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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인 댄스를 선보이는 <파슨스댄스컴퍼니>
 역동적인 댄스를 선보이는 <파슨스댄스컴퍼니>
ⓒ 파슨스댄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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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6일. 지인의 초대로 모처럼만에 공연장을 찾았다. 춘정이 흐드러지는 봄밤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혹은 격정적인 댄스 공연을 즐길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는 나에게 남편이 던지는 맥없는 한마디.

"그니까 그게 뭐라구? 파슨스댄스? 그런 춤도 있나? 볼룸댄스나 살사댄스는 들어봤는데 파슨스댄스는 또 뭐냐? 모던발레라구? 난 그냥 안 가면 안 될까? 거참 제목만 들어도 어째 고문이 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오는데..."

공연이라면 무조건 '나훈아'와 '조용필'을 꼽는 남편. 남편은 오직 이 두 거장(?)의 무대가 아니면 그 어떤 세계적 아티스트의 공연이 와도 절대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 남편에 있어서 아티스트라고는 오직 한국이 낳은 거장인 나훈아와 조용필 저 두 형님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객계의 신토불이가 아닐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거부감부터 나타내는 남편에게 절대로 면박을 주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선물받은 아까운 표를 바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긴 남편의 거부감을 뭐라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최초로 선보인다는 이름도 생소한 '락 오페라 모던 발레'라는 예술분야에 대해 나조차도 전혀 아는바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 낯가림과 편식(신토불이만 고집하는)이 심한 남편에게는 객석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고문일 가능성이 적지 않기에 공연보다는 맛있는 저녁식사와 지인과의 대화에 비중을 두었다.

공연보다는 식사,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작전은 주효해 보였다. 지인과 공연전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남편의 기분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남편의 발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이거 젊은 애들만 많고... 당신은 뭐 아는 거야? 락 오페라 모던발레가 뭔 소리냐? 아무래도 나는 잘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드는데..."

아! 정말 못 말리는 남편. 밥 먹을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다더니 공연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김 빼기 시작이다.

공연시작을 알리는 암전. 첫 번째 작품인 'CAUGHT'. 어둠 속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는 남자 무용수가 등장한다. 라틴계로 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무용수는 관객을 잡아먹을 듯 한 시선으로 응시하더니 무대 위를 나르는 듯 뛰어 다닌다.

'CAUGHT' 스토로브라이트를 이용한 안무로 6분간 100번의 점프연기를 선보인다.
 'CAUGHT' 스토로브라이트를 이용한 안무로 6분간 100번의 점프연기를 선보인다.
ⓒ 파슨스댄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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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는 스트로브라이트를 이용한 안무 작품으로 암전과 스트로브라이트의 깜박거림 사이를 기술적으로 계산해 마치 하늘을 나는 듯 한 착시를 주는 작품이다. 점프의 최고점과 스트로브라이트의 켜짐 순간을 완벽하게 계산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작품이다.

놀랍게도 이 작품을 연기하는 솔로 댄서는 6분간의 작품 동안 100번이 넘는 점프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였을까. 무대위로 쏟아지듯 떨어지는 땀 방울이 예사롭지 않았다.

모던 발레든, 현대 무용이든 익숙치 않은 관객에겐 지루할 수 있는 법이지만 '코트' 만큼은 누가봐도 지루할 틈이 없는 공연임에 틀림없다. 100여 번 깜빡이는 스트로브조명도 긴장감을 고조시켜 주거니와 박진감 넘치는 음악 또한 그 감동을 더해주는 때문이다.

격정적인 무대 '코트'가 끝나고 관객의 뜨거운 환호, 박수와 함께 붉은 커튼이 내려왔다. 아 그런데... 이게 왠 비극인가. 어디선가 조용히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 남편은 자고 있었다. 쉴새없이 깜빡이는 조명과 격정적인 음악소리에 눈을 감았다가도 뜰 것 같은 이곳에서 소리도 빛도 아랑곳 않고 잠이 든 남편. 정녕 관객계의 종결자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겨우 짧은 하나의 무대가 끝났을 뿐인데 남편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졸려 죽겠다. 뭐가 이렇게 어렵냐? 무슨 뜻인 거야? 솔직히 말해봐. 당신도 재미없지?"

툴툴거리며 불만을 토로하더니 두 번째 작품부터는 아예 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댄 채 대 놓고 잠을 청한다. 아 정말 자리 값이 아깝다.

두 번째 작품인 '리멤버 미'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세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마리'라는 한 여인을 사랑한 두 남자 '루카'와 '마커스'. 마리는 결국 루카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만 이를 시기한 마커스는 마리를 납치 강금하고 복수심에 불타 마리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사랑하는 여인 마리의 죽음을 알게 된 루카는 마커스를 찾아가 복수를 하지만 뒤늦게 자신의 형제임을 알게 되고 형제와 연인을 잃은 슬픔에 자살을 선택한다는 스토리.

<파슨스댄스컴퍼니>
 <파슨스댄스컴퍼니>
ⓒ 파슨스댄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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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드라마에서나 만날 것 같은 유치 찬란 복수치정극이라서 그런지 스토리에 대한 이해도 쉬울뿐더러 배경으로 흐르는 또한 아주 익숙해서 그제야 왜 이 공연에 '락 오페라 모던 발레'라는 생소한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서곡과 <라보엠>의 그대의 찬손, <카르멘>의 하바네라,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나비부인>의 어떤 개인 날 등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편한 오페라 곡을 락 버젼으로 편집하고 두 명의 보컬리스트가 직접 무대에 나와 라이브로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특이하다.

때로는 삽입곡이 스토리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있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무거운 오페라의 원곡을 사용한 것보다는 훨씬 가볍고, 경쾌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와서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대 무용문외한인 내 입장에서는 큰 점수를 줄만 했다.

커튼콜에서 무대 위의 공연자들과 객석이 함께 음악에 맞추어 함께 춤추며 교감하는 장면은 부쩍 객석과 가까워진 현대무용을 느끼게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감은 눈을 뜨지 않는 한사람도 있다. 거의 한 시간여 동안 의자에 몸을 깊숙이 밀어 넣고 잠을 자는 사람. 심지어 낮게 코까지 골아주는 대담함까지.

"끝났어? 아휴 씨끄러워서 잠도 못 잤네. 여보, 미안한데 다음부터는 당신 혼자와라. 난 정말 이건 아니다 싶다. 아이구 허리야. 불편해서 혼났네."

예전 같았으면 남편의 모습이 밉고 화가 나만도 하건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측은한 생각이 든다. 마누라 고집에 못 이겨 끌려 나오긴 했는데 밀려오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남편의 모습이 왠지 짠해 보이는 것이다.

아무래도 다음엔 꼭 남편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조용필 형님이나, 나훈아 형님 콘서트 표 꼭 구해서 같이 가줘야겠다. 거기서 나도 코 골면서 자는 모습을 보여줄까?


태그:#파슨스댄스컴퍼니, #락오페라모던발레, #리멤버미,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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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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