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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커져만 가는 나라 빚에, 시민들의 삶의 질은 뒷걸음질입니다. 20조원이 넘는 4대강 사업에, 대통령 형님과 부인 예산까지. 지방 자치단체 역시 이런저런 건설사업으로 빚더미에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세금혁명'을 외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12회에 걸쳐 우리 주변 곳곳서 벌어지는 세금낭비 실태와 현장을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 편집자 말

'민간자본으로 하는 사업인데, 왜 세금이 낭비되지?'

무분별한 민자사업 남발로 국민 세금이 낭비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이처럼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들이 민자사업 도로의 비싼 통행료 때문에 분통을 터뜨린 경험이 있겠지만, 막대한 세금까지 들어간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어째서 민자사업에 세금이 낭비되는 것일까? 2000년대 이후 정부는 재정사업의 상당 부분을 민자사업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 이미 각종 사회간접자본(SOC)이 대부분 포화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충분히 갖춰진 상태이기 때문에 과거처럼 재정에서 SOC 예산을 대폭 늘릴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구나 저출산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 등으로 교육, 문화 및 복지 부문 등에 재정 투입을 늘려야 해 천하의 '토건족 정부'라고 해도 SOC사업 예산을 드러내놓고 늘려가기는 어렵다.

민자사업, 재정은 낭비하고 건설업체 배만 불려주고

국토해양부는 2001~2008년까지 민자고속도로 운영수입 보전비용으로 인천공항고속도로에 6973억 원을 지원했다.
 국토해양부는 2001~2008년까지 민자고속도로 운영수입 보전비용으로 인천공항고속도로에 6973억 원을 지원했다.
ⓒ 신공항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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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부는 겉으로 드러나는 재정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SOC 사업을 실질적으로 계속 늘려가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바로 SOC사업을 재정사업이 아닌 각종 민자사업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는 공공사업 발주 물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고수익 사업기회를 늘리려는 국내 건설업체들의 이해와도 맞아떨어졌다.

이처럼 정부가 재정사업들을 예산상의 이유로 민자사업으로 돌리다 보니 오히려 불요불급한 SOC사업들이 더욱 남발되는 경향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최소운영수입 보장 등의 조항을 만들어 정부가 대부분의 민자사업을 '저위험 고수익' 구조로 만들어주다 보니 건설업체들도 엄밀한 사업성 검토 없이 각종 민자사업 제안과 참여를 경쟁적으로 늘렸다.

그런데 국내 민자사업은 다른 선진국의 민자사업과는 달리 정부 재정지원 비중이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철도, 도로, 지하철 등 상당수의 민자사업에 30% 전후의 재정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엉터리 교통수요 예측과 정부의 과도한 운영수입 보장에 따른 운영보조금 지급도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국토해양부는 2001~2008년까지 민자고속도로 운영수입 보전비용으로 인천공항고속도로(6973억 원), 천안~논산간 고속도로(2446억 원) 등의 운영회사에 1조661억 원을 지원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민자고속도로 등이 계속 추진되고 있어 이 같은 운영수입 보전을 위한 재정지출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민자고속도로뿐만 아니라 민자 항만이나 철도 및 지하철 등에 대한 운영수입 보조금과 서울, 부산, 대구 등 각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했거나 향후 추진할 민자사업들에 대한 지자체 재정 투입을 생각하면 2020년대까지 최소 수십조 원의 감춰진 재정지출이 불 보듯 뻔하다. 

인천공항철도.
 인천공항철도.
ⓒ 코레일공항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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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인천공항철도 사례다. 2009년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인천공항철도를 건설한 현대건설컨소시엄과 함께 인천공항철도를 1조2045억 원에 인수했다. 그동안 인천공항철도 1단계 구간의 수송량이 당초 교통수요예측의 6~7% 수준에 불과해 정부는 이미 개통 첫해인 2007년 1040억 원을 보전해준 데 이어 2008년에는 1666억 원을 운임수입보조금으로 지급했다.

