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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여행지 미드타운(ミッドタウン). 일본 방위청 건물 철거 후 재개발을 통해 2007년에 새롭게 태어난 곳이다. 미드타운은 도쿄 서부 도심의 디자인 명소이자 쇼핑과 맛집, 미술관이 몰려 있는 복합도시이다. 미드타운은 세련된 가게와 공원들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일본의 현대적인 디자인 건축물들을 답사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하철 오오에도선(大江戸線) 롯폰기역(六本木驛) 8번 출구로 나왔다. 지하철 역과 미드타운 갤러리아는 연결되어 있었고, 우리는 미드타운 갤러리아의 지하에서부터 시내여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지하 1층의 식당가에는 인기 돈가스 가게인 '히라다 보쿠죠(平田牧場)'가 자리 잡고 있다. 가게 앞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다. 가게 앞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니 히레가스와 함께 고기가 부드러워 맛있다는 긴카돈(金華豚), 그리고 정육, 햄을 함께 팔고 있었다. 군침이 도는 가게지만 긴 줄에 서 있을 여유가 없어 발길을 돌렸다.

개방된 천장을 통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 미드타운. 개방된 천장을 통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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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타운 갤러리아 내부는 뻥 뚫린 한 중앙에 키 큰 대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푸른 대나무는 미드타운 건물의 개방된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향해서 뻗어 있었다. 그 햇빛은 조금씩 움직이면서 수직으로 갤러리아 1층까지 비추고 있었다. 유리로 만든 천정은 건물 속에서도 건물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탁 트인 거대건물의 천장은 시원스럽고, 갈색 나무로 기둥과 벽면을 장식한 인테리어는 대나무 숲과 조화롭다.

갤러리아의 대공간은 4층까지 연결되고 있었다. 홀의 곳곳에 자리한 큰 공간은 쇼핑가에서 느끼지 못하는 여백의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다. 황토색의 갤러리아 속살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은은한 조명 속에 거꾸로 떨어지는 분수대의 여러 갈래 물줄기는 청량한 자연을 느끼게 한다. 이곳은 깔끔함, 그리고 절제하면서도 세련된 일본의 디자인 파워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일본의 깔끔한 디자인 파워를 느낄 수 있다.
▲ 미드타운의 인테리어. 일본의 깔끔한 디자인 파워를 느낄 수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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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드타운의 골격 속에 일본이 자랑하는 명품 가게들이 가득 들어 있다. 프랑스와 일본에서 유명한 수제 초콜릿 가게인 '쟝 폴 에벵(JEAN PAUL HEVIN)'과 함께 파르페, 카스타드, 립파이, 블루베리 빵이 맛난 '파티쉐 아오키(patisserie AOKI)', 신선한 재료를 최고의 참기름으로 튀기는 덴뿌라 전문집 '야마노우에(山の上)'와 같은 가게들이 스스로를 뽐내고 있었다. 분명히 고급스러운 곳이지만 디자인이 절제되어 은은한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한다. 나는 쇼핑을 하는 갤러리아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마치 빛이 잘 들어오는 카페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신기하지만 사서 먹기에는 너무 비싼 가격이다.
▲ 네모난 수박. 신기하지만 사서 먹기에는 너무 비싼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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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타운 과일가게에는 진기한 과일들만 모여 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과일은 네모난 수박이다. 나는 네모 수박의 재료가 꼭 플라스틱같이 보여 몇 번이나 수박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 옆에는 짙푸른 수박과 함께 황금색 수박이 탐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수박은 도저히 사서 먹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엄청나게 고가이다.

우리는 피곤해지기 시작한 다리를 잠시 쉬기 위해 갤러리아 밖으로 나왔다. 미드타운 빌딩의 바로 뒤편을 보니 녹색 잔디 찬란한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히노키쵸 코엔(檜町公園)이 미드타운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공원은 원래 일본의 유명한 무사였던 모우리(毛利) 가문의 히노키쵸 저택과 정원이 있던 곳이다.

도심 재개발을 하면서 미드타운 복합도시 면적의 40%나 되는 넓은 구릉을 녹색 잔디밭으로 만드는 파격을 발휘한 것이다. 미드타운 갤러리아도 원래 있던 이 정원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이 넓은 잔디밭은 시민들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있었다.

