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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로비를 통한 인사청탁 의혹과 태광실업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 의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에 앞서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검찰 출석하는 한상률 전 국세처장 그림로비를 통한 인사청탁 의혹과 태광실업에 대한 표적 세무조사 의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2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에 앞서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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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15일 발표한 '한상률 의혹' 수사결과와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 검찰에 낸 의견서 등이 전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결과, 안 전 국장은 검찰에 낸 의견서 등에서 "지번까지 기재된 도곡동땅 전표에 '실소유주 이명박'이라고 기록돼 있었으며, 한 전 청장이 '실세에 대한 로비가 필요하다'며 3억 원을 요구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안 전 국장이 도곡동땅 전표를 자세히 보지 않아 잘 모른다고 했고 3억 원 요구 의혹 진술에서도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고 밝혔다.

안 전 국장이 검찰에 낸 의견서 등과 전혀 다른 내용인 셈이다. 검찰이 현 정권과 연결된 민감한 내용들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검찰 "지번 적시 안돼"... 안 전 국장 의견서 "지번 적시돼 있어"

안 전 국장은 지난 3월 4일과 8일, 17일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고, 지난 3월 21일에는 한 전 청장과 대질신문을 벌였다. 안 전 국장은 대질신문이 끝난 이후 두 차례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도곡동땅 전표, 3억 원 요구 의혹 등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다.

먼저 도곡동땅 전표와 관련, 안 전 국장은 "2007년 7월부터 2008년 3월까지 대구청 관내 포스코건설 정기세무조사를 진행했다"며 "당시 포스코건설에서 제출한 문건들 속에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 이명박'이라고 기록된 문건을 조사자가 발견하고 나에게 문건을 가지고 와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안 전 국장은 "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때 정치쟁점화가 우려되고 국세청이 정치적 회오리에 휘말릴 수 있고 그 문건 자체가 조사대상연도가 아니고 포스코건설 법인조사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 담당 국장과 과장에게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여 심지어 포스코건설 측에도 모르게 보안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안 전 국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녹취록'도 존재한다. 이 녹취록은 지난 2009년 9월 안 전 국장과 대국지방국세청 전직 간부의 대화내용이 담겨 있다.

포스코건설 세무조사를 맡았던 장아무개 전 국장은 안 전 국장에게 "세무조사와는 관계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일(강남 도곡동 땅이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라고 적힌 문서가 발견된 것)이 있었다"며 "(세무조사 관련) 직원들은 (그걸) 다 봤다"고 말했다.

또한 장 전 국장은 "본청 감찰계장이 '안원구 국장이 대구청장 시절 VIP(이명박 대통령)와 관련된 도곡동땅에 대한 내용을 덮으려고 한 사실이 없다는 확인서를 써 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써줄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안 전 국장이 일관되고 자세하게 진술하고 있고, 그런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녹취록)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안 전 국장이 도곡동땅 전표를 자세히 보지 않아 모른다고 진술했다"고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특히 안 전 국장은 검찰에 낸 의견서에서 "'도곡동땅의 실소유주 이명박'이라고 적힌 전표에는 도곡동땅의 번지가 기입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번지가 기재돼 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한상률 의혹 수사결과를 브리핑한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전표가 작성된 당시에는 전산화되어 있어서 수기로 기재하지 않았고 지번도 기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곡동땅 전표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결과와 안 전 국장의 의견서가 완전히 다른 셈이다. 권력과 연결된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검찰이 '거짓말'까지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안 전 국장은 의견서에서 "도곡동땅 문건의 사실확인을 위해서는 2007년 조사할 당시 포스코건설 세무조사를 맡았던 장아무개 전 조사국장, 안아무개 조사1국 2과장, 현직 국세청 직원인 우아무개씨 등을 대상으로 엄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만약 이들의 진술이 나와 다르다면 대질 등을 통해 이들의 진술 신빙성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전 국장은 "하지만 나와 대질하는 등의 확인작업도 벌이지 않고 한 전 청장의 변소나 장아무개 전 국장의 진술만을 일방적으로 신뢰하여 조사를 종결해 잘못된 수사결과를 발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2007년 당시 포스코건설 세무조사에 참여했던 직원들을 모두 조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안 전 국장 쪽의 주장대로 안 전 국장과 이들의 대질신문은 벌이지 않았다. 

