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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염불과 목탁소리가 강으로 흐르다

부처님 오신 날(5월 10일), 모티프원의 청소를 마친 늦은 오후에 처의 뜻에 따라 파주 심학산 자락의 약천사로 갔습니다. 헤이리에서는 차로 불과 15분의 거리, 늦은 시간이라 절로 드는 차량보다 오히려 나오는 차량이 더 많았습니다.

지장보전을 내려다보고 있는 약사여래불
 지장보전을 내려다보고 있는 약사여래불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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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연등만 아니었더라면 무싯날로 여겼을 것입니다. 아마 낮 시간에 주로 다녀가셨고, 또한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부처님 오신 날의 산사 나들이가 줄었나 봅니다. 저희 부부는 군중에 떠밀리는 법 없이 고즈넉함을 되찾고 있는 저녁나절에서 어스름 저녁의 어디쯤을 느린 걸음으로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약천사의 지장보전과 연등
 약천사의 지장보전과 연등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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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를 인 담을 감고 있는 담쟁이 넝쿨이 벌써 푸른 잎으로 담을 감싸고 있습니다. 웅장하게 조성된 지장보전의 처마 모서리에 달린 풍경이 멀리 교하의 빼곡한 아파트촌위에서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넓은 법당에서는 불자들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린 남매와 함께 막 108배를 마친 가장의 얼굴은 상기되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습니다.

약천사의 담과 담쟁이덩굴. 이 둘의 어울림이 아름답습니다.
 약천사의 담과 담쟁이덩굴. 이 둘의 어울림이 아름답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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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뒤쪽에는 몇 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습니다. 작년에 차안(此岸)과의 인연을 끊은 고박용하씨의 사진 앞에서 한 아가씨가 팬들이 두고 간 유난히 많은 선물들을 가지런히 재정열하고 그 하나하나를 물티슈로 닦고 또 닦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가족이신가요?"
"아니요. 팬입니다."
"언제 세상을 버리셨나요?"
"작년 6월 30일이요."

그녀는 박용하씨의 사망일까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여전히 탤런트이자 가수였던 박용하씨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박용하씨의 위패에 받쳐진 팬들의 사모의 정
 고박용하씨의 위패에 받쳐진 팬들의 사모의 정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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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전앞 넓은 마당에는 각자의 기원을 담아 가족들의 이름을 올린 연등이 촘촘하게 달렸습니다. 그 연등행렬의 끝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의 석상이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아이들을 감싸 안은 모습으로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의 포대화상은 중생들이 주는 대로 받아먹어 풍선처럼 부푼 뚱뚱한 몸집을 갖게 되었고 대지를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삼아 전국을 유랑한 자유인의 삶을 사신분입니다. 지팡이에 큰 자루를 달아 메고 다녔는데 그 자루 속에는 온갖 물건들이 다 들어있어서 중생들이 원하는 데로 내주어서 포대스님이라는 이름을 얻었답니다. 특히 동네를 돌면서 아이들에게 그 자루속의 장난감이나 군것질거리를 아낌없이 나누어주곤 했답니다. 아이들이 놀리고 때려도 웃음으로 받고 아이들의 눈높이로 교우하면서 세속사람들과 차별 없이 어울리는 삶을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입적하시고 미륵보살의 화신임을 알게되었지요.

아이들의 만만한 놀이터의 모습으로 그려진 포대화상의 석상. 포대화상의 편안한 미소는 세상의 온갖 근심을 씻는 묘약입니다.
 아이들의 만만한 놀이터의 모습으로 그려진 포대화상의 석상. 포대화상의 편안한 미소는 세상의 온갖 근심을 씻는 묘약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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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화상 뒤로는 소원패를 적어 거는 인연대(因緣臺)가 만들어져있습니다. 수백 개가 빼곡하게 걸린 소원패의 발원의 내용을 보면 세속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소망이 너나없이 소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취업, 합격, 사업번창,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이 그것입니다.

인연대에 걸린 불자들의 소원패
 인연대에 걸린 불자들의 소원패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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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계단을 오르면 심학산을 배경으로 웅장한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큰 연꽃을 좌대삼고 왼손에는 약병을, 오른손에는 약을 쥔 시무외인(施無畏印)의 수인입니다. 열두 가지 서원(誓願)을 세워 중생의 질병 구제하고 재액과 화난을 소멸케하며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부처님입니다.

중생의 질병 구제하고 재액과 화난을 소멸케한다는 약사여래불. 약천사의 약사여래불은 대웅전보다 크게 조성되어있습니다.
 중생의 질병 구제하고 재액과 화난을 소멸케한다는 약사여래불. 약천사의 약사여래불은 대웅전보다 크게 조성되어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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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왼쪽으로는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약산사의 대웅전은 소박하리만큼 작은 모습입니다.

