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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4·28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행사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쓴 기사임을 알립니다. - 기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올 초 피자배달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청년 노동자입니다.

 

부모님의 등록금 부담 좀 덜어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불효한 꼴이 되었지 뭐에요. 사고 당시에는 참, 이팔청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 화도 많이 나고 세상 원망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하늘나라에 오니 저 말고도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건설현장에서 크레인 붕괴로 깔려 죽거나, 안전망이 없어 떨어져 죽은 노동자도 많이 만났어요. 2008년인가?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사망한 40명의 노동자도 봤어요. 삼성전자·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분들도 만났고요.

 

저도 그렇지만 이 분들, 일하다 허망하게 가족들과 이별한 아픔을 아직도 갖고 계세요.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일했던 공장이나 사무실, 현장의 동료들로부터 쉽게 잊히는 것도 아쉬워하시더라고요. 조선소 도장공으로 일하다 떨어져 사망하신 분은 "예전에는 산재사망이 있으면 작업을 중지하고 사망 원인을 찾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마련하고서야 일을 다시 시작했는데, 요즘은 사고현장 빨리 치우고 일 하는 게 우선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기도 하세요.

 

나에겐 없을 줄 알았던 일이 막상 내 일이 되고 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남은 이들이 내 죽음을 조금은 오래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왕이면 기억에만 멈추지 말고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엇인가 조치를 취하는 거고요. 저만 하더라도 배달할 때 보호구가 제대로 지급되고 사람이 없어서 다음 배달을 걱정하며 '빨리빨리'만 강요받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부모님과 떨어지진 않았을 텐데… (훌쩍)

 

그런데, 올 4월에 "우와~ 이런 것도 하는구나!" 하는 걸 봤어요. 노동조합이랑 안전보건단체라고 하던가? 암튼 저한테는 좀 낯선 단어인데, 그런 단체들이 일하다 죽은 노동자를 기억하자는 행사를 가졌더라고요. 4월 28일은 종로 보신각 앞에서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시민문화제도 열었고,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소박하지만 하늘에 있는 우리로서는 가슴 뭉클한 추모행사가 여러 곳에서 있었어요.

 

 

제 쪽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2011년 2월 13일, 피자배달을 하고 점포로 돌아가다 문래동 사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피자배달원을 기억하는 모임이 바로 그 자리에서 있었어요.

 

서비스연맹이랑 청년유니온,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함께 했죠. 대로변에 우리를 기억한다는 플래카드가 세 개나 걸렸고 짧았지만 추모공간도 마련해줬어요. 이 분들이 시민과 함께 한 덕에 30분 배달 보증제가 폐지됐는데, 이런 추모행사까지 챙겨줘서 하늘에서긴 하지만, 제가 어깨에 힘 좀 줄 수 있었죠.

 

아이고, 옆에 계신 건설노동자 아저씨가 자꾸 자기들 얘기도 해달라시네요. 네, 네, 지금 시작합니다.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를 가장 처음으로 한 곳이 여수에요. 지난 달 16일인데요, 여수 건설노동자들이 여수화학산단에서 백혈병과 석면 폐암으로 사망한 분들을 추모했답니다. 추모장소는 여수시청 앞 근로복지공단이었고요. 여수는 석유화학 공장이 많아 이곳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직업병이나 사고로 많이 돌아가신데요.

 

건설노조는 4월 26일 한국농어촌공사를 찾아갔답니다. 올 1월 13일이 강릉 오봉저수지 붕괴사고로 4명의 건설노동자가 사망한 날이거든요. 그 공사를 발주했던 한국농어촌공사 앞에서 추모 헌화를 하고 공사 정문과 주변 나뭇가지에 추모 리본도 매달아 시민들에게도 행사 의미를 알렸어요. 마침 이날 가랑비가 내려 분위기가 조금은 침통했답니다.

 

 

 

철도노동자들은 작년 7월 고양 KTX 차량기지에서 사망한 동료를  4월 20일에 추모했어요. 7월 6일, 객차 작업대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발판이 분리되면서 떨어져 크게 다치셨는데, 사흘 뒤에 끝내 사망하셨대요. 민주노총은 4월 25일 열린 2011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4대강 공사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19명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날 4대강에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를 상징하는 안전화와 안전모 19개를 놓았는데요, 사진기자들 플래시가 쉴 틈 없이 터지더라고요. 건설노동자 아저씨들은 죽어서야 겨우 관심 받는 자기네 현실이 슬프고 원통하대요. 사실 우리도 작년에 피자배달을 하다 사망한 분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관심 받은 거잖아요. 누군가 죽기 전에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사실 이게 마음에 들었는데요, 4월 28일 종로 보신각에서 열린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 시민문화제'요. 말 그대로 산재사망 이야기를 시민들과 나누는 자리였던 거 같아요.

 

불교계에서 추모 위령제를 지내줬고 기독교계에서는 예배를 해주셨죠. 인디밴드 한음파와 하이미스터메모리는 출연료 없이 재능 기부로 추모 시민문화제 자리에 섰더라고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한 호응해줬을 걸! 노래하던 어떤 분은 "우리는 산재보험이 없다"고 하던데, 이렇게 예술하는 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참, 이날 무대나 영상이 꽤 근사했죠? 이게 시민과 단체, 노동조합이 십시일반해서 만들어졌더라고요. 500명이 넘는 시민과 40여개에 이르는 단체들이 추모위원이 되는 성금을 냈고 그 돈으로 이런 근사한 추모 문화제 공간을 꾸린 거래요.

 

제가 노조나 산재보험, 이런 거 잘 몰랐는데 하늘나라에 와서 많이 배워요. 굉장히 유명한 분이던데, 송면이 형이랑 원진레이온 직업병 아저씨들한테 정말 많은 얘기를 듣고 있거든요. 송면이 형은 저보다 더 어린 나이에 수은 중독으로 돌아가셨더라고요. 아직은 입에 익숙하지 않은 말들도 많은데, 일하면서 내가 모르는 것들이 정말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하늘에서는 산재사망으로 돌아가신 많은 분들이 자신들을 기억해줘서 정말, 정말,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요. 살짝 제 욕심이지만 우리를 기억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기록하고 남겨서 정말 산재사망이 많이 일어나지 않으면 해요. 된다면 내년에는 올해 같은 행사나 문화제에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주면 좋겠고요. 아. 짧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주저리주저리 많이 떠들었네요. 죽은 사람 소원 들어준 셈 치고 잘 봐주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일과건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4.28추모, #산재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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