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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 여든아홉이 되신 시어머니는 지난해 7월 초 엘리베이터에서 넘어지셔서 골반뼈가 부러졌습니다. 6개월의 지리한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서 멀지 않은 요양원에 들어가신 지 이제 3개월째 됩니다. 퇴원 후 집에서도 며칠 계셔 봤지만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시기 때문에 화장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오는 저혈당 증세 때문에 형님이 늘 곁을 지키고 있어도 119를 불러야 할 위급한 상황이 적지 않아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상주해 있는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처음엔 낯선 환경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듯했던 어머니도 워낙 깔끔하게 지어진 시설에 여러 전문인력들이 수시로 도움을 드려서 그런지 금방 마음을 열고 집보다 좋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집은 화장실이 너무 불편해. 화장실 갈 때마다 나를 안아서 끌고 가야 하는데 하루에도 열두 번씩 화장실은 가야 하고, 그러자니 나도 힘들고 니들도 죽을 맛이고. 다들 일 나가고 나 혼자 있을 땐 화장실도 가지 못하니 큰일 아니냐. 여기 오니 친구들도 있고 선생님들도 있고,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외롭지 않고 좋다. 가끔 와서 얼굴이나 보여주면 되니 아무 걱정 말고 잘 지내라."

요양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내 집보다야 좋겠나 싶지만, 당신을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는 자식들의 불편한 심정을 읽은 어머니는 이렇게 자식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셨습니다.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도 어머니는 나날이 표정도 좋아지시고 상태도 좋아지셔서 빠른 회복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렇지만 워낙에 고령이신데다 30년 넘게 당뇨를 앓고 계셨고 혈압마저 기복이 심해 늘 마음 한편에서 걱정이 떠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병원에서 생일을 맞으신 시어머니.
 병원에서 생일을 맞으신 시어머니.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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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어리광부리고 싶으셨던 거야"

"어머니께서 요즘 잘 드시지를 않고 기력이 없어 하세요. 그래서 링거를 두 병 맞혀드렸거든요. 이번 주에 한 번 더 다녀가시면 어떨까요?"

요양원의 전화를 받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며칠 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순댓국을 사다 드렸더니 맛있게 잘 잡수시더라는 형님의 전화를 받았기에 며칠 뒤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에 느닷없이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남편과 저는 바로 요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거실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계실 어머니가 침대에 앉아 계십니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어디가 안 좋으세요? 왜 이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응. 입맛이 통 없어서 먹지를 못해. 그랬더니 혈압이 또 떨어졌나봐."

어머니는 봄을 무척 타는 편이십니다. 해마다 봄바람이 살짝 돌 때가 되면 입맛을 딱 잃고 며칠씩 누워 계시는데 올해 역시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는구나 싶었지요. 그래서 집에 계실 때처럼 링거도 맞고 어머니 좋아하시는 별식도 조금씩 드시면 금방 다시 좋아지실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 형님이 집에서 도토리묵 만들어왔어요. 양념도 맛있게 됐네. 드셔보세요."

형님이 만들어 온 도토리묵이 입에 맞으셨던지 몇 번은 맛있게 받아 드신 어머니는 점심시간이 되자 다른 할머니들과 식탁에 둘러 앉았습니다.

"입맛이 없어. 밥을 못 먹겠어."
"어머니 오늘은 조금만 더 드세요. 내일은 도가니탕 해올게요. 초간장에 도가니 찍어 드시는 것 좋아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조금만 더 드세요. 그렇다고 안 드시면 당도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져서 큰일 나요."

싫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달래서 밥을 떠 넣어드리는 저를 보고 맞은편에 앉아 식사를 하던 할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십니다.

"할머니가 어리광이 부리고 싶으셨던 거야. 며느리한테 어리광부리고 싶어서 그러셨구먼."

그렇게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밥 반 공기를 떠 넣어드리고 가져간 카스텔라를 간식으로 드린 후에, 내일 도가니탕을 끓여 가지고 다시 온다는 인사를 하고 요양원을 나왔습니다.

식탁에 앉아 떠나는 우리를 향해 "그랴. 잘 가고, 낼 와"하면서 손을 흔들어주시던 어머니.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동서, 어머니가... 어머니가..."

다음 날(3월 27일) 남편과 저는 아침 일찍 교회에 갔습니다. 주일이니 일찍 예배를 드리고 어머니를 찾아뵈려는 생각이었지요. 예배가 다 끝나가는 10시경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전화기의 진동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주일 오전에 올 전화가 없는데…'하고 전화기를 꺼내보니, 형님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전화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받지를 않았더니, 두 번, 세 번 계속 전화가 울리는 겁니다.

