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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국사회의 빈곤 문제를 진단한다.
 책은 한국사회의 빈곤 문제를 진단한다.
ⓒ 한국사회정책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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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모이고 조직이 짜이고 법이 만들어진 모든 사회에는 그늘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이 생겨나게 되고, 덜 가진 이가 뒤처지기 시작한다. 차이는 점점 커진다. 돈이 돈을 벌고, 두 그룹의 차이는 점점 커진다. 대개의 경우 한 번 벌어진 거리는 다시 좁히기 힘들다.

흔히들 노력을 하면 된다고 한다. 얼핏 맞는 말이고,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룰 자체가 불공평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당한 노력을 해도 그만한 가치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품게 되는 분노와 낙담은 누가 달래 줄 것인가.

그리하여 사회적 빈곤계층으로 떨어진 이들은 어떻게 구제해야할까. 본인 잘못이니 평생 그렇게 살라고 질책해야 할까. 물론 빈곤문제는 지구촌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해묵은 골치 덩어리다. 그렇다면 G20 개최로 국격이 올라섰고 선진국의 문 앞에 서있다고 자부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연 빈곤문제에 관해 그만한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기타 OECD 선진국에 비해, 기본 생활이 불안한 대한민국

경제적 빈곤 계층들이 많이 찾는 서울 가리봉동  인력시장.
 경제적 빈곤 계층들이 많이 찾는 서울 가리봉동 인력시장.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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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정책연구원 박순일 원장이 펴낸 <21세기 초 경제대국, 한국사회의 빈곤을 끝내는 길>은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자부하는 한국사회의 그늘을 들여다본다. 특히 사회적 약자 계층인 '빈곤' 세대에 관해 사회적, 통계적으로 알아보고 그 해결책을 고민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기타 OECD 선진국에 비해, 기본 생활이 불안하다고 한다. 국민소득의 10%를 사회지출에 쓰고 있다고 하지만 이른바 빈곤층에게 급여되는 현금 및 현물 서비스는 그 중 절반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보호를 받는 사람들조차도 기본 생활을 충분히 받고 있지 못하다고 한다.

2010년 쌀 재고량이 수요의 29%에 이르는데도, 끼니를 거르는 이들이 존재하는 현실. 주택보급률이 100~120%에 달하지만 가족이 길에 나앉고, 노숙자·부랑자 및 쪽방·고시원·PC방을 전전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 이미 넘치는 곳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왜 극심하게 모자라는 곳이 생기는 불균형이 지속될까를 고민한다.

저자는 이에 초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과 영국의 경우를 짚어본다. 미국은 최저생계비인 소득인구비율이 1947년 32%, 1960년에도 21%에 달했다고 한다. 영국도 1954년 국가부조수준이하 비율이 12.3%에 달했다고 한다.

우리와 다른 점은 이들 국가는 경제성장의 형평성 및 배분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대대적인 빈곤대책사업을 벌였다는 것. 또 이들 나라의 기본시각이 우리와 상이한 점을 꼽았다. 상당수의 빈곤층이 사회 소외지역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비판받아야 하고, 무조건적인 경제성장은 이러한 부도덕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빈곤은 단순한 경제차이가 아닌 사회갈등의 촉매제

빈곤계층이 찾는 한 고시원. 가리봉동에서도 가장 저렴한 월 15만 원이다.
 빈곤계층이 찾는 한 고시원. 가리봉동에서도 가장 저렴한 월 15만 원이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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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빈곤을 가난과 동일시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빈곤은 여러 개념으로 나뉜다. 책에서는 절대적· 상대적, 주관적·객관적 그리고 정책적 빈곤 등으로 구분했고, 우리사회에서 갖는 중요성을 고려하여 객관적인 빈곤개념을 밝히는데 애썼다. 이를 실증해야만 정책적으로 이용 가능한 개념이 정립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자가 빈곤문제에 매달리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발전에 있어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빈곤층이 단순히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계층과의 갈등을 일으키고 사회발전의 활력을 감퇴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빈곤은 단순히 경제 뿐 아니라 생활 및 문화적으로 계층을 분화시키고, 두 계층 간 대립현상으로 발전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협동이나 역할분담 관계자체가 파괴될 경우 대외적으로 경제는 물론 안보에까지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근저에는 빈곤문제를 '그들 자신이 극복해야 할 문제지, 나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있음을 저자는 우려한다. 일부 관심 있는 학자나 정치인들이 빈곤문제가 생각보다 깊음을 걱정하고 있지만, 사회나 정부의 개선노력은 요원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치로부터 독립 된, 일관된 빈곤 정책 마련해야

하루 밤 1만 원인 여인숙의 세면시설.
 하루 밤 1만 원인 여인숙의 세면시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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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의 도덕적 해이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그에 반해 못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의 축재과정의 부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대립에서 보듯 이미 갈등이 폭발하기 직전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는 이미 빈곤문제를 해결하고도 남을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재정의 문제나 행정의 비효율성에 기인한 것 보다는 사회구성원들의 빈곤 해결의지, 혹은 도덕적 책임감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빈곤정책이 정치 중립화 되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상대적으로 인구비중이 적고 조직화되지 못한 빈곤층은 선거 전이나 후나 우선순위가 밀릴 수 있기에, 정책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힌다.

책은 빈곤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의 삶 자체가 공공의 사회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간과하는 무지라고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도덕성 결핍이 결국 사회 전체에 가져 올 엄청난 '나비효과'를 경고하면서.

기사에는 빠졌지만 책 본문과 부록에는 수많은 구체적 수치와 논거들이 도표 혹은 그림으로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꼼꼼히 살피면 상식 그 이상의 사회·인문학적 교양에 보탬이 될 듯하다.

덧붙이는 글 | 박순일 저, 한국사회정책 연구원 펴냄



태그:#박순일, #빈곤, #한국사회정책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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