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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리투아니아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겠다는 학생들의 의지가 담긴 동아리 로고.
 한국과 리투아니아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겠다는 학생들의 의지가 담긴 동아리 로고.
ⓒ 한-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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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건 자국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있게 마련이다. 일본은 게이샤와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전통문화와 혁신적인 신기술, 그리고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초저가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생산으로 대표되던 중국 역시 인권 탄압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2008년 하계올림픽을 계기로 자국의 이미지를 과감히 쇄신하기 위한 노력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 이미지 정책이 직접적인 국가 정책과 연결되는 경향도 요즘 들어 강하게 나타난다. 2002년 일본 외무성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고 아이콘 중 하나인 도라에몽에게 문화대사 자격을 부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귀엽고 깜찍하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이미지와 실체의 지나친 괴리감으로 실망감을 주는 일이 잦다. 일본이 자랑하는 독특한 전통문화와 귀여운 이미지 속에 감추어져 쉽게 보이지 않는 전쟁 범죄에 대한 진실, 고색창연한 건축과 거대한 자연 경관 속에 숨겨진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은 그 나라를 공부하는 이들이 엄청난 실망감에 빠지게 만드는 함정이다.

한국과 리투아니아는 그런 면에서 공통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나라의 이미지를 보고 찾아온 외국인들이 실망할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나라의 대표 이미지가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심도 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공식적으로는 서로 무관심한 리투아니아와 한국

리투아니아는 수년 동안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을 들여 '용감한 리투아니아'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부각시키는 작업을 해왔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한국 역시 한식과 한복, 한글, 한옥 등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이미지를 선정해서 몇 년 전부터 이미지 쇄신에 고심하고 있지만, 유럽의 주변부에 위치한 발트3국에는 아직 그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 차원에서 한국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개최한 행사는 2010년 10월 한글날 폴란드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이 카우나스(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에서 '한국이 카우나스에 오다'라는 문화 체험 행사를 연 것이 유일하다. 그 외에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3국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쏟는 노력은 0에 가깝다.

한국 공관이 전혀 없는 리투아니아에서 한국에 관한 좋은 이미지가 늘어나는 것은 어찌 보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호감은 리투아니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놀라울 만큼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다.

동아리 출범을 선언하는 회장 리네타 양.
▲ "한-빌뉴스 동아리의 출범을 선언합니다" 동아리 출범을 선언하는 회장 리네타 양.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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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에 부는 한류

기자는 이미 2010년 12월 카우나스의 대학생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한국 문화 동아리인 '한류클럽'을 소개한 바 있다(관련 기사 : '미드' 대신 '꽃남', 팝송 대신 빅뱅). 2011년 2월 그 한류클럽이 1주년 기념행사를 연 지 한 달여 만에 한국 문화의 해일은 드디어 리투아니아의 수도에도 도달했다. 4월 2일, 리투아니아 최고의 역사와 수준을 자랑하는 빌뉴스대학교에서도 드디어 한국 문화 동아리인 '한-빌뉴스'가 결성된 것이다.

'한-빌뉴스'는 빌뉴스대학교 동양어학원에서 주관하는 한국어 강좌에 참여하는 학생 7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모임이다. 한-빌뉴스에는 빌뉴스대학교 학생을 비롯해 고등학생, 직장인, 심지어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주 소비에츠크 시에서 리투아니아 영사로 일하고 있는 외무부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빌뉴스'는 회원들이 몇 주간 고민한 끝에 착안해낸 이름으로 한국, 한국어, 한복, 한글, 한강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에 으레 등장하는 음절인 '한'과 수도 '빌뉴스'를 붙여놓은 것이다.

물론 중국의 가장 큰 민족인 한족을 연상시키지 않느냐, 그리고 엄연한 한국 문화의 일부분인 북한을 너무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냐 등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이를 두고 회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여러 가지 논쟁 끝에 정해진 동아리의 이름에 담긴 의미와 목적을 정확히 알리기 위해서 4월 2일 한-빌뉴스의 창단 멤버들은 공식 출범식을 개최했다.

행사장에 가득 들어찬 인파.
▲ 빌뉴스에도 이런 순간이 오길 기다렸다 행사장에 가득 들어찬 인파.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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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동아리 출범식

이들은 원래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벌이는 고사를 개최하고자 했으나, 제기나 음식 마련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어 회원들이 한국 문화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식으로 출범식을 진행했다.