'형님이 이럴 분이 아닌데 왜 자꾸 전화를 하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떨리는 심정으로 예배당에서 나와 전화를 받으니 형님의 목소리가 먼 데서 들리는 소리처럼 아득하게 울립니다.

"동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어머니가…."

머릿속이 온통 까매지며 다리에 힘이 풀려옵니다. 곁에 있던 남편이 무슨 일이냐며 저를 쳐다보는데 뭐라 해야 할지 말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응…. 여보, 형님인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데 나도 모르겠네. 당신이 다시 물어봐. 잘 못 들은 건지 모르겠어. 갑자기 뭔 소린지. 어제도 봤는데 무슨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그길로 달려간 요양원. 어머니는 요양원이 마련해준 별도의 방에 잠자는 듯 누워 계셨습니다. 편안한 얼굴, 따뜻한 온기, 홍조 어린 뺨. 무엇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얼굴을 만져보고, 손을 만져보고, 귀에 대고 "어머니, 어머니"라고 불러보아도 깊은 잠에 빠지신 어머니는 눈을 뜨지 않습니다. 코 밑에 살짝 손을 대어보니 숨결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응급처치를 한 간호사와 의사가 사망시간을 알려주었지만, 30분도 지나지 않아서인지 흔들고 불러 깨우면 저만치 갔던 어머니의 영혼이 다시 돌아오실 것만 같았습니다.

시어머니의 장례식에 온 근조 화환들.
 시어머니의 장례식에 온 근조 화환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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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신 신고 하늘나라 봄 나들이 가신 어머니

그 후로 어떻게 장례절차를 밟고 어떻게 문상을 받았는지 하나도 정신이 없는 가운데, 어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입관하는 날이었습니다.

장례지도사가 하얀 면 시트를 덮어놓은 어머니를 정성스레 씻겨드립니다. 머리도 감겨드리고 세수도 시켜드리고 정성스레 로션도 발라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입고 가실 수의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입혀드립니다.

엊그제 뵌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잠든 듯 누워 계신 어머니는 지금도 흔들어 깨우면 일어나실 것만 같습니다. 수의를 다 입히고 난 장례지도사는 어머니의 버선 위에 붉은 꽃이 앙증맞게 수놓인 꽃신을 신겨드립니다.

'울 엄니 예쁜 꽃신 신으셨네…. 꽃신 신고 봄 나들이 가시겠네. 이젠 휠체어에서 내려오셔서 예전처럼 두 발로 사뿐사뿐 걸어서 나들이 가시겠네.'

입관하는 동안에는 눈물도 흘리지 말고 소리 내어 곡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이를 악물어도 꺽꺽거리는 소리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는 자리. 새 옷 입고 꽃신 신은 어머니가 저를 보고 자꾸만 손짓을 합니다.

'며늘아가, 울지 마라. 난 편히 간다. 꽃신 신고 훨훨 나들이 간다. 결혼식 때 네가 해준 옥색 한복 치마저고리 입고 평생 한 번도 신어보지 못했던 꽃신 신고 내 맘대로 훨훨 나들이 간다.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봄날,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 얼마나 답답했겠냐. 울지 마라, 자식들아. 나는 편히 간다.'

'예, 어머니. 울지 않을게요. 눈물 흘리지 않아야 어머니가 이승의 인연을 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신다니 눈물이 나와도 꾹 참을게요. 그런데 어머니 왜 이렇게 눈물이 자꾸 나는지 모르겠어요. 어떡해요, 어머니….'

어머니를 추모하는 연주를 하고 있는 작은사위.
 어머니를 추모하는 연주를 하고 있는 작은사위.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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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 말해드릴 걸

아무렇지도 않게 저를 마지막으로 보셨던 어제의 그 모습처럼,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시는 어머니. 저희 시어머니 정순남 여사는 봄날의 따스한 바람처럼 그렇게 곱게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89세의 생을 마치신 시어머니. 남들은 호상이다, 천수를 누리셨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도 호상이라 불릴 죽음은 없는 법입니다. 누구나 떠나신 분의 생은 안타깝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장례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정리하다가 작은 덧버선이 눈에 들어와 또 한참을 울었습니다. 바닥에 미끄럼방지 고무처리가 된 작은 덧버선은 어머니가 다리를 다치시기 전에 사놓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리를 다치시는 바람에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하고 저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거 나는 못 신겠다. 발도 많이 붓고 걷지도 못하게 됐는데 덧버선 신을 일이 뭐 있겠냐? 너나 갖다 신어라. 이게 미끄럽지도 않고 아주 좋아."

덧버선만 봐도 이렇게 마음이 아린데….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이라도 더 어머니를 찾아뵐걸'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한 번이라도 더 안아드리고,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하다 말해드릴걸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래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은 죄인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태그:#시어머니, #장례식, #꽃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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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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