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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이주여성들과 대구 이주민 선교센터는 17일 오후 주한 베트남대사관에서 집회를 열었다.
▲ 베트남 이주여성들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대구 이주민 선교센터는 17일 오후 주한 베트남대사관에서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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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아파요. 빨리 집(베트남)에 가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베트남 이주여성인 쑤언(25)씨가 말이다. 쑤언씨는 2006년 한국에 입국해, 현재는 미등록상태다. 대구에 있는 한 전자부품업체에서 시급 3000원을 받으며 일을 하다가 베트남 남성을 만나 2명의 자녀를 낳았다.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온 쑤언씨의 자녀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폐렴을 자주 앓았고 자주 입원했다. 쑤언씨는 비싼 한국의 병원비를 견디지 못하고, 베트남행을 결심했다.

자녀의 여권을 만들기 위해 주한 베트남대사관을 찾았지만, 여권 발급은 쉽지 않았다. 한국정부가 2009년부터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양부모의 동의 없이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에서 출생한 베트남 2세들의 여권 발급기준을 높였기 때문이다.

베트남 자녀의 여권발급을 위해서는 주한 베트남대사관에 출생증명서, 친자확인 증명서, 산모수첩 등을 제출해 베트남 국적의 자녀임을 확인해야 여권발급이 가능하다.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이주민선교센터는 17일 오후 주한 베트남대사관 앞에서 베트남 자녀들의 여권발급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쑤언씨의 다섯 번째 베트남 대사관 방문이었다.

베트남 이주여성들이 주한 베트남대사관 앞에서 베트남 자녀들의 여권발급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있다.
▲ 베트남 이주여성들 베트남 이주여성들이 주한 베트남대사관 앞에서 베트남 자녀들의 여권발급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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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들에겐 너무 비싼 베트남 여권발급비용

"우리 돈 없어요. 대사관은 서울에 있어 오기도 힘들어요. 대사관에서 요구하는 서류들 떼려면 돈 너무 많이 들어요."

응웬 티 톰(24)씨는 자녀 여권을 만들기 위해 두 번이나 대사관을 찾았지만, 여권발급이 거부당했다. 응웬씨는 대구 버섯농장에서 일하는 남편이 월급일에 맞춰서 대사관을 찾았다. 친자확인을 위해 15만 원이나 드는 유전자 검사를 두 번이나 받아야 했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는 교통비까지 계산하면 50만 원이 넘는다.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대사관에 150달러를 내야 하기 때문에 농장일을 하는 남편의 월급으론 부담이 크다.

하지만 브로커를 통해서 여권을 발급받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브로커를 통해 여권을 발급받는 비용은 500만 원이 넘는다. 몇 년 전부터 베트남 이주여성들 사이엔 브로커를 통해서 자녀 여권을 받는 게 비싸지만 쉽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집회에 참여한 베트남 이주여성은 "자녀 여권을 받기 위해 브로커에게 700만 원을 사기당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400만 원을 친구에게 빌리고, 갖은 돈을 탈탈 털어서 브로커에게 (여권발급을) 부탁했다"면서 "딸을 데리고 베트남에 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빚만 생겼다. 브로커를 꼭 잡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이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자녀를 데리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정부가 여권발급 조건을 까다롭게 한 것이 오히려 엉뚱한 피해자들만 양산한 셈이다. 

이주여성들을 돕고 있는 박순종 대구평화교회 목사는 "베트남 여성들이 여권을 발급받기 힘드니까 비싼 돈을 들여서 브로커에게 부탁을 한다"면서 "한국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브로커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트남 공동체와 대구이주민선교센터는 "주한 베트남대사관이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자녀들의 여권발급비용을 줄이고, 대행업자를 공식적으로 지정해 브로커를 통해 여권발급이 이루어지는 폐단을 근절해야 한다"며 "주한 베트남대사관이 결혼이주여성, 베트남자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베트남 이주여성인 쑤원씨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베트남 이주여성 쑤언씨 베트남 이주여성인 쑤원씨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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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베트남대사관, "개선이 필요하지만, 대책은 아직..."

이날 집회를 마치고, 11명의 베트남 이주여성들과 주한 베트남대사관 황공하이 공사와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주한 베트남대사관에서 이루어진 면담 자리에서 이주여성들은 그동안 대사관에 쌓인 불만들을 토로했다.

황공하이 주한 베트남공사는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검사와 여권발급비용이 베트남 이주여성들에게 부담되는 것을 알고 있다"며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것은 없다"고 말했다.

'베트남 교민들을 위해 대사관이 지정병원을 선정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황공하이 공사는 "검토해 보았지만, 지정병원제로 운영하면 병원과 이주여성이 짜고 가짜 출생증명서를 발급할 우려가 있어 제외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는 베트남 교민들은 10만 명이다. 교민 중 대부분이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들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으로 살아가는 것도, 고국인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태그:#이주여성, #다문화가정,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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