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봄이 오면 꽃 피고 꽃 지면 푸른 잎 돋는 이 놀라운 질서를 해마다 보고 해마다 감동한다. 신록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산을 찾는 것이라 믿고 가까운 봉명산에 가기로 했다.

지리산에 둘레길이 생긴 후로 이 나라 모든 산에 둘레길이 생기고, 마침내 봉명산과 이명산에도 물고뱅이 둘레길이 생겼다. 좋지 않게 표현하여 냄비근성이라 폄하하지만 이런 현상은 아마도 우리 민족의 열정적 모습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끓어오르는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산 입구부터 신록은 나를 감동하게 한다. 지난겨울 그 추운 날씨에도 가지 속에 저 잎을 위한 싹들을 지켜내서 마침내 이렇게 환한 푸름을 나에게 보여주는 저 나무들은  말 없는 나의 스승이다. 봉명산 군립공원이라는 팻말에서 보듯이 이 땅위에 쓸 만한 곳은 죄다 국립이니 도립, 시립, 군립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다. 뒤집어 보면 그 말이 없이는 보호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치 주의적 발상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봉명산 입구 사진
▲ 봉명산 입구 봉명산 입구 사진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올라가는 처음 약간의 경사로가 있어서 산에 오르는 느낌을 준다. 산길은 사람들이 만든 길이며 산이 사람들에게 허락한 길이다. 산과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산을 오른다. 처음 오르막을 지난 뒤 이정표가 나온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알려주는 이정표는 삶에 있어서도 긴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삶에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
▲ 이정표 이정표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정상으로 가는 길로 가야 한다. 하지만 정상으로 가지는 않는다. 정상 주위를 빙 두르는 둘레길이 나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에는 지난겨울을 이긴 푸른 잎들이 이미 내 손마디만큼 자라 있었고 그 사이로 간혹 꽃이 먼저 피는 나무들의 꽃이 보였다. 진달래는 이미 졌지만 철쭉은 잎과 함께 가끔씩 보였다. 이 둘레길의 이름 물고뱅이는 이 지역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한자음으로는 무고리이고 우리말로 물고뱅이인데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이라는 설과 무기고의 방이라는 설이 있다.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이정표
▲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이정표 물고뱅이 마을 둘레길 이정표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총 길이는 5.6km로서 비교적 짧은 둘레길이지만 봉명산과 이명산 두 산을 거치기 때문에 짧지만 여러 풍경을 볼 수 있다. 남도의 산들은 오래된 산들이라 지리산 봉우리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험한 산이 없다. 더욱이 바다에 인접한 산인지라 봉우리는 할머니 등처럼 완만히 굽어있다. 둘레길을 가다보면 남쪽으로 멀리 사천만과 비토섬도 보인다.

바다가 보인는 사진
▲ 희미하지만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보인는 사진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봄이 중간을 넘어서니 이제 산들은 벌써 여름을 맞을 준비를 한다. 산색이 저리 찬란한 것은 단지 녹색 때문인가? 아니면 계절과 공기의 조화 때문인가? 산을 이리저리 돌아서 나 있는 길을 걸어가면서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자신들만의 기념물을 만나게 된다.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르지만 돌탑들이 몇 개 모여 있는 곳을 지나면서 사람들과 자연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원할 것이고 사람들은 거기에 나름대로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균형과 조화의 입장에서 환경보호를 다시 생각해 본다.

돌탑
▲ 작은 돌탑들 돌탑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과 내가 하나 됨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자연(길)이 주는 아름다움이 나의 감정을 순화하고 마침내 내가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아름다운 길이 이곳 둘레길에는 있다.

아름다운 길1
▲ 아름다운 길1 아름다운 길1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아름다운 길2
▲ 아름다운 길2 아름다운 길2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길만 아름다우랴 허리를 숙이면 많은 봄꽃들이 산을 꾸미고 있다. 이른 봄에 피어 이미 져 버린 얼레지를 운 좋게 만났다. 자연은 나에게 넓어지라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은 것도 함부로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아름다운 것을 대하는 태도는 나의 삶 전체에 영향을 준다.

얼레지
▲ 얼레지 얼레지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산허리를 돌아 나와 봉명산을 벗어나면 차들이 다닐 수 있는 임도를 만나고, 임도 넘어 아름다운 작은 봉우리들과 마주하고 또 그 길을 사이에 두고 이명산을 만나게 된다. 이명산 들머리부터 편백림이 시작되는데 숲의 정기를 내뿜는 편백 숲을 지나는 기분은 남다르다.

빽빽한 편백림
▲ 빽빽한 편백림 빽빽한 편백림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편백 숲을 지나 산허리를 지나면 호젓한 숲길을 또 만나게 된다. 산을 느끼면서 동시에 숲을 느끼는 이중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길이다. 혼자 걷는 숲길에서 삶의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찌꺼기가 버려지기를 기원해 본다.

산길
▲ 호젓한 산길 산길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이명산을 내려와 다시 봉명산으로 오르는 입구에 뜻밖에 만해 한용운 선사의 시비를 만났다. 여기 이 비가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때 다솔사에 계셨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지만 이곳은 다솔사와도 꽤나 떨어진 곳이다. 내용을 알고 보니 여기에 선사의 거처가 있었다 한다. 님의 침묵이 여전히 가슴에 와 닿은 것을 보면 그 시절이나 지금 시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시비
▲ 만해 한용운 선사 시비 시비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이제 길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처음 왔던 곳으로 가는 오르막이 남았다. 신록이 푸르러 지는 이 계절에 산에 오르고 또 산에 있는 길을 걷는다. 길은 어디서나 계속되며 또 어디로든 지나간다. 내 삶도 이와 같이 계속될 것이며 또 지나갈 것이다. 신록이 눈부시다.

신록
▲ 눈부신 신록 신록
ⓒ 김준식

관련사진보기



태그:#봉명산, #이명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