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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지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새벽 4시, 잠을 털고 일어났다. 새벽 일찍 일어나 미리 물색해둔 남명마을 남명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야영장소로 돌아왔다. 한 사람 두 사람 텐트에서 빠져나와 밥을 짓고 짐을 챙기고 도시락을 만드느라 한동안 부산스럽다. 신속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도시락을 가볍게 만들고 다음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갖춘다. 그 이름도 낯선 아리랑 릿지. 양산등산교실 제5기의 3주째 교육 마지막 관문인 졸업등반 아리랑 릿지로 모든 교육은 끝난다.

 

이상배 학감님의 인도로 언양 가천저수지 논두렁 위에 집결한 우리는 배낭을 메고 안전벨트와 안전모 암벽화 등 빠진 장비가 없는지 확인한 따가운 볕살 받으며 산길로 접어든다. 어제부터 계속 이어지는 강행군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지쳐 무너진 표정들. 한걸음 한걸음이 고난의 행군이다. 어깨가 축 늘어지고 체력이 바닥을 치는 것 같다. 내가 왜 이 짓을 시작한 거지?! 갑자기 우울해진다. 어제 백운슬랩 후유증으로 온몸의 근육이 뭉칠 대로 뭉쳐 고개를 돌리기도 손가락을 굽히기도 버거울 정도로 잔뜩 굳어 있다. 날씨까지 5월의 날씨답지 않게 푹푹 찐다.

 

이 바위들을 넘어선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랴

 

숲 속으로 접어들어 경사 높은 산길을 한 시간 남짓 걸어 아리랑 릿지에 당도했다. 신불산 아리랑 릿지란 영축산과 신불산 능선 동쪽 사면에 높이 20~40m 암봉 10개로 이어진 등반 거리 500m(미터)의 이름을 말한다. 아리랑 릿지와 쓰리랑 릿지는 서로가 150여 미터 거리에 수평으로 서 있다. 아리랑고개 넘듯 한다고 해서 아리랑 릿지인가?! 전문산악인 치고 백운슬랩과 아리랑 릿지 등반을 안 해 본 사람이 없다는데, 교육생들은 전문적인 등반기술로 바위를 타는 것이 아니라, 전문 강사들의 도움으로 암벽슬랩과 아리랑 릿지를 체험하는 정도의 교육이라 하겠다.

 

목적지에 도착해 우리가 넘어야 할 직벽 암봉들을 올려다보면서 기가 질린다. 한 개도 아닌 9개(?)의 높은 암봉들을 넘나들어야 한단다. 암벽의 길이가 20~40m의 암봉들로 줄줄이 서 있다. 우리 앞에서는 바로 앞에 것만 보일 뿐이다. 아으~ 내가 이걸 왜 시작한 거지. 후회가 밀려온다.

 

김태훈 대표강사는 교육생들을 집합시키고 다시 흩어진 마음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긴장시킨다.

 

"양산등산교실 구호 시.작!"

"펼쳐라 '꿈', 다지자 '심'

"양산깡다구 3초, 발사!" "아아아~악.악!"

 

모두 없는 힘을 끌어 모아 힘껏 외친다. 산 노래가 이어진다. 교가에서 산정, 그리고 클라이머의 찬가까지. 모두들 산산이 메아리쳐 울리게 노래를 부른다. 산 노래에 이어 엎드려서 팔굽혀 펴기를 반복한다. 이건 등산교실이 아니라 양산등산사관학교다. 여자든 남자든 기가 팍팍 들어간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산 노래를 우렁우렁 멀리멀리 울려 퍼지도록 높이 부른다.

 

이제 아리랑릿지 등반을 할 준비를 갖추고 바위 앞에 줄을 선다. 앞에 먼저 올라간 동기들은 낑낑대기도 하면서 잘 올라간다. 내 차례다. 일단 한 번 올라서면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이춘환 교육부장은 암벽 타기는 즐기면서 해야 한다고 백운슬랩에서 말했던가. 즐기면서 하기는 내겐 아직 먼 것 같다. 그저 넘어야 할 숙제요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몸이 축 늘어졌지만 마음을 다잡으면서 바위벽에 붙는다. 계속 극.복! 극.복!이 있을 따름이다. 아홉 개의 암벽은 극복의 대상이다. 한 개의 수직 암봉을 타고 넘고 겨우 넘어섰다 싶으면 또 다른 암벽이 눈앞에 버텨 서서 가로막고 있다. 손발 디딜 곳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나를 거부하듯 수직으로 내뻗은 바위 앞에서 깜깜했다. 한 개의 바위를 넘고 보면 또 다시 앞에 버틴 바위벽, 넘고 또 넘기를 몇 번이던가.

