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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오복이 있다면 이 나라의 고3 학생에게 꼭 있어야 할 복이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담임복'. 담임복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고3 학생이었던 사람과 고3 학생을 자녀로 두었던 부모들은 다 안다. 굳이 고3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대화를 할 아이의 담임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여기 경기도 안성시 안법고 3학년 2반 학생들은 담임복을 타고 났다.

1998년 안법고등학교로 부임한 김재호(41) 교사는 현재 9년째 고3 담임을 맡고 있다. 학교 내에서 최고기록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꿈이 교사였고, 그 꿈을 이룬 사람으로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지금까지 교직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생에 대해 후회가 없는 사람, 그리고 아무리 적은 꿈이라도 기어이 이룬 사람으로서 김재호 교사는 자족적인 사람이었다.

김재호 교사는 사랑과 열정이면 교사의 권위는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 안성 안법고등학교 김재호 교사 김재호 교사는 사랑과 열정이면 교사의 권위는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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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꿈을 가지게 된 계기를 물으니, 재밌는 대답이 돌아온다.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폭행에 가까운 폭력을 행사하는 교사들을 만났다고 했다. 또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는 교사, 아이들을 차별하는 교사를 보면서 저런 선생은 되지 말아야지 했던 게 계기라고 했다. 역설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반대로 좋았던 선생님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안아주고 업어주셨어요."

어떤 선생님이 좋은 이유는 단순하다. 학생들을 안아주고 업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충분히 전해진다.

교사의 절대적 요건은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력,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재호 선생은 그런 면에서 타고난 교사다. 그는 1시간쯤의 출근길에서 매일 생에 대한 감사를 보낸다. 더불어 오늘 하루는 아이들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한다. 관심과 애정의 출발인 셈이다. 김 선생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큽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사의 가장 큰 매력은 담임을 맡는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내 새끼들이잖아요. 37명의 아이들이 내 눈빛, 몸짓 하나에 움직여요. 학기 초를 보내면 교사와 제자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담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죠. 그럴 때 그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습니다."

"한 아이라도 대입에 실패하면, 그건 1년 가죠"

대도시처럼 대입컨설팅을 해줄 만한 기관이 없는 지방의 소도시에서 고3 담임의 역할은 크다고 했다. 대입을 앞두고 기댈 곳이라곤 학교의 담임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김 교사가 그래서 고3 담임을 맡으며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아이들과의 상담이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좋아해요. 하지만 입시가 걸려 있어 단순히 들어줄 수만은 없죠."

그의 상담은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몇 개월 동안 저녁 10시까지 계속된다. 상담을 통해 아이들은 수시냐, 정시냐, 가군, 나군, 다군의 어느 곳에 어떻게 지원할 것이냐 결정한다. 그리고 접수까지도 김 교사과 함께 한다.

"대입이 성공적이면 그 기쁨이 하루를 갑니다. 그러나 한 아이라도 대입이 실패하거나 좋지 않으면 그건 1년을 가지요."

그렇게 김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고3병'을 앓는다. 그는 이 나라의 대입제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큰 틀이 모두 상대평가입니다. 대학도 서열화되어 있고, 내신이든 수능이든 모두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상대평가이지요. 95점 맞았으면 잘했다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만 등위가 매겨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요."

이 나라의 대입제도가 경쟁지상적이지 않고, 좀 더 인간적이었다면 김재호 교사와 학생들은 더욱 행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위바위보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학생들과 김재호 교사.
▲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학생들과 김재호 교사.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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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사는 한문 선생님이다. 수업을 시작하면 5분 동안 EBS의 <지식채널e>를 틀어주거나 짤막한 좋은 글들을 읽어준다. 그 5분 동안 쉬는 시간을 거치며 산만하게 흩어졌던 아이들의 정신이 모이고, 그 짧은 시간 학생들은 사색을 하게 된다. 학업에 치여 감성이 메말라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감동과 감명을 얻을 수 있는 시간, 삶의 의미들을 생각해보는 찰나를 선사하는 것이다. 어쩜 그 5분이 교육의 본래 의미와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김 교사는 또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하고도 꼼꼼하며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것은 힘들어 하는 고3 학생들에 대한 애정에서 발로한다. 매 수업시간에 아이들 각자의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 하고, 그 이름에 담긴 뜻을 풀이해준다. 이름풀이는 그 아이에 대한 모두의 관심으로 확장되고, 학생에게 자신의 이름에 담긴 소명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아이들과 '잘 노는' 선생님... 권위 없다는 핀잔도 

또 매주 손수 주간신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A4용지 2면으로 이뤄진 주간신문에는 대입 정보와 함께 반에서 벌어졌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사진과 함께 실린다. 어느 주간신문에는 김 교사가 직접 찍은 반 아이들 37명의 사진이 다 담겨 있기도 했다.

더불어 김 교사는 아이들의 생일을 일일이 다 챙긴다. 거창한 파티가 아니라, 축하의 노래를 불러주고, 주인공의 노래를 듣고 박수를 쳐주는 일이다. 가끔 아이들과 제로게임, 가위바위보 등을 해 맛난 것을 사주기도 한다.

