 때마다 "우리가 잘해서 뽑아주신 게 아니라는 걸 우리도 잘 압니다"라는 인사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야권연대를 이루는 방식 또한 노무현의 교훈을 실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 즉, 이번에 시도하는 야권연대의 틀은 그 속에서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세력을 키워 낼 요람을 배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지 표면적인 선거 결과를 위한 정치공학적인 표계산으로 나눠먹기에 그친다면, 아무리 잘해봐야 선거에서 이기고도 개혁적인 과제들은 전혀 달성하지 못하는, 그렇게 또 다시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 서지 못하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2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 인근에 내걸린 대형 걸개 그림이 시민들을 맞이 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2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 인근에 내걸린 대형 걸개 그림이 시민들을 맞이 하고 있다.
ⓒ 최윤석

관련사진보기


야권연대의 주변에는 참으로 출중한 능력의 인재들이 많이 있다. 박원순, 안철수, 박경철, 조국, 진중권, 정재승, 김제동, 그리고 민란의 주범 문성근 등 각 개개인의 능력만으로도 능히 한국사회를 쥐락펴락할만한 인물들이 넘쳐난다. 욕심을 부려 이들이 하나의 조직된 힘으로 역량을 집중해서 발휘할 수만 있다면 아마도 한국사회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야권연대의 틀이 이런 인재를 모으고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저항의 사령부'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다시 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시중에 나와 있는 온갖 종류의 야권연대 시나리오 중 어느 것이 좋은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중에 하나의 해답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문제는 집권 초기의 개혁 과제들을 정식화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이정표를 작성하는 일이다. 진보집권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고 이를 실현할 드림팀을 그림자 내각으로 꾸려 보는 것도 필요하고 또 유쾌한 일이지만, 개혁의 탄력을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는 집권 1년차 때에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시대 과제들을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한다.

집권 1년 안에 한국 사회 3대 성역 혁신해야

누군가가 제안했듯이 4대강의 보를 폭파하는 쇼도 생각해 볼 수 있겠으나, 우선은 MB가 마비시킨 민주주의 기제들을 되살리는 것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앞길을 가로막는 3대 성역인 재벌, 언론, 검찰(관련 기사 보기)을 혁신하는 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집권 1년차를 넘어가면 실행하기 어렵다. 일선 과학자로서 나는 기초학문 특별법 같은 방법을 써서라도 국가 차원에서 학문을 진흥하는 정책을 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한국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암세포를 도려내지 않고서는 그 또한 제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나 같은 평범한 유권자들도 앞서 말했듯이 그냥 투표날에만 주권자가 되는 데서 벗어나 적극적인 시대의 목격자로, 역사의 증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SNS를 위시한 새로운 미디어의 폭발적인 등장으로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소통과 연대의 폭과 가능성이 넓어졌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시대와 역사와 대화하며 늘 깨어있는 것, 주변의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필요하다면 금전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다. 정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면 "담벼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하면 되지 않나.

내년이면 한국사회가 (월드컵에서나 대선에서나) '기적의 2002년'을 겪은 지도 10년이 된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고 옛 시인은 노래했으나, 강산이 몇 번을 변한들 그날의 감격과 희열, 그리고 우리가 흘렸던 눈물과 노무현의 눈물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참배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에 참배했다.
ⓒ 사람사는세상

관련사진보기


2002년의 기적이 달갑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렸다는 세월을 되찾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마침내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행히도 그와 함께 질식되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저를 아방궁으로 둔갑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들은 급기야 초야에 묻혀 사는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들의 손에는 아직도 노무현의 피가 묻어 있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던 노무현은 아마도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 세상을 탓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9년 전 그를 울게 만들었던 문성근이 바로 그 연설에서 절규했듯이, "그의 가슴에 흐르는 피눈물을 왜 보지 못하겠습니까?"

5월 23일 오늘, 나의 가슴에는 아직도 노무현의 눈물이 흐른다.

(트위터: @ststnight)


태그:#노무현, #노무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19,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In Tenebris Lux 어둠 속에 빛이

이 기자의 최신기사윤석열 최악의 시나리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