한-빌뉴스는 아직 변변한 누리집도 없고, 빌뉴스대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활동 단체가 아니라서 홍보할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이들은 페이스북 같은 공간을 통해 100% 친분을 이용해 행사를 알렸다.

이 때문에 이들은 출범식에 사람들이 얼마나 찾아올지 내심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행사가 시작되자 빌뉴스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건물 2층 강의실은 100명이 넘는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찼고, 참가자들은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고안한 독특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한글, 역사, 음식, 대중가요, 영화 등 한국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전해 주었다.

연극의 요소를 도입해 한국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두 학생.
▲ 한국 사람들이 곰의 후손이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연극의 요소를 도입해 한국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가는 두 학생.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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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학생들, 한국 아이돌에 열광하다

특히 대중가요에 대한 발표 시간에는 스크린에 2PM, 2AM, 소녀시대, 동방신기, 샤이니 등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사진이 비칠 때마다 팬들의 엄청난 환호가 쏟아져 행사에 차질이 빚어지기까지 했다. 덕분에 대중가요를 준비한 학생들은 준비한 내용을 미처 발표하지도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한-빌뉴스 동아리의 회장 리네타 그바즈다우스카이톄(빌뉴스대학교 언어학과) 양은 빌뉴스에 리투아니아에서 두 번째로 한국 문화 관련 동아리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금 출범식에 참여한 회원들은 모두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에요. 전부 언어를 공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 음악, 정치, 사회 등 한국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대상은 다 달라요.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좀 더 확장해서, 한국에 호기심을 가진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동아리를 만든) 중요한 이유예요."

리네타 양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진 신비로운 나라였다. 인터넷을 통해 젊은이들은 대중가요와 영화, 드라마를 접하면서 한국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으나, 그 외 다른 차원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는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 대중가요에 대해 발표하는 두 학생. 화면에 톱스타들의 모습이 이어지면서 행사장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었다.
▲ 제발 발표 좀 하자고! 한국 대중가요에 대해 발표하는 두 학생. 화면에 톱스타들의 모습이 이어지면서 행사장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었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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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고야 말겠다"

나중에 세계의 모든 언어를 구사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언어학을 전공하게 되었다는 리네타 양은 남들이 하지 않는 언어를 배우기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우연히 한국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네타 양은 한국어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색은 물론 그동안 자기가 공부했던 핀란드어, 에스토니아어 같은 인접 국가 언어들과 적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과감히 한국어를 선택했다.

이밖에 소비에츠크 주재 리투아니아 영사인 잉카 미스키톄 씨는 동생과 우연히 한국 드라마를 본 후 한국 문화광이 되었고, 언젠가는 한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전해 주었다. 또한 동아리에 속한 여러 여학생들은 한국 아이돌 그룹에 푹 빠져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빌뉴스에 사는 한국 문화 열성팬들은 지금까지 한국 문화와 관련된 행사들이 한국학을 정식으로 강의하는 대학교가 위치한 카우나스에서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꽤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이날 출범식에서 터져 나온 그들의 관심이 가히 폭발적이었던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출범식에 초대받은 김유명 리투아니아 한인회 회장 등 한국인들은 예상치 못한 학생들의 관심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일본 정부의 돈으로 새 단장한 곳에서 결성된 한국 문화 동아리

한-빌뉴스 동아리는 앞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헤쳐가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우나스의 한류클럽은 한국학 강좌가 정식으로 열리는 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그나마 행사를 열 수 있는 공간이라도 마련되어 있는 반면, 빌뉴스대학교의 한-빌뉴스 동아리는 대학교 차원의 공식 지원을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있다.

빌뉴스대학교에서는 한국어 강좌가 동양학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주말학교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 정식 과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빌뉴스대학교 동양학연구소는 정식 한국어 수업을 열기 위해 15년간이나 노력해 왔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달리, 빌뉴스대학교 내에는 중국 정부가 중국 문화를 세계로 알리고자 추진하고 있는 '공자학원'이 정식으로 들어서 있다. 그리고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동아리 출범식을 연 강의실도 일본 정부가 대대적으로 지원한 돈으로 새로 단장한 일본어 학당 건물이다. 리투아니아에서 한국 문화의 자발적 확산 소식을 접하는 한국인들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리투아니아 전체에서 얼마 되지 않는 한국어 베테랑이 직접 가르쳐 주는 한글의 '정체'.
▲ 한글,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리투아니아 전체에서 얼마 되지 않는 한국어 베테랑이 직접 가르쳐 주는 한글의 '정체'.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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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류, #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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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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