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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지연이에요. 처음 봤을 때 좀 무뚝뚝한 인상을 받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12년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들과 친해지거나 딱히 대화를 나눠본 역사가 없었는데요. ㅎㅎ 처음 선생님이 먼저 말 걸어 주셔서 그때 정말 감사했던 거 모르시죠. ㅋㅋ 선생님,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고맙습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한 아이가 전해준 쪽지 내용이 가슴에 와 닿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까지 12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지연이는 교사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걸까. 성적이 좋아 모든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사는 아이들도 있지만 교사들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대부분의 학교생활을 보낸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교사의 관심을 받고 싶은 건  모든 아이들의 바람일 텐데.

 

"선생님."

"왜, 그러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이는 단지 선생님의 손을 잡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선생님의 손을 잡고 있으면 자신을 따라다니는 쓸쓸함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시노다 후미코는 요시오에게 손을 맡긴 채 부드럽게 말한다.

"요시오가 많이 착해졌어." (인간의 벽)

 

지연이의 쪽지를 보다보니 1950년대 말 일본의 교육현실을 배경으로 탄생한 <인간의 벽>이 떠올랐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교육민주화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때 많은 교사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읽었던 책인데, 최근 세 권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새로 출간된 <인간의 벽>을 다시 읽었다. 여전히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과 조건이 달라진다 해도 '배우며 가르치는' 교육의 기본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 앞두고 쪽지를 전해준 지연이와, 소설 속 요시오는 같은 생각이었다. 선생님과 소통하고 관심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다. 지식 교육,  성적 향상, 성적에 따른 서열화가 교육의  전부가 아니다. 교사와 아이들 사이에 진심어린 관심과 소통의 바탕이 먼저 이루어지면 성적 향상은 더불어 이루어질 수 있다.

 

거리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이 모습(필자 주 - 1950년대 일본 교사들의 시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시민들 사이를 누비며 전단지를 뿌리는 남자들이 있었다. 전단지에는 "공산당의 수족 일교조를 매장하라.","교육을 파괴하는 일교조" 같은 격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노동조합이 단체 행동을 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훼방을 놓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익 단체 소속이었다. 그런 단체야 말로 보수당의 수족이며, 그 같은 방해 공작을 하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인간의 벽)

 

60여 년 전 일본에서 전개되었던 상황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 떠오른다. 전교조 이름 위에 색깔을 덧씌우려는 시도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참교육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레던 전교조 결성 무렵, 정부는 전교조 교사들을 좌경, 용공이라 몰아세웠다.

 

2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 전교조가 합법화되었지만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이들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아이들과 상담하고 수업하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교사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시위를 마친 사람들은 거리에 나오는 순간 다시금 외로움을 느낀다. 방금 전까지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던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져 다시 원래의 선생으로 돌아간다. 그들 모두는 본질적으로 고독한 교사다.…(중략)… 비옷의 깃을 여미며 선생들은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전차를 타거나 버스를 탄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야 한다. 내일은 또 수업이 있다.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 학생들이 쓴 글을 읽어야 한다.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뼛속까지 '선생님'인 사람들이었다. (인간의 벽 )

 

뼛속까지 '선생님'일 수밖에 없는 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인간의 벽>의 시노다 후미코 같은 선생님이다. 위원장도 아니고, 시국을 분석하고 냉철하게 비판하는 이론가도 아니지만 진심으로 아이들을 걱정하고 위해주는 이름 없는 교사들이다. 승진이나 입신양명 앞세우지 않고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사랑하며 아이들과 진심을 나누고 더불어  살고자 애쓰고 있다.

 

뼛속까지 '선생님'인 사람들이 참교육을 지키는 주인공들이다. <인간의 벽>을 읽으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건, 교사들의 그런 진심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60년 전 일본을 배경으로 쓴 것 이지만 2011년 우리 교육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시카와 사쓰오/김욱 옮김/양철북/2011.3/14,000원


인간의 벽 1 - 거대한 슬픔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양철북(2011)


인간의 벽 3 - 변화의 물결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양철북(2011)


인간의 벽 2 - 고독한 사람들

이시카와 다쓰조 지음, 김욱 옮김, 양철북(2011)


태그:#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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