도심의 잔디밭에서 시민들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
▲ 히노키쵸 코엔. 도심의 잔디밭에서 시민들이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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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은 오후의 밝은 햇살 아래 평온했고 많은 사람들이 한가하게 벤치에 앉아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잔디 위에 조용히 앉은 사람들은 전혀 소란스럽지 않았다. 잘 계획된 인공의 정원 속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전혀 시끄럽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과거 저택의 정원일 당시의 거목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한낮의 햇볕 아래 아늑하기만 하다. 나는 내가 도쿄의 도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신영이가 머리가 조금 어지럽다고 하여 우리는 잔디밭 위에 앉았다. 나는 도쿄의 하늘을 보기 위해 등을 붙이고 잔디 위에 누웠다. 누워있는 나의 시선 위로 아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그 뒤에 도쿄의 푸른 하늘이 있었다. 아내는 신영이가 괜찮은지 신영이의 이마를 짚어보고 있었다. 길가의 잔디밭 위에 누운 나의 시야 위로 여러 젊은 남녀의 다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정녕 누워서 도쿄의 하늘을 사진기에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다리를 쉬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은 아무래도 여행의 로망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다시 기운을 차린 신영이를 데리고 우리는 공원을 걸었다. '21_21 디자인 사이트'. 내 눈 앞에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설계한 건축물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의 작품집에도 나와 있지 않던 최신 작품이다. 일본 여행 중에 한 번씩 안도 다다오의 작품을 접하며 감탄을 했지만 이 건축 작품은 아주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안도 다다오의 최신작품으로 공원과 너무 잘 어울린다.
▲ 21_21 디자인 사이트. 안도 다다오의 최신작품으로 공원과 너무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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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경사진 구릉 위에 세워진 미술관은 높이와 직선구조가 주변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경복궁의 건물과 담장 높이가 인왕산과 북악을 넘지 않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진 미술관은 건축물 자체의 디자인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이 예술작품은 주변의 자연을 전혀 침범하지 않고 공원의 녹색, 푸르름과 연결되고 있었다.

시민들이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편안히 쉬고 있다.
▲ 미드타운 냇가. 시민들이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편안히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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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작은 인공 냇가가 나타났다. 많은 도쿄 시민들이 냇가 옆의 평평한 목재 의자에 앉아 흐르는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석재로 고이 다듬어 만든 기다란 수조의 냇물은 '21_21 디자인 사이트' 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젊은 연인들이 한낮의 한가함을 즐기고 있었고 가족과 함께 나온 어린 아이는 차가운 물살을 즐기고 있었다.

냇가 뒤편의 자갈돌 위에서는 여러 개의 작은 분수가 물살을 뿜고 있었다. 샌들을 신은 신영이는 발목까지 물이 차는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 물살을 즐겼다. 번잡한 도심에서 왠지 해변에서와 같은 마음의 평안함이 느껴진다.

갤러리아 안에서 바라보는 도쿄의 야경이 아늑하다.
▲ 미드타운 야경. 갤러리아 안에서 바라보는 도쿄의 야경이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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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선도하는 곳답게 미드타운 앞 곳곳에 자리한 조형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간단치 않다. 이 거대한 복합 건축물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가는 발걸음마다 새롭기만 하다. 그 깔끔함이란 작은 빈 틈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도쿄 도심에 자리 잡은 미드타운은 한적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지닌 멋진 곳이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분수의 여러 물줄기가 청량하다.
▲ 미드타운 분수. 천장에서 떨어지는 분수의 여러 물줄기가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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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드타운 앞의 라면집에서 소유라멘(醬油 ラ-メン)을 먹고 미드타운 갤러리아로 다시 들어왔다. 갤러리아 3층에 일본 전통의 엣지 있는 미술품들을 다수 소장한 산토리 미술관(サントリー美術館)이 있기 때문이다. 미드타운 인근의 국립신미술관이 파워 있는 건물과 현대 미술품의 총아라면 이 미술관은 도쿄 아트 트라이앵글 중에서도 일본의 미를 대표하는 곳이다.

미드타운 안에 일본을 대표하는 산토리 미술관이 들어와 있다.
▲ 산토리 미술관. 미드타운 안에 일본을 대표하는 산토리 미술관이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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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카사카(赤坂)에 있었던 산토리 미술관은 2007년에 미드타운 안으로 들어왔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 쇼핑 가게들이 줄을 서 있는 갤러리아의 3층에 들어선 것이 조금 아쉽다. 각 미술관마다 미술관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건물 전면의 파사드가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만 찾아오는 사람은 갤러리아 3층까지 찾아오기도 불편할 것 같고 3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많은 가게들과 식당들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 같다.

나는 미드타운을 나가는 길에 우연히 '후지필름 스퀘어(FUJIFILM SQUARE)'를 발견했다. 불 꺼진 전시창 너머로 갤러리와 디지털카메라, 다양한 필름카메라들이 보였다. 아! 별 생각 없이 신나게 놀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명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들을 놓쳐 버렸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아내, 딸과 다시 길을 나섰다. 지하철 히비야(日比谷)선 롯폰기(六本木)역으로 향했다. 호텔로 향하는 전철 안, 얌전하게 자리에 앉은 도쿄 시민들은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나의 아내는 부족한 잠을 자고 신영이는 도쿄에서 산 책을 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9년 7월말~8월초의 일본 여행 기록입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7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도쿄, #롯폰기, #미드타운, #히노키쵸 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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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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