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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든 살든 정당끼리 책임지겠다고 했어요. 정치 잘 모르는 시민단체는 빠져라, 그 식이었죠. 막판에는 핏발 선 눈으로 단일화가 안 돼도 좋다 그랬죠. 깜짝 놀랐는데, 결국 이거죠, 뭐. 6·2 지방선거 때처럼 정당끼리 막판 단일화할 테니 능력 없는 시민단체는 빠져라."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지난 3월 24일 오후 10시 30분 시민단체 협상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격정을 쏟아냈다고,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전했다. 한밤에 마주한 이 살풍경. 그는 매우 씁쓸했노라고 혀를 찼다. 유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상황을 접했다면 누구라도 모멸감을 느꼈을 것 같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밤새 토의하고 새벽이슬 맞으며 퇴근했던 지난 1개월여의 시간들. 시민단체 협상대표들은 10여 차례나 4·27 재보선 야권연대 정치협상에 참여했다. 이유는 단 하나. 반MB야권연대로 이번 선거에서 이기면 작으나마 국민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그 기쁨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시민단체가 이 협상의 성과를 노렸다면 바로 이 점이었을 것.

 

지난 2월 22일 시민사회 원로와 야4당 대표들은 국회 귀빈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권연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했다. 당시 국민참여당 대표였던 이재정 고문은 "당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서로 역사적 책임감을 나눠 갖고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표회동 40일 만에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시민단체들은 1일 "포괄적 야권연대 협상은 깨졌다"고 공식 선언했고, 실패해서 죄송하다고 국민들께 사과했다.

 

이들은 "(김해을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단일화 방법 중 국민참여경선 50% 가운데) 표본추출방식이 야권연합 전체를 파기할 정도의 핵심쟁점이 될 수 없다"며 "국민참여당이 이 같은 쟁점을 이유로 전체연합을 거부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야권연합 실패로 이명박-한나라당을 심판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이런 파괴적 결과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심판의 정신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재보선에서 한나라당과 '반MB야권연대'로 각을 세우는 프레임을 깨버린 것은 국민참여당 책임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이 30% 중반대로 떨어졌지만 정부여당의 실정과 관계없이 야권분열에 손뼉 칠 국민은 없기 때문이다.

 

참여당, 야권연대 판 깨버리면 독박 쓸 게 뻔한데 왜?

 

협상이 깨지면 '독박' 쓸 게 뻔한 국면에서 국민참여당은 왜 이 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우선 단단한 내부 결속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외부에서 심한 공격을 받게 되면 내부가 단결하는 이치인 게다. 이러저러한 당내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라도 일단 단결해서 선거를 이기면 과거의 욕설은 별개 아니라는 정치문법이 작동될 수 있다.

 

실제 일반당원 사이에는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의 불출마 선언과정에서 솔직히 참여당이 반성할 점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시각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이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이 외부세력으로부터 공격받는 마당에 한가하게 평가 타령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국민참여당 입장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김해에서 반민주당 전선을 친뒤 확실한 친노 프레임을 갖고, '누가 진정한 노무현의 적통이냐' 싸워볼 수 있게 됐다. 만일 여기에서 유시민 대표가 승기를 잡는다면 친노의 적통을 잇는 수장이 되는 것이며 이를 토대로 친노의 영남벨트를 만들어볼 수 있다. 국민참여당을 중심으로 영남권 친노벨트가 형성된다면 민주당에겐 불리한 게 사실이다.

 

호남지역정당에서 전국정당으로의 모색을 꿈꾸는 민주당에게 영남권이 중요한 이유다. 사실은 이 샅바싸움이 있기 때문에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 전쟁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이다. 영남권역을 국민참여당에게 내주는 순간, 민주당이 수도권을 크게 장악한다고 해도 '도로 호남지역당' 인상은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참여당은 이날 오전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정제된 언어로 '민주당과 당 대 당 협상'을 하고 싶다는 뜻을 비춘 게다. 참여당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선을 원한다"며 "지역별·성별·세대별 인구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말고' 선거인단을 구성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비토했다.

