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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젖듯'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늪에 빠져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형 MD'를 추진하는 것이지 미국 MD에 편입되거나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미국 정부도 참여나 편입이라는 단어는 안 쓴다. 대신 '협력(coope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협력이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일방주의적 색채를 탈색시키고 재정 분담 등 동맹·우방국들의 협조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미 한국은 미국과 MD 협력을 하는 핵심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한국이 엄청난 외교안보적 부작용과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야기할 수 있는 MD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까닭이다.

 

MD 협정 체결 7개월 동안 '쉬쉬'

 

최근 한국 내에서 MD 문제가 다시 공론화된 것은 미국 국방부 고위 관료들이 상원 청문회에서 밝힌 내용이 알려진 것이 계기가 되었다. 브래들리 로버츠 미 국방부 핵·미사일방어 정책 담당 부차관보는 지난 13일 청문회에서 "우리는 한국과 양자 MD 협력 문제를 논의해왔고 최근에는 한국이 미래의 BMD 프로그램의 유용성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이 요구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약정과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청문회에 나선 패트릭 오라일리 미사일방어국(MDA) 국장도 "MDA는 현재 20개 이상의 국가들과 MD 사업, 연구,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며,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 정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이명박 정부는 약정서는 공동연구를 위한 것으로써 미국의 미사일방어국(MDA)과 한국국방연구원(KIDA) 사이에 작년 9월 체결된 것이라며 "현재로선 국방부 산하기관 연구로 시작했지만 연구 결과가 나오면 국방 당국 차원의 협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간 약정이 체결된 지 7개월 동안 '쉬쉬'하다가, 미국 정부가 먼저 말하자 이를 확인해준 셈이다.

 

이처럼 한미간에 MD 공동연구 약정까지 체결한 것이 확인되면서 한국의 MD 편입 의혹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그러나 MB 정부 관계자들은 "우리가 MD체계에 편입되자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며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한미 간에 MD 약정이 체결된 작년 9월 이후의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약정 체결 직후인 9월 27일, 미 국무부의 검증 및 순응·이행국의 프랭크 로즈 부차관보는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은 이미 중요한 MD 파트너들"이라면서 양자 협력을 넘어선 다자간 MD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고위 관료가 한국을 일본과 함께 "이미 중요한 MD 파트너"라고 언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주목할 만한 발언은 한 달 후에 한국 국방부로부터도 나왔다.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이 10월 22일, "(MD와 관련해) 조금 생각할 것은 왜 국민들이 MD에 거부적인 반응을 갖고 있냐면 옛날에는 미국이 미국을 중심으로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MD를 만들었다. 지금은 바뀌어서 지역별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은 과거와 달라져서 그것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MD 참여 수순을 밟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이처럼 한미 고위 관료들은 양국 간의 MD 약정 체결 이후 발언 수위를 이전과 크게 달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 국무부의 군비통제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는 3월 21일 "우리는 일본, 프랑스, 이스라엘, 한국, 호주 등과 보다 능력 있는 MD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더욱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미국 MD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국가군에 포함시킨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중간에 다다른 한국

 

기실 미국 MD 편입과 '한국형 MD'의 경계선은 애매모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는 '참여'나 '편입'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고, MB 정부 역시 '한국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 MD와의 무관함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어떻게 해명하든, 한미 간 MD 협력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근거가 하나 둘이 아니다.

 

우선 한미 간에 기술적·전략적 대응방안을 연구하는 약정서에 작년 9월 서명하고 올해 4월부터 협의를 개시했다는 소식 자체가 양국 간 MD 협력이 상당히 깊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은 이미 MD 체제에서 하층 방어를 담당하는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와 MD용 레이더, 그리고 담당 부대를 한국에 배치한 상황이다. MD 능력을 구비한 이지스함도 수시로 합동군사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은 이미 미국과 합동 MD 훈련을 벌이기도 했다. 양국 해군은 2010년 7월 초에 실시한 훈련에서는 한국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이 적의 탄도미사일을 추적해 그 위치 정보를 미국 해군에 제공하자 미국 이지스함이 SM-3 미사일을 발사해 명중시켰다. 또한 MB 정부는 일본과 정보보호협정 체결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 역시 미국이 강력히 희망해온 한-미-일 3각 MD 체제 구축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한일간 정보 교류의 핵심 대상이 바로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 MD 시스템과 담당 부대의 한국 내 배치, 한미 간의 MD 훈련 실시, MD 공동연구 약정서 체결 및 논의 개시 등이 이뤄져온 것은 이미 한국이 미국 MD 체계에 깊숙이 편입되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정도 수준으로 미국 MD에 협력하고 있는 국가들은 일본과 이스라엘 등 극소수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군사과학기술과 절대안보에 대한 숭배에서 나온 MD는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기 힘든 속성이 있다. 미국이 냉전 시대에 1조 달러를 날리고 미-소간의 냉전이 해체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MD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속성을 잘 보여준다.  

 

김대중 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 오바마의 지역 MD와 같은 개념) 참여 요청을 합리적인 이유들을 제시하면서 거부했고, 클린턴도 양해했다. 그리고 두 정부는 대북포용정책을 향해 공동보조를 맞췄다. 부시 행정부는 김대중 정부에게 노골적인 압력을 행사했지만, DJ는 한미관계의 일정 정도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부시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국익과 미래 비전이 MD 참여와 양립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미국은 주한미군 기지에 MD 시스템을 배치하는 등 일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지만, 참여정부는 MD 문제에 대해 극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MB 정부 등장 3년 만에 한국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 중간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MD는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가르고, 동북아의 신냉전과 군비경쟁을 초래하며, 국민경제에 막대한 부담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반면 국방을 튼튼히 하는 데에는 극히 회의적인 시스템이다. 이는 곧 한국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하루빨리 그 발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MD, #미사일방어체제,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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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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