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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자 일부 신문에 '내년 1월 1일부터 전면 실시하기로 한 도로명주소의 전면 사용 시기가 2014년 1월 1일로 2년 미뤄진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러자 행정안전부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었다. 보도자료는 '도로명주소의 전면 시행 2년 연기' 식의 기사는 '국민이 도로명주소를 법정주소로 본격 사용하게 되는 시행 시기가 연기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면서 '새주소는 올해 6월까지 전국 일제 고지를 거쳐 7월 29일 전국 동시에 고시되면, 법정주소로서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사용시기가 연기되는 것은 아니며, 올해 12월말까지로 되어있는 새주소와 지번주소를 함께 사용하는 기간을 2011년 12월 31일에서 2013년 12월 31일까지 2년 연장하는 것(즉, 병행실시 기간이 2년 연장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도로명주소는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행정안전부가 내놓은  새주소(도로명주소)는 걸어다니는 국민들에게 네비게이션을 들고 다니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혹평을 할 수밖에 없는지 필자의 집 근처를 사례로 하여 살펴보겠다.

집 둘레는 사방으로 각각 200미터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사방으로 나 있는 골목들에 행안부는 제 각각 다른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이래서야 누가 무슨 재주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
▲ 행안부의 도로명주소는 이렇게 혼란스럽다 집 둘레는 사방으로 각각 200미터 정도밖에 안 된다. 하지만 사방으로 나 있는 골목들에 행안부는 제 각각 다른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이래서야 누가 무슨 재주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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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71번지 동화아파트 202동 303호에 산다. 그런데 도로명주소에 따르면 필자의 주소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수로 4길 64, 202-303으로 바뀐다.

지금까지는, 번지는 모르더라도 상동의 위치만 대략 알면 집 근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데 도로명주소에 따르면 '청수로'가 어디인지 아는 정도로는 집 근처에 올 수가 없다. 그는 반드시 '청수로 4길'까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청수로'가 중동교에서 만촌동 담티고개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성못 아래에서 중동교까지가 상동'이라는 배경지식만 있으면 어지간히 집 부근에 올 수 있던 시대에서, 청수로 본길은 중동교에서 담티고개까지이지만, 골목 안을 돌아다니는 청수로 소로는 중동교 북쪽의 중동 안 구석구석인 '청수로 1길'에서부터 황금아파트 단지 안을 헤매는 '청수로 45길'까지 계속된다는 사실도 알아야만 하는 시대로 바뀌는 것이다. 즉, 청수로 본길은 중동교에서 시작되어 황금동, 두산동, 범어동을 거쳐 만촌동까지 이어지고, 청수로 소로들은 상동, 중동, 황금동, 두산동, 지산동을 두루 헤매는 까닭에, 정확하게 '청수로 4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네비게이션을 들고 다녀야만 필자의 집 근처에 올 수가 있다.

게다가, 필자의 집 주위가 오롯이 청수로라는 이름만 가진 것도 아니다. 집 남쪽과 서쪽의 골목은 '수성로 25길'이고, 북쪽은 '수성로 29길'이며, 남쪽만 '청수로 4길'이다. 그뿐이 아니다. 그 세 이름의 길은 비록 집을 에워싸고는 있지만, 불과 수십m만 더 가면 신천동로 34길, 상화로 3길, 상화로 5길에 각각 이어지기 때문에, 비록 그 길로 진입했다 하더라도 조금만 더 가면 청수로 4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신천은 대구 가운데를 흐른다. 중동교는 신천의 다리 중 하나. 중동교는 남구와 수성구를 잇는데, 이 다리를 건너는 길의 남구 쪽은 도로명이 '중앙대로 22길'이고 수성구 쪽은 '청수로'이다. 같은 길인데 이름이 다르다.
▲ 중동교를 건너는 길 신천은 대구 가운데를 흐른다. 중동교는 신천의 다리 중 하나. 중동교는 남구와 수성구를 잇는데, 이 다리를 건너는 길의 남구 쪽은 도로명이 '중앙대로 22길'이고 수성구 쪽은 '청수로'이다. 같은 길인데 이름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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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의 '새주소(도로명주소) 안내'에서 '도로명 부여 사유'를 찾아보자. 청수로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행안부는 '맑고 깨끗한 이미지[淸秀]를 반영한 도로'라는 뜻에서 이 길들에 청수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필자의 집은 신천 강변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그렇다고 집 주위의 골목이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것은 아니며, 또 중동과 상동 일부를 제외하면 황금동, 두산동, 지산동, 범어동, 만촌동은 강변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에 있는데, 어째서 이 도로들이 청수로란 말인가.