한 전 청장의 진술이 '오락가락' 했는데도 '무혐의' 처분

한 전 청장이 연임로비를 위해 안 전 국장에게 3억 원을 요구했다는 의혹에서도 검찰의 수사결과와 안 전 국장의 의견서·진술은 상당히 달랐다.

일단 검찰은 연임로비가 이루어진 시기에 한 전 청장과 안 전 국장이 두 차례 이상 만난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연임로비용 3억 원 요구' 의혹을 일축했다.

"안 전 국장의 진술에 일관성이 결여돼 있고, 유임로비를 부탁하고 또 3억 원을 요구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맞지 않다."

최고의 검사들만 모여 있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수사한 내용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궁색한 설명이다. 안 전 국장이 검찰에 낸 의견서는 이와 전혀 달랐다. '연임로비용 3억 원 요구'와 관련된 의견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 전 청장은 2008년 2월께 스위스그랜드호텔 일식당에서 나를 만나 '국세청 차장이 공석으로 있는데 내가 몇 사람과 타진도 해보고 알아봤는데 안 청장이 가장 적임이다'라고 하면서 나에게 국세청 차장 자리를 제안했다. 그리고 '실세한테 필요한 부분(돈) 있다, ○○○(중부청장)는 ○○○씨와 짝이 되어 뛰고 있고, ○○○(서울청장)은 ○○○ 의원과 짝이 되어 뛰고 있으니 당신도 노력해라, 나도 뛰겠다'고 말하면서 '3억 원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요구했다."

안 전 국장은 한 전 청장으로부터 '연임로비용 3억 원'을 요구받았을 당시를 아주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안 전 국장은 한 전 청장과 대질신문하는 자리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증언했다.

당시 한 전 청장은 "차장직을 제의한 적도 없고, 3억 원을 요구한 적도 없다"면서 "잘 모르는 후배에게 3억 원을 요구하는 얼간이가 어디 있느냐?"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에 안 전 국장은 한 전 청장이 2박 3일간 대구와 경주를 방문했을 때 동행했고, 자신의 인수위 파견을 만류했으며, 스위스그랜드호텔 일식당에서 세 차례 만난 일 등을 들어 '잘 모르는 후배'라는 한 전 청장의 진술을 반박했다.

한 전 청장이 "신성해운 사건조사와 관련해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이었던 내가 신성해운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소문으로 인해 국세청장 재신임에 부담된다"며 "이상득 국회 부의장에게 이러한 해명을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안 전 국장이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아들인 지형씨와 친분이 두텁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한 전 청장은 처음엔 안 전 국장을 만난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가 안 전 국장이 당시 두 사람이 나눈 구체적인 대화내용뿐만 아니라 식사메뉴, 같이 마신 포도주 이름('1986),  카드결제내역 등을 들이밀자 이렇게 진술을 바꾸었다.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안원구를 한 번 만난 것은 확실하고, 두 번 만난 것은 기억에 없다. 두 번째의 경우 안 만났을 확률이 90%이고, 만났을 확률은 10%이다."

오히려 한 전 청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안 전 국장이 '3억 원이라고 했는지 세 개라고 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 등 진술이 오락가락했다"고 주장했다. 한 전 청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했음에도 안 전 국장의 진술을 묵살하고 한 전 청장의 손을 손을 들어준 것이다.  

도곡동땅 전표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아킬레스건이고, 연임로비용 3억 원 요구는 여권 실세들과 연결된 사안이다. 검찰이 청와대 등 여권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사안들을 축소·은폐해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다. 한상률 의혹 수사를 통해 털어버려야 할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다시 뒤집어쓰는 꼴이다.    


태그:#한상률, #안원구,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윤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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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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