 

이어 "선거인단 구성에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포함돼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백지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인 시민단체 대표들에게는 매우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참여당은 화살을 민주당 쪽으로 돌렸다. 불과 10개월 전인 지난해 6·2 지방선거 당시 김해시장 후보단일화를 여론조사로 결정했었다면서 그 결과 민주당 소속 김해시장이 당선됐는데 왜 여론조사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국민참여당은 이 협상 초기부터 줄곧 여론조사 100%로 후보단일화를 하자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물었다. 왜 민주당은 지난해와 다른 방식을 고집하나, 돈이 많이 드는 고비용 불공정 경선방식을 왜 고집하나. 화창한 봄날 굳이 낡은 망토를 입겠다고 고집 피우는 이유가 뭐냐, 따졌다. 민주당은 제1야당답게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선방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시민사회 무시하고 정당끼리 안 될 말

 

이 얘기의 속뜻은 민주당과 정치적으로 타결하고 싶다는 것이다. 양당 간 정치협상으로 쟁점을 매듭짓자는 뜻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민참여당의 제안에 응할 뜻이 없음을 누차 피력했다. 유시민 대표와 따로 만나 정치적으로 조율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다.

 

임종석 민주당 연대연합특위 간사는 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맑은 물 강바닥이 드러나 보이듯이 국민참여당의 속뜻이 환히 보인다"며 "지금은 욕을 먹지만 결국 시간에 쫓기면 참여당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론조사로 후보단일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거 막판까지 쫓기면 결국 '단일화의 모멘텀'은 오게 돼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임 간사는 "무엇보다 이번 협상은 긴 시간 시민사회와 함께 축적해온 과정의 역사가 있다"며 "그걸 깡그리 무시한 채 이제 와서 정당끼리 뚝딱뚝딱 합의한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라고 불쾌해했다.

 

소위 '정치적 대타협'의 가능성은 "제로"라는 게다. 무엇보다 임 간사는 "그간 함께 고생한 시민단체 대표들을 배제한 채 정치권끼리 결탁해 협상결과를 깜짝 발표하는 게 옳은 것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게 원칙과 상식에 맞는 정치냐는 것.

 

그는 "민주당이 이번 4·27 재보선 정치협상에 임하면서 전남 순천을 내려놓고 전체적인 야권연대에 주력하겠다고 나선 것은 큰 틀에서의 민주진보 승리를 다 함께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며 "결국 정치게임으로 변질된 상황에서 막판 후보단일화 얘기를 하는 것은 입만 아픈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유시민 대표와 따로 만나 전격 후보단일화에 합의하고 선언하는 '깜짝쇼'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도 "국민참여당이 국민의 뜻을 대리한 시민단체의 중재안을 끝까지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아주 만족스러워서 그 안을 받은 줄 아느냐"고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이번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의 기반"이라며 "조건의 유불리에 따라 계속 입장을 바꾸면 결국 믿음의 토대가 깨지게 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김해시민은 결국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 것인가

 

민주노동당도 야권연대가 최종 결렬로 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이날 긴급논평을 발표해 중단된 협상이 재개돼야 한다고 적극 나섰다.

 

우 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민심은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하여 모든 야권이 연대하라는 것"이라며 "최종 타결에 임박한 야권연대가 사소한 차이로 무산 위기에 봉착한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탄식했다.

 

또한 "김해을 타결을 위해 마지막 노력에 다시 한 번 임할 것을 호소한다"며 "김해를 제외한 강원도지사, 분당을, 순천에서는 기 합의된 대로 선 타결할 것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여 차례 직접 협상에 참여했던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국민참여당이 기존에 합의해놓은 '큰 틀에서의 야권연대 수용'이라는 약속마저 뒤집어엎을 줄은 몰랐다"며 "시민단체들은 야4당이 협상중재를 요청해서 협조한 것뿐인데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판을 깨버리는 우를 범하느냐"고 개탄했다.

 

이어 박 대표는 "이번 선거연합은 반MB야권연대라는 대의를 위해 소리를 탐하지 않는 것이 기본원칙이었는데 결국 소리에 따라 대의를 저버린 격이 됐다"며 "참여당이 선거연합의 정신에 동의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특히 그는 "국민참여당이 스스로 왕따의 길을 자청하는 까닭을 모르겠다"며 "아무리 김해에서 1석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계속 이렇게 하면 모두 잃게 될 텐데 왜 계속 벼랑 끝 전술을 고집하는 건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형남 민주통합시민행동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사소한 문제로 야권연대를 깨버린 것은 하늘이 분노할 일"이라며 "국민을 실망시킨 것에 대오각성 해야 한다"고 분개했다.

 

그럼에도 백승헌 희망과 대안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참여당이 재고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준다면 정말 고맙겠다"며 "1일 자정까지 수용한다면 재협상을 통해 단일화 방법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국민참여경선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최종 시간이 임박한 가운데, 국민참여당은 최종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만일 국민참여당이 홀로 선거를 치르게 된다면 김해에서 1석을 얻게 될까. 김태호 한나라당 후보와 야3당 단일후보, 이봉수 국민참여당 후보의 대결에서 김해시민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


태그:#4.27 재보선, #민주당, #유시민, #국민참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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