그리고 또 한 가지. 중동교를 건너면 봉덕동이다. 신천 강변은 상동과 중동 옆을 흐르기도 하지만 봉덕동 옆도 흐른다. 그런데 청수로는 다리를 건너면 갑자기 '중앙대로 22길'이라는 엉뚱한 이름을 단다. 중동교 너머 봉덕동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대구 시내 한복판의 이미지와 아무 연관도 없고, 청수로의 연결선상에 그대로 위치하는데, 어째서 강 한쪽만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나.

대구공항 앞 도로의 이름은 '공항로'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 공항로 대구공항 앞 도로의 이름은 '공항로'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이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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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보니, 도로명이 결국은 아무렇게나 붙여졌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서양식으로 붙인다고 그렇게 한 모양이지만, 틀렸다. 과거의 중학교 1학년 국정 국어교과서는 맨 처음에 '길 안내'를 실어 설명문이 다른 사람의 이해를 돕는 글이라는 것을 가르쳤는데, 요지는 '큰 건물을 아는지 물어본 뒤 알면 거기서부터 설명하라'는 내용이었다. 도로명주소 역시 그렇게 붙여져야 한다.

대구에서 가장 잘 붙은 도로명주소는 '공항로', '달성공원로', '앞산순환로', '안지랑길', '관문시장길', '두류공원로', '파도고개로' 등이다. 대구공항 앞 도로를 '공항로'라 부르면 누구나 바로 알 수 있다. 다른 한 예는 둔산동으로 들어가는 길에 '옻골로'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옛이름을 살려서 썼으니 정말 바람직하지 아니한가.

사람이나 건물, 유적 등 그 길을 상징할 만한 것을 찾아서 도로명을 붙여야 한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와 아무 연관도 없는 길에 청수로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행안부 식이면 그 길은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도로가 되고 만다. 필자의 집은 청수로 4길이지만 50m 떨어진 곳의 길은 상화로인데, 그 이름 역시 마찬가지이다. '새주소(도로명주소) 안내'는 그 길에 상화로란 이름이 부여된 까닭을 '시인 이상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도로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상화와 상동시장 골목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정작 이상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쓸 때 모티브를 삼은 것으로 알려진 수성못 아래 평지 일대에는 '수성로 14길', '무학로 21길', '들안로 8길' 같은 이름을 부여해 놓고는, 엉뚱한 시장골목에 웬 상화로란 말인가.

그뿐인가. 대구에 상화로가 또 있으니 그 또한 문제이다. 달서구 상인동에서 진천동을 통과하는 도로에 상화로란 이름이 붙어 있는데, 행안부가 설명하는 부여 사유는 '이상화 시인을 의미하는 도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설명이 없어 납득하기가 어렵지만, 추측하자면, 그 길 끝나는 지점 인근에 상화의 묘소가 있다. 그래서 그 길에 상화로란 거룩한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아주 잘한 일이다.

예를 들자면, 신천 물길을 새로 낸 사람이 조선 시대의 이서(李漵)이다. 신천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를 '이서로'라 하면 어떤가. 용산동에 있는 대구학생문화센터 앞뒷길을 생뚱맞게 '장산로', '장산남로' 식으로 부르지 말고 그냥 '학생문화센터길'로 간명하게 부르자. 대구향교 주변의 길들도 '명륜로'라 하지 말고 '향교로'라 부르자는 말이다. 대구 지역의 중소기업들이 만든 제품(쉬메릭)을 파는 드림피아 쇼핑센터의 뒷길을 (외국어이지만 그래도) '쉬메릭길'이라 부르는 것도 괜찮을 터이다.

어떻게 골목골목마다 그럴 듯한 이름을 붙이며,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찾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하다. 남문시장을 관통하는 두 길을 '명덕로 35길', '중앙대로 61길'이라고 부르지 말고 '남문시장길'로 부르면 충분하다.

이 기회에 옛 지명을 찾아서 새주소로 삼으면 아주 좋을 것이다.
▲ 옻골로 이 기회에 옛 지명을 찾아서 새주소로 삼으면 아주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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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집을 예로 더 들어본다면, 집 바로 앞에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집터가 있다. 그 길을 왜 '청수로 4길'이라 부르게 하나. '고인돌길'이라거나 '청동기길' 같은 이름이 붙으면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그 옆길들에는 '고인돌 동길, 고인돌 서길, 고인돌 남길, 고인돌 북길' 식으로 연명을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가까운 곳부터 '고인돌 동1길'로 시작하여 '고인돌 동2길, 고인돌 동3길' 식으로 숫자를 붙이면 만사형통 아닌가. 블록별로 도로명을 정할 상징적 대상을 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빙 둘러가며 길에 네 방향의 이름을 붙이자는 말이다. 행안부 것처럼 골목들의 이름을  가로와 세로로 뒤죽박죽 섞어 놓으면 혼잡스러워 도로명이 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도로명주소, 병행 사용 기간을 단순하게 연기하는 것으로는 안 되며, 전면적으로 새 이름을 부여한 뒤 시행되어야 한다.


태그:#도로명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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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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