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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아카시아 꽃과 앵두 따 먹는 계절

 

5월 15일 오후 날씨가 너무 화창합니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만합니다. 그동안 누런 황사로 나들이를 꺼렸는데 오늘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점심 먹은 후, 여수 화양만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곳곳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아카시아 꽃을 따 한입 먹어보는 이들도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본 큰애가 눈이 동그래져 묻습니다. "아빠, 저 꽃도 먹어요?" 그 말에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맘때면 지천으로 아카시아 꽃이 핍니다. 배도 고프고 딱히 군것질거리도 없던 때라 이 꽃 저 꽃 입안에 넣고 씹어보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중 아카시아 꽃이 제일 맛있습니다. 한 손에 담긴 아카시아 꽃을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면 꽃향기가 입안 가득 차오릅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일이 앵두 먹기입니다. 빨간 앵두 몇 알을 따서 입에 머금고 이리저리 굴리다 톡 터뜨리면 입속에서 달콤함이 한가득 넘칩니다. 그 새콤달콤함이 꿀 사탕에 비할 바 아닙니다.

 

마침, 화양면 나들잇길에서 앵두나무를 만났습니다. 차를 멈추고 도로변에 빨갛게 익어가는 앵두를 애들과 신 나게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처음 맛보는 앵두 맛이 기대 이하인지 몇 알 씹어본 후 실망하는 표정입니다.

 

반면 아내는 아이들보다 더 흥분했습니다. 나뭇가지에 긁히는 고통도 마다않고 앵두 따 먹기에 정신없습니다. 아마도 맛보다는 어릴 적 기억을 따고 있는 듯합니다.

 

작은애 화장실 찾다 우연히 만난 도심 속 차밭

 

그렇게 정신없이 앵두를 따먹고 있는데 둘째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양손으로 엉덩이를 움켜쥡니다. 도로변에서 일을 치를 수도 없어 황급히 차를 몰았습니다. 급하게 적당한 장소를 찾는데 여수 무선산 등산로 밑에 낯익은 풍경이 보입니다.

 

깊은 산속도 아닌 도심 한가운데 녹차 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모습에 여수에도 녹차 밭이 있다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일단 그곳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둘째 녀석 급한 일을 대충 마무리 짓고 차분히 녹차 밭을 바라봤습니다.

 

무선 산을 등에 업고 펼쳐진 녹차 밭이 5월의 싱그러움과 함께 신기하게 보입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녹차 밭은 이제 막 수확을 끝낸 듯 단정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그 아래 아담하게 지어진 찻집도 보입니다.

 

누가 이곳에 녹차 밭을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저는 여수 도심 속 차밭을 그동안 왜 못 봤을까요?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찻집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차밭 가꾼 사연 이야기하려면 소주 7병은 마셔야...

 

아쉬운 마음 안고 발길을 돌리는데 주인인 듯한 분이 차를 몰고 왔습니다. 기쁜 마음에 다짜고짜 질문을 퍼붓는 저에게 찻집으로 들어오랍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든 녹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수에서 녹차나무를 심어 제품으로 내놓기까지 사연이 많다며 그 이야기 하려면 소주 7병은 마셔야 한답니다. 그러면서 차밭이 조성된 배경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애써 피합니다. 그리고 넉넉한 시간에 다시 찾으면 그때 이야기보따리를 풀겠노라고 말합니다.

 

다만, 사연 많은 여수산 녹차가 이제 좋은 대접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랍니다. 또, 세계박람회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여수에서 만든 차를 대접해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며 간단히 차밭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곳 차나무는 심은 지 7년이 지났고 재배면적은 5천6백 평(1만8000㎡ 이상) 정도랍니다. 또 일반인들이 차를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일회용 티백을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만들었답니다. 그 말과 함께 일회용 티백을 보여주는데 차밭 주인의 차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차를 마실 때 격식도 중요하지만 편리함을 쫓는 요즘 세대를 무시할 수도 없는 터라 쉽고 간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물론 예와 격식을 갖춰 차를 음미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습니다.

 

산행도 하고 명상도 즐기고 일석이조가 따로 없네

 

그렇게 맛난 차를 대접받았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차를 마시다 애들 재촉에 아쉬운 발길을 돌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신기합니다.

 

나름대로 차를 좋아해 보성도 가보고 하동도 정성껏 쫓아다녔는데 정작 지척에 있는 여수 차밭을 7년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고향에 대한 소홀함에 은근히 화가 납니다. 저만 몰랐던 걸까요?

 

여수에 차밭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도 알고 있나 궁금해 몇 분에게 물었더니 금시초문이랍니다. 그나마 나만 몰랐다는 부끄러움을 덜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차 관련 책을 이것저것 뒤지다 또 한 번 놀라고 부끄러웠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제 고향 여수에 차밭이 꽤 있었음을 알게 됐으니까요.

 

저는 그날 비밀의 차밭을 발견했습니다. 부끄러움도 있지만 기쁨이 더 큽니다. 이제 자주 들러 차나무 자라는 모습도 보고 조용히 명상도 하렵니다. 무선산 등산로 초입에 있어 더욱 좋습니다. 산에도 오르고 차밭에 마련된 원두막에 앉아 좋은 생각도 하면 일석이조가 따로 없겠지요.


태그:#동진다향원, #여수 녹차, #무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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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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