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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과 바지락이 들어간 해물칼국수가 단 돈 2천 원.
 홍합과 바지락이 들어간 해물칼국수가 단 돈 2천 원.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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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간신히 휘발유 1리터를 넣을 수 있고, 콘 아이스크림 1개를 고를 수 있는 돈. 널을 뛰는 물가에 화폐의 가치가 점점 추락하고 있다. 흡연자라면 한숨 섞인 연기를 내쉬고 싶은 상황. 그러나 2천원으로 살 수 있는 담배마저 지극히 제한적이다. 갑갑한 심정의 연속이다.

그런데 이런 시국(?)에 단 돈 2천원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반가움을 넘어 감격이 솟구칠 법한 가격. 2천원이 빚어내는 맛이란 과연 어떨까. 다소 의심도 들법하다. 그렇지만 믿는 자에게만 그 맛이 허락되리니, 바로 광명시장의 음식들이다.

지하철 7호선 광명사거리역에 위치한 광명시장은 경기서남부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전국 규모로 따져도 다섯 손가락에 들법한 규모다. 몇 년 전 현대화 사업을 거쳐 정리가 잘 되어있다. 하지만 시장 곳곳에 붙어있는 현수막이나 플래카드는 시장 상인들의 마음이 편치 않음을 말해준다.

일방적 뉴타운 정책에 휘말려 자칫 중소영세 상인들이 밀집한 지역이 통째로 날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뚜렷한 결말이 난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 붙어있는 글귀에선 상인들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해물칼국수가 단 돈 2천원, 믿겨지십니까?

불안한 미래를 보여 주는 광명시장의 입구
 불안한 미래를 보여 주는 광명시장의 입구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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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장의 가격표를 보면 세월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큼직한 꽈배기가 4개 천 원, '고로케'(크로켓)이 3개 천원, 찹쌀 도넛이 6개 천 원…. 가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천 원의 효용가치가 그 어느 곳보다 뛰어나다.

튀김가게의 유혹과 부침개의 손짓을 간신히 참아내고 도착한 칼국수 집. 그런데 시쳇말로 '뜨악'이다. 해물칼국수가 단 돈 2천 원이다. 믿겨지지 않는 가격. 칼국수 면발에 해물이 건너간 정도 아닐까란 의심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잠시 후 등장한 칼국수엔 정말 해물이 있다. 잘 손질된 홍합과 바지락조개가 담겨있다. 그릇은 과장 없이 세숫대야만하다. 아닌 말로 요즘 세상 어디를 가서 2천 원짜리 해물칼국수를 먹을 수 있을까.

감격은 그만하고 맛을 본다. 홍합과 바지락은 잘 삶아져 있다. 직접 밀어낸 면발도 쫄깃하다. 주위를 돌아보니 음식에 대한 자부심인 듯 조리과정 전반에 대해 벽에 붙여 놨다. 달걀을 넣은 면발, 전라도 천일염, 황태머리와 채소를 넣은 육수, 직접 다듬은 해물, 마지막으로 절대 쓰지 않는 조미료. 정직하고 믿음이 간다. 이 정도면 착한 게 아닌 '고마운' 가격 아닐까.

전통의 멸치 칼국수, 푹 우려낸 맛이 지존급

푹 우려 낸 멸치 국물 맛이 그만이다. 양도 많다. 진한 국물에 삶아 내는 모습.
 푹 우려 낸 멸치 국물 맛이 그만이다. 양도 많다. 진한 국물에 삶아 내는 모습.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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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칼국수 옆집에 자리한 손칼국수 집. 사실 광명시장 어디를 가나 칼국수는 2천 원 언저리 가격이다. 바로 이 집 때문이다. 물론 가격은 2천 원. 긴 설명 필요 없이 명불허전의 맛이다. 하루 1천 그릇이 훌쩍 넘게 팔려나간다는 이 집 손칼국수의 비결은 진하다 못해 곰국 같은 멸치육수에 있다.