당초 시설 운영자의 운영수입이 당초 교통수요 예측치를 기준으로 한 수입액의 90%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개통 후 30년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인천공항철도 한 사업에서만 30년간 13.8조 원을 재정으로 지원해야 할 판이 되자 코레일이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정부는 재정지원 부담을 6조7000억 원으로 낮출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공사에 대한 국고지원비를 포함하면 모두 7조4631억 원의 재정을 지출하게 되는 셈이다. 정부는 공항철도사업을 민자사업으로 추진해 마치 재정부담이 거의 없는 것처럼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애초부터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경제성이 있는 것처럼 부풀리고 엉터리로 추진한 탓에 오히려 재정은 재정대로 낭비하고 건설업체들의 배만 불려준 꼴이 된 것이다.

생색은 실컷, 지불고지서는 임기 끝나고... BTL 민자사업의 유혹

민자사업의 재정지출 문제는 또 있다. 앞에서 소개한 인천공항철도나 각종 민자도로 등은 이른바 BTO형 민자사업이다. 이들 BTO형 민자사업에서는 많은 이들이 비싼 통행료나 이용료 등을 통해 많은 문제를 느끼고 있지만, 또 다른 민자사업 방식인 임대형(BTL) 사업이 세금 낭비를 초래하는 실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부터 도입된 BTL사업은 시설이 준공되면 소유권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되지만 사업시행자에게 일정기간 동안 시설 관리운영권을 인정해 정부나 지자체가 협약기간 동안 임차료를 지급해야 한다.

이 같은 BTL사업은 BTO 방식으로 추진됐던 도로, 철도, 항만 등과 달리 학교, 하수관거, 군 숙소, 수련원, 복지시설 등 운영수입이 없는 사업에도 민자사업을 도입하는 길을 열었다. 사실 BTL사업은 정부가 직접 해야 할 재정사업을 민자사업자들에게 하게 한 뒤 장기간에 걸쳐 임차료 형식으로 지불한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고금리 카드할부구매'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BTL사업은 당장 사업을 할 때는 돈이 빠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당장 치적을 내세우고 싶은 무책임한 기관장들은 BTL사업 남발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카드 할부구매에 맛 들인 무책임한 가장처럼 말이다. 그래도 일반 가계의 가장이야 결국에는 할부금을 자신이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기관장들 입장에서는 생색은 자신이 실컷 내지만 지불 고지서는 대부분 자신의 임기가 끝나야 날아든다는 점에서 BTL사업의 유혹은 너무나 달콤하다. 이런 식으로 BTL사업은 재정으로 사업을 집행할 때에 비해 훨씬 더 많이 남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할부금을 갚아야 할 시기가 되면 그만큼 큰 재정 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의 터무니없는 고금리 할부구매... "자기 돈이라면?"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자료사진)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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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사례를 통해 BTL사업이 얼마나 큰 세금 낭비를 일으키고 있는지 살펴보자. 서울시교육청의 예산 규모는 약 7조 원 정도인데, 자체 세원이 미미해 2010년 기준으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서울시)로부터 이전받는 수입이 시교육청 세입의 86.6%를 차지한다. 이밖에 교육특별회계와 전년도 이월금 등 자체수입이 일부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살림살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지방채 발행액이 706억 원→2717억 원→3538억 원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세수 감소로 인해 교육재원이 모자라는데도 각종 시설사업을 남발해 지방채 발행을 늘린 것이다.

세출 측면에서는 인건비와 학교운영비 등 경상적 경비가 전체 세출의 75~80% 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세출 구조조정이 상당히 어렵다. 그 밖에 대부분은 시설사업비인데 2007년 7178억 원이던 것이 공정택 전 교육감이 재선한 해인 2008년 1조1778억 원으로 한 해 만에 64.2%나 급증한 뒤로 2010년까지 매년 1조 원 이상을 유지해 왔다.

이처럼 서울시교육청의 살림살이는 무척 빠듯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의 살림살이를 더욱 옥죄는 것이 바로 공정택 전 교육감 시절 마구잡이로 벌여놓았던 각종 BTL사업에 대한 지급 부담이다. 서울시교육청이 BTL사업 초기인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추진한 각종 BTL사업 규모는 9384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에 따른 향후 20년간 지급금 규모는 임대료 1조8497억 원, 운영비 5970억 원으로 모두 2조4467억 원이나 된다. 이를 순현재가치로 환산한다고 해도 대략 2조 원에 이르는 금액이다.

