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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부터 여러 가지 논란 속에 일부 내용이 폐지, 수정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기도교육청의 중등논술능력평가를 치르고 있는 학생
▲ 경기도중등논술능력평가 2006년도부터 여러 가지 논란 속에 일부 내용이 폐지, 수정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기도교육청의 중등논술능력평가를 치르고 있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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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김상곤 교육감, 이하 도교육청)이 지난 3월과 4월에 걸쳐 도내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도교육청 주관의 시험을 치르면서 상당수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험을 강제하는 등 무리한 진행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로 인해 사실상 일제고사식 시험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전교생에게 시험을 강요하는 학교들 대부분이 학생들의 수상 기록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올리기 위한 스펙 만들기용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어 시험의 취지는 오래전에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희망 학교와 학생에 한해 응시'하도록 한 도교육청의 지침을 어긴 중·고교가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도교육청에서는 이를 조사하거나 추가 조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 도교육청이 해당 학교들의 시험 강요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교육청이 전국 최초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창의·서술형 평가는 지난 3월 10일 도내 고교생을 대상으로 국어, 사회, 과학, 영어, 수학 등 5개 교과목(2학년은 사회/과학 중 택1)에 걸쳐 시험이 치러졌다. 고3생을 제외한 응시 희망교 1·2학년 재학생을 대상으로 했다.

공문에는 "도내 고등학교 1·2학년 응시 희망교 학생을 대상으로 자율적으로 시행하되 학교와 학생의 선택권 부여함"이라고 밝혀 학교와 학생의 선택권을 분명히 했다.

도교육청은 당시 "희망 학교 및 학생만을 대상으로 도내 전체 409개 고교 가운데 1학년은 331개교 13만2960명, 2학년은 321개교 12만7931명이 참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한 가운데 치러진 첫 시험이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약 80%대에 이르는 학교와 학생들이 응시한 셈이다.

상당수 학교 1·2학년 전교생 응시토록 강제

그러나 취재 결과 도교육청의 발표와는 달리 상당수의 학교에서 희망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1·2학년 전교생을 응시하도록 강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천의 ㄱ고에서는 학생들의 희망 여부를 조사하지 않고 교사들이 협의를 거쳐 응시 과목수만 줄여 1·2학년 전체에게 시험을 보도록 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교과협의회에서 과목수만 줄이는 것으로 하고 1·2학년 전체를 응시하도록 했다"며 "학생들의 희망을 받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군포의 ㄱ고, 화성 ㅅ고, 수원 O고와 ㄱ고, ㄴ고, 평택 ㅎ고와 ㅅ고 등 도내 상당수 지역에서 해당 학교들이 도교육청의 지침을 어기고 이같이 학생들의 희망을 조사하지 않고 1·2학년 전체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 ㄱ고의 학생은 "담임선생님이 도내 고교생 모두 다 보는 시험이라며 잘 보라고 했는데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는 안 봤다고 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선택권이 없었음을 확인해 주었다.

도교육청의 지침을 어긴 이들 학교 가운데에는 지난해 12월 우수 사립학교로 선정돼 교육감 표창을 받은 ㅅ고교도 포함돼 있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수상 결과를 학생생활기록부에 올리기 위해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1·2학년 전체가 다 봤는데 아이들 반응이 '이런 걸 왜 보나'하는 것이었다"라고 전했다.

익명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ㄴ고 교사는 "학생들에게 답을 알려주고 쓰도록 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들려주었다. "도교육청의 요구에는 따르면서 학생들의 부담도 덜어주는 의미에서 창의·서술형 평가를 처음 치르는 학생들에게 모범 답안을 미리 알려주고 이를 조금씩 변형해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창의·서술형평가 문항 역시 기존의 언어영역 객관식 문제를 주관식, 서술형으로 바꾼 정도라는 의견이 교사들이 대체로 지적하는 부분이다. 창의·서술형 평가라고는 했지만 객관식으로 묻느냐 서술형으로 묻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도 장학사 "공문에 희망 학생만 하라고 충분히 설명했다" 사실 부인