호박고명과 약간의 김 가루와 깨, 파 조금이 얹힌 칼국수가 자리에 놓인다. 그런데 국물이 예사 맛이 아니다. 푹 우려졌다. 사골에 비유하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낸 듯 진득하다. 시골에 살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이게 바로 시골 할머니의 맛이라고 느낄 법하다.

다소 울퉁불퉁하게 썰린 면발도 오히려 정감 있어 보인다. 밀가루 파동이 났을 때도 절대 올릴 수 없다며 가격을 고집한 주인의 성품 같다. 맛의 비결은 단순하다. 가장 질 좋은 밀가루, 잘 숙성 된 반죽, 그리고 뼈 마디마디까지 우러난 멸치국물의 정직함이다.

그리고 이 가게, 양이 많다. 칼국수만으로도 배가 차는데, 진득한 국물을 자꾸 떠먹다 보면 그만 올챙이 배가 되기 십상이다. 양이 적은 이들이라면 잔치국수를 권한다. 같은 국물에 말아 내온다. 가격은 놀라도 된다. 단 돈 1천 원이다. 곁에서 먹던 학생들이 구내매점보다 싸다며 혀를 내두른다.

2천원에 고기 씹히는 자장면이 있을까?

해물칼국수에서 건져 낸 껍질들. '아주 많다'라고 할 수 없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감사 할 따름이다. 자장면은 면발에서 느껴지는 식감이 좋다.
 해물칼국수에서 건져 낸 껍질들. '아주 많다'라고 할 수 없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감사 할 따름이다. 자장면은 면발에서 느껴지는 식감이 좋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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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만큼 사람을 강렬히 유혹하는 음식이 또 있을까. 국물음식에 질렸다면 자장면 한 그릇을 만나러 가자. 나란히 붙은 칼국수 집에서 역 쪽을 향하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자. '자장면, 우동 2000원'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실내에는 마음씨 좋은 남자 사장님이 밝은 인사를 건넨다. 아마 전직 권투선수였던 듯 후배로 보이는 선수들의 사인이 벽면에 가득하다. 해물우동에 잠시 눈이 갔지만, 목표는 자장면이었던 걸 상기한다. 단무지에 양파, 빛깔 좋은 김치까지 원하는 만큼 덜어 놓고 기다리면 된다.

잠시 후 등장한 자장면, 큰 기대 없이 한 젓가락을 집었는데, 면발이 찰랑하며 입천정을 때린다. 그냥 밀가루 덩어리를 기계에 밀어 넣고 뽑은 면이 아니다. 주방 쪽 일인분 씩 비닐에 숙성시켜 놓은 반죽이 눈에 들어온다. 대충 가격에 맞춘 자장면이 아니다.

자장 자체는 어떨까. 5~6천 원 이상의 간자장을 생각했다면 그야말로 도둑심보. 하지만 학생식당이나 군대서 먹던 자장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기사식당용이 아닌 중화요리 집 자장이다. 게다가 고기도 씹힌다. 2천 원에 이런 자장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재래시장은 맛과 가격 이전의 추억

아직 소개 못한 집이 너무 많다. 고기와 해물이 넘치게 들어갔지만, 중심가 가격 1/3에도 못 미치는 파전 집들. 차비는 빠지고도 남을 저렴한 가격의 각종 채소와 생선 류. 기타 아이는 물론 어른들의 눈과 발을 잡아끄는 다양한 먹을거리와 살거리 등.

어린 시절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른이 되어도 깊이 뇌리에 자리 잡는다. 우리들 아이의 머리에 남아있는 기억이 똑같은 복장에 같은 형태의 가격표, 동일한 모양의 카트에 실려 다닌 것이라면 어떨까.

마트에서 시작되어 마트로 이어지는 삶. 그 곳에서 유년의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가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미래 세상. 혹 그것이야말로 빠져나올 수 없는 매트릭스(가상현실)로 가는 것은 아닐까.


태그:#광명칼국수, #광명시장, #멸치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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