공양간에서 공양을 마치자 연등의 점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지장보전에서는 세분의 스님과 불자들이 외는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큰 강을 흐르는 강물처럼 제 귀를 스쳤습니다.

불자들과 함께 염불을 외는 스님
 불자들과 함께 염불을 외는 스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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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어지고 연등의 불빛이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대웅전 뜰에서 약사여래불 아래로 펼쳐진 연등의 부드러운 불빛들이 낮의 예토(穢土)를 정토(淨土)로 바꾸었습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욱 뚜렸해집니다. 칠흑의 어둠속에서도 빛을 내는 것이 진리일 것입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욱 뚜렸해집니다. 칠흑의 어둠속에서도 빛을 내는 것이 진리일 것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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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실존

저는 불기 2555년의 초파일, 약천사에서 '색(色)'과 '공(空)'에 대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애썼습니다.

제게 항상 손에 쥔 물과 같아서 손에 쥔듯해서 펴보면 아무것도 없는 어려운 그 '색'과 '공'이었습니다.

약천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향을 바치는 불자
 약천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향을 바치는 불자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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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불교 경전가운데에서도 불교사상의 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반야바라밀다심경 (般若波羅蜜多心經). 그 반야심경 중에서도 핵이라고 할 수 있는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 쉽사리 이 범인의 손에 잡힐 리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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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이명권 박사께서는 '예수, 석가를 만나다(코나투스 간)'에서 '색'은 산스크리트어의 루파(Rūpa)의 번역으로 '물질세계'이며 '공'은 '작용의 실상'이라고 논리적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색은 인간의 몸과 정신작용을 포함한 물질세계이고, 공은 물질세계의 제현상이 변함없이 고유한 실체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연기(緣起)적으로 발생하기에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공(空)하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약천사에서 담쟁이 넝쿨이 담을 감고 녹색 잎을 뻗어 초록으로 조화된 아름다운 담을 보았고 풍경이 바람에 흔들려 내는 고요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유명을 달리한 한 탤런트을 잊지 못해 그 위패를 돌보는 정애(情愛)를 목도하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가진 것을 아낌없이 퍼주는 포대화상의 미소와 만났습니다. 도량의 마당에 소원의 등을 단 수많은 불자들의 안온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과 대면했습니다. 담쟁이가 담을 만나고, 풍경이 바람을 만나고, 한 처녀가 세상을 등진 탤런트를 여전히 가슴에 품고, 포대화상이 아이들의 매질까지 거두고, 불자들이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 모든 것들이 색이었습니다. 그 결과인 조화의 아름다움과 소리와 정애와 미소와 따뜻함이 모두 공이었습니다.

지장보전의 처마 끝 풍경과 심학산을 광배光背삼은 약사여래불 그리고 멀리 교하의 아파트군
 지장보전의 처마 끝 풍경과 심학산을 광배光背삼은 약사여래불 그리고 멀리 교하의 아파트군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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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직 관계 속에서만 존재가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 관계의 결과가 공할진대 그 공은 예전의 공함이 아닌 것입니다.

인연, 우리는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연기緣起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연, 우리는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연기緣起적 삶을 살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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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사의 도량을 가득 메운 연등들은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을 드러내고 있고 그것은 '내 이웃한 것들을 부처님 대하듯' 관계에 최선을 다하라는 웅변이기도합니다. 색즉시공은 '덧없는 인생'을 논함이 아니라 '잘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명제인 것입니다.

가족들의 안온을 바라는 희원이 담긴 연등들.
심학산에 어둠이 내리고 연등에 불이 밝혀졌습니다.
 가족들의 안온을 바라는 희원이 담긴 연등들. 심학산에 어둠이 내리고 연등에 불이 밝혀졌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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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나, 가족과 나, 이웃과 나……. 그 수많은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나의 실존이 가능하고 그 실존은 본질로 가는 디딤돌임을 알겠습니다.

심학산에 어둠이 내리고 연등에 불이 밝혀졌습니다. 온갖 것이 다 드러난 낮에서 푸른빛을 머금은 저녁의 가람이 마치 정토淨土처럼 변했습니다.
 심학산에 어둠이 내리고 연등에 불이 밝혀졌습니다. 온갖 것이 다 드러난 낮에서 푸른빛을 머금은 저녁의 가람이 마치 정토淨土처럼 변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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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짙어지자 가람은 연등으로 더욱 선명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약천사를 나오면서이 세상 모든 존재들이 본질로 가는 깨달음의 행복한 노정을 위해 합장했습니다. Bon voyage!

연등에 불이 밝혀지자 이곳은 예토가 아니라 마치 정토같은 느낌으로 변했습니다.
 연등에 불이 밝혀지자 이곳은 예토가 아니라 마치 정토같은 느낌으로 변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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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약천사, #심학산, #심학산둘레길, #부처님오신날, #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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