경기도교육청이 전국 최초라며 지난 3월10일 실시한 창의서술형평가. 희망 학교 및 학생만을 대상으로 했다던 도교육청의 발표와 달리 상당수의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험이 이루어졌다.
▲ . 경기도교육청이 전국 최초라며 지난 3월10일 실시한 창의서술형평가. 희망 학교 및 학생만을 대상으로 했다던 도교육청의 발표와 달리 상당수의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시험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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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육청 교수학습지원과 김순호 장학사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강요에 의한) 시험은 없었다, 공문에 희망 학생만 하라고 충분히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안 보기 때문에 그를 대신해 학생들에게 보라고 했을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김 장학사는 이어 시험 응시 학교 희망 조사를 받을 때 '미응시 학교도 반드시 웹사이트에 접속하여 미응시를 선택'하라고 한 것이 사실상 응시를 강요한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과 관련해 "전국연합학력평가도 그렇게 한다, 미응시 학교를 조사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학교 측의 강요에 의해 1·2학년 전체가 시험을 치른 학교들에 대해서는 "어느 학교인지 알려 달라"면서도 "확인하지 않은 사항이라 도교육청 차원에서 조사를 하거나 추가 조치를 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도교육청은 이 같은 논란과 파행을 낳은 창의·서술형평가를 오는 6월 도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르기로 하고 오는 16일까지 응시 희망학교 신청을 받고 있었다. 이 역시 이미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전교생 응시를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교사는 "학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담당 교사가 전교생이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보고해 버렸다"고 말했다.

용인의 한 교사는 "장기적으로 서술형 평가를 정착시키려는 도교육청의 뜻에는 공감하지만 이렇게 일제고사식의 이벤트성 시험으로 교사와 학생을 길들이면 서술형 평가가 정착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학생 희망 받지 않고 일방적 시험 강요한 도내 학교는 20여 개 넘어

한편, '2006학년도 경기도 독서·논술 교육 활성화 기본 계획'의 일환으로 시작돼 여러 가지 논란 속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기중등논술능력평가(논술평가)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4월 5일 도내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치러진 논술평가 역시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하라는 공문이 시행됐지만 상당수의 중고교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전교생이 논술평가를 치르게 했다. 심지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학교 측이 논술평가를 실시하려고 하자 도교육청 공문과 다르다며 교사가 항의해 결국 시험을 희망한 소수의 학생들만 논술평가를 치른 학교도 있었다.

이같이 학생들의 희망을 받지 않고 전교생에게 일방적으로 시험을 강요한 학교로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곳만 해도 군포 ㅅ공고와 ㄷ고, 부천 ㅂ중, 수원 ㅁ고와 ㅁ중, 용인 ㄱ고와 ㅂ고, 화성 ㅅ고, 평택 ㅍ여고, ㅎ고, ㅅ중 등 도내 각 지역에서 공·사립 학교를 막론하고 20여 개 학교가 넘었다.

이 가운데 수원 ㅁ고교에서는 담임교사가 "3줄 이상 논술 답안을 작성하지 않으면 때리겠다"고 학생들을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도교육청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출제한 논술문제가 너무 어렵고 추상적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평범한 중고교생들의 수준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험을 지르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유로 중도에 답안 작성을 포기하거나 아예 시험 응시를 취소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논술평가가 학생들의 논술능력 향상과는 거리가 먼 이벤트"라는 지적이 힘을 얻는 이유이다.

고교에서 12년간 논술지도를 해온 ㅈ교사는 "논술능력은 일회성 시험이 아니라 읽기와 쓰기 훈련이 체계적·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교육청의 실적을 위해서는 논술평가가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학생들의 실력을 위해서라면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 장학사 "교육과정 운영은 학교장에게 자율권이 있다"

각각 지난 2008년(왼쪽)과 올해(오른쪽)에 치러진 논술평가의 학생 답안지.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시험을 포기하거나 쓰다가 기권하겠다는 의사표시를 답안 대신 작성한 학생들의 실제 답안지.
▲ 논술시험 답안지 각각 지난 2008년(왼쪽)과 올해(오른쪽)에 치러진 논술평가의 학생 답안지.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시험을 포기하거나 쓰다가 기권하겠다는 의사표시를 답안 대신 작성한 학생들의 실제 답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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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평가를 담당하는 도교육청 윤종택 장학사는 "해당 학교들을 제재하기는 그렇고 교육과정 운영은 학교장에게 자율권이 있다"면서 "학교교육과정에서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논술평가를 전교생을 대상으로 보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또 윤 장학사는 '문제 수준이 너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학생들 평균치"라고 설명했다. 윤 장학사 역시 파행적으로 논술평가가 이루어진 학교들에 대한 사실 조사나 사후 조치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창의서술형 평가와 논술평가를 담당하는 이들 장학사들의 공통된 말로 미루어 도교육청에서는 사실상 학교 현장의 파행적인 사례들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 확인과 사후 조치 없이 계속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비록 내신성적에 반영은 않지만 일제고사식 시험이 되살아 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한결같이 이 같은 시험으로는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과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일 년에 한두 번 시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원 ㄱ고의 O교사는 "기존의 객관식 문제에 답을 길게 쓰도록 하면 창의서술형이고, 원고 분량을 정해 주고 원고지 칸에 서술하라고 하며 논술시험이냐? 창의서술형이니 논술형이니 하며 시험만 보고 말 게 아니라 학생들이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교육청이 할 일 아닌가?"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태그:#경기도교육청, #창의서술형평가, #논술평가,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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