현금으로 지불하는 경우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싸게 할부로 시설사업을 벌인 셈이다. 터무니없는 고금리 할부구매가 아닐 수 없다. 자기 돈이라면 도저히 그런 식으로 사업을 벌이 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민자사업은 건설업체들이 제시한 사업비가 거의 그대로 인정되기 때문에 경쟁입찰에 비해 사업비도 부풀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예산사업으로 했을 경우에 비해 낭비되는 돈은 사실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

생색은 퇴임한 공정택 전 교육감이 다 냈지만, 부담은 후임 교육감들이 뒤집어쓰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가뜩이나 빠듯한 살림살이에서 매년 약 1223억 원씩을 20년 동안 BTL사업 지급금으로 지출해야 한다. BTL사업에 대한 임대료와 운영비 지급금은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지불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또한 기존에 발행한 지방채 상환 만기도 2012년 이후 본격적으로 도래하게 된다. 가뜩이나 돈 나오는 곳은 없고 돈 쓸 곳은 많은 가운데, 이미 무리하게 써버린 부채를 수천억 원 단위로 상환해야 하는 처지다.

 서울시교육청의 BTL 지급금 상환 추정액
ⓒ 서울시교육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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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2010년 서울시교육청이 지방채 상환과 BTL사업 지급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예산만 1677억 원인데, 2012년 이후부터는 3000억 원을 넘어서게 돼 이 같은 구조가 만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BTL사업 지급금 가운데 일부는 국고보조를 받게 되지만 전체 BTL사업 지급금의 약 2/3 가량은 서울시교육청이 지급해야 한다. 따라서 국고 보조를 감안하더라도 2012년 이후 서울시교육청이 지방채 상환과 BTL사업 지급금으로 지불해야 하는 금액만 최소한 250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매년 수조 원 할부금 지불... "민자사업 축소, 세출구조조정 필요"

이처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앞에 놓여 있는 재정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물론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자체 세원이 없어 세원을 넓히거나 세수를 늘리기도 어려우므로 과감한 세출 구조조정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특히 손을 대야 할 핵심 영역은 시설사업비 부분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중기 재정계획에 따르면 시설사업비는 매년 1조 원이 넘는 투자가 2013년까지 계획돼 있다. 물론 공립학교 신설이나 낡은 시설의 증개축은 필요에 따라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개별사업에 대한 판단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공교육의 양적 질적 개선에 필요한 시설사업은 계속 진행해야 한다.

다만 같은 규모의 시설사업을 진행하면서도 터무니없는 낭비만 없애도 상당액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우선, 서울시교육청이 2008년 이후 발주해온 시설공사의 평균 낙찰률은 97%에 해당한다. 사실상 담합을 통해 사업이 낙찰되는 턴키사업의 평균 낙찰률보다 더 높다. 제대로 된 경쟁입찰을 할 경우에 비해 막대한 예산 낭비가 발생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만약 서울시교육청에서 발주하는 모든 공사를 가격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하면 평균 낙찰률을 최소 75%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2013년까지 매년 계획하고 있는 시설사업비 1조여 원 가운데 매년 2200억 원 정도는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서울시교육청이 발주하는 시설사업들은 대부분 비슷한 성격의 자잘한 사업들을 개별적으로 발주하고 있는데, 비슷한 성격의 사업들을 묶어 일괄 발주하면 예산을 절감할 여지는 더 커진다.

사실 다른 광역시도 교육청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각 지방 교육청들이 낭비성 시설사업 등을 중심으로 효과적인 세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무분별하게 추진한 BTO형 민자사업들에 2020년대까지 수십조 원 이상의 재정지출이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더해 BTL형 민자사업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할부금을 지불하는 1~2년 후부터는 매년 수조 원 규모의 할부금을 지불해야 할 실정이다. 그 할부금은 모두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무분별하게 민자사업을 남발하고 있다. 눈속임과 고금리 장기할부구매로 세금 낭비를 일으키는 대규모 민자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민자사업을 할 경우 수익에 상응하는 위험 부담을 지게 하는 제도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태그:#세금 혁명, #민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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