김재호 교사는 점심시간 막간을 활용, 반 학생들을 집단적으로 학생 대상 온라인 이벤트에 참가시킨다. 이벤트에 당첨되어 반 학생들 모두 티셔츠를 받았다.
▲ 이벤트에 당첨된 사진 김재호 교사는 점심시간 막간을 활용, 반 학생들을 집단적으로 학생 대상 온라인 이벤트에 참가시킨다. 이벤트에 당첨되어 반 학생들 모두 티셔츠를 받았다.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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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에는 대외에서 하는 이벤트에 아이들을 집단적으로 참가시킨다. 반을 자랑하는 글을 사이트에 올리거나 하면 상품이 오는 방식인데, 이벤트에 당첨돼 피자도 먹고 티셔츠도 받았다. 이는 단순한 상품받기가 아니다.

"자랑하다보면 신기하게도 그것이 현실이 되요."

그의 이 모든 자질구레한 노력과 배려들이,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오지선다형 문제만을 반복해서 풀어야 하는, 주말도 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숲속의 샘물과도 같은 휴식이 되고, 기를 살리는 환호가 될 것이다. 그것은 또 담임선생님과의 끈끈한 교감의 통로가 되리라. 학업과 성적에 치일대로 치이던 아이들이 그것으로 다시금 고교 생활을 지속시켜나갈 힘, 책상머리에 앉을 힘을 얻게 될 것이었다.

김 교사에게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졸업생들이 찾아온다. 믿을 수 없어 정말이냐고 재차 물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졸업생 오면 다 제 제잔 줄 알아요"라며 김 선생이 웃는다. 졸업생들은 찾아올 때 후배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따위를 사온다. 그리고는 후배들에게 담임선생님께 잘하라는 당부를 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그가 아이들 생일을 챙기고, 사진을 편집해 신문을 만들고, 주머니를 털어 간식을 산다고, 또 옆에 끼고 대입원서 접수까지 한다고 해서 김 교사의 봉급이 더 올라가지는 않는다. 자신에게 뭐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하느냐 물었다.

"저의 만족을 위한 것이죠. 애들이 제게는 재산입니다."

학생들이 재산인 선생님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김 선생이 우스개를 덧붙인다.

"그리고 나한테 돌아오는 것도 있던데요. 졸업생들이 술도 사주고 하면서요."

그는 학생들과 잘 노는 선생이다. 가끔 다른 교사들에게 권위가 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김재호 교사는 오직 아이들만을 본다. 다른 교사의 시선도, 사회의 눈초리도, 대입합격률이라는 막무가내의 수치도 김 교사를 흔들지는 못한다.

체육대회 때 반 아이들과 함께...
▲ 누가 선생님일까요? 체육대회 때 반 아이들과 함께...
ⓒ 황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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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던 중, 김 교사의 휴대폰이 쉬지 않고 '웅' 하고 몸을 떤다. 스승의 날을 맞아 졸업한 제자들과 학부모들이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거였다. 하트 표시가 맨 끝에 달린 문자 여러 개가 보인다. 그런데 학부모들로부터도 감사의 문자를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한 졸업생 아버지에게서 온 문자메시지에는 감사를 전하는 마음이 긴 문장에 오롯이 담겨져 있었다.

사랑과 열정만 있다면 교권은 절대 무너지지 않아

요즘 교사들의 사기가 떨어지니, 교권이 추락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 물었다. 김 선생의 눈빛이 단호해진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만 있다면 저는 그 무엇도 커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들에 대해 애정이 있는 교사인지, 아닌지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아차려요. 교사의 권위는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열정과 사랑으로 열심히 교육하면 학생들이 먼저 알고, 이어 학부모가 인정합니다. 사랑과 열정이라면 교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김 교사는 확고했다. 그는 체벌조차도 사랑과 열정이 바탕이 된 체벌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선생도 교사로 부임하고 3년쯤은 체벌을 했다고 했다.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따라주지 않아 어쩔 수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그는 스스로 체벌을 금했다.

"학생들의 수준도 높아졌지만 저의 교수법도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체벌 없이 할 수 있는 교육이 더 고도의, 고수의 교육이지요."

열정과 사랑은 그렇게 통한다. 체벌하지 않고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김 교사는 부단히 노력했고, 그리고 이루었다.

세상에서 정말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망망대해에서 만나는 하나의 등대와도 같다. 폭풍우 치는 검은 밤의 바다에서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 등대. 수명을 다하는 동안 한 자리에서 희디흰, 순결한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빛나야 하는 등대, 그것이 스승된 자의 숙명이다. 경쟁이 전면화하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회에 갇힌 아이들은 멀리 빛나는 한 점 등대를 보고 겨우 나아갈 것이다.

스승의 날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경기도의 10만 교원들에게 편지를 썼다.

"분명한 것은 우리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너무나 평범한 말은, 평범하기에 더욱 불변의 진리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교육방법과 기술은 교육을 보완할 뿐이지 결코 선생님의 인격과 교감의 능력을 대체하지 못합니다."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은 백 번 맞다.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선생님이 제일 훌륭한 선생님이므로, 나는 오늘부터 김재호 선생님을 존경하기로 했다.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이 옳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성신문>에 5월 18일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안법, #교사, #교육,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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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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