 

바위 앞에 설 때까지도 손발에 힘이란 힘은 다 소진된 것 같은데, 바위에 한 발 한 손 딛고 올라서면 그래도 숨은 힘이 솟았다. 어차피 올라야 한다는 생각이 없던 힘까지 끌어올리나보다. 한 개 한 개의 바위마다 사력을 다한다. 조금만 실수라도 할라치면 사고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들을 넘어서게 하는 것은 힘으로 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남는 것은 정신력이다. 정신력이 없던 힘도 끌어올린다. 그렇게 바위를 넘고 또 넘었다.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1피치, 2피치... 몇 피치까지 넘어선다.

 

몇 개의 바위를 넘었을까. 바위 아래 우회로를 통해 돌아가는 동기들을 발견했고 순간, 나는 흔들렸다. 계속 위험을 감수하고 바위벽을 오를 것인가, 우회로를 택할 것인가 갈등이 생겼다. 앞에 사람도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난들 못하랴 하면서 바위를 또 넘는다. 한 개의 바위를 사력을 다해 넘고 나면 맥이 탁 풀려서 앞에 있는 바위를 더 이상 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땐 우회로에 눈길이 닿는다. 매 순간이 위기 앞이었고 매순간이 물러설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를 저울질했다. 흔들리면서 마음 다잡고 다시 바위에 붙었다.

 

바위를 타고 넘고 또 넘으면서, 암봉들을 마주하면서 인생을 생각했다. 우리 인생 또한 바위타기와 같다. 끊임없는 문제와 문제 속에서 극복해내야 할 것들을 수없이 맞닥뜨린다. 살아오면서 내가 정면 돌파하지 못하고 물러섰던 일들은 얼마나 될까. 문제 앞에서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던 것들. 그런 일들은 오랫동안 찜찜하고 마음에 얼룩을 남겼다.

 

이 바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과거에 못다 했던 인생의 과제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내게 바위처럼 가로막는 문제들 역시 극복하지 못하고 물러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다.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어도 나아가야 했다. 인생은 극복의 길이다. 끊임없이 넘어서야 하는 문제들 앞에 우리는 선다.

 

이 바위들을 정면 돌파하면서 과거의 얼룩들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내 앞에 다가오는 과제들을 담력 있게 넘어설 수 있으리라. 뱃속 밑에서부터 뜨겁게 오기가 차올랐다. 바위를 하나 넘고 또 바위 앞에 설 때마다 내려놓고 싶다. 피하고 싶고 다 팽개치고 싶은 유혹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바위를 넘어서면 못할 일이 없다. 그 배짱으로 무슨 일인들 못하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겨우 몇 개의 암봉을 남겨놓고 있을 때, 우회로를 통해 몇 명의 동기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강사님이 두 개를 통과하라고 했단다. 두 개를 우회로를 통해 통과하고 다시 바위 앞에 섰다. 남은 것은 두 개의 피치. 무사히 통과, 그리고 가장 어렵다는 마지막 암벽까지 넘어섰다. 어렵게 바위와 바위를 넘어와 높은 바위 위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동기생들의 얼굴엔 꽃피듯 환했다.

 

아침 일찍 시작했던 아리랑릿지 등반은 해가 넘어갈 때쯤에야 끝이 났다.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해 오르고 또 오르고 올랐던 바위들이 저만치 우리 등 뒤에 있다. 바위 바위를 다 넘고 보니 이젠 없던 힘도 솟구친다. 피곤은 사라지고 기가 펄펄 살아난다. 우린 도전했고 살아서 돌아왔다. 모두들 장하다. 화기애애함 속에서 자일에 묶은 끈끈한 동료애로 한데 뭉쳐 사진촬영을 하고 가파른 하산 길로 내려가는 길에 발걸음은 처음과는 정반대로 사슴처럼 가뿐하다. 해는 지고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산길에서 우리들의 가슴 벅찬 산 노래 번져나갔다.

 

뜨거운 환대와 포옹 속에서

 

출발지에 이르자 김명관 교장을 비롯해 이상배 학감님과 여러 강사님들,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참여해 준 학교 동문들이 길게 줄을 서서 박수를 쳐 주었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뜨겁게 포옹으로 맞아주어 우리를 감동시켰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학감님과 대표강사 그리고 교육 부장님을 헹가래를 쳤다.

 

아... 이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 얼마나 뜨거운지...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자일에 엮은 끈끈한 동기애와 강사들과 교육생들과의 깊은 교감이 교차했다. 극복의 참 의미와 묘미를 온몸을 던져 체득하면서 뜨겁고 끈끈한 산정으로 맺어진 동기들과 강사들. 그 어느 학교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진한 감동으로 우리 가슴은 벅차올랐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이다.

 


태그:#양산등산교실, #아리랑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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