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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연산면 관동리 132번지에는 보물 제724호인 성주도씨 종중문사가 보관되어 있는 문서각이 자리하고 있다. 보물 성주도씨 문서는 조선 태조 2년인 1393년부터 태조 6년인 1397까지, '도응'에게 하사한 사령왕지 4매와 녹패 등 5매의 고문서이다. 도응은 고려 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인 중 한 사람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관직을 하사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 집에 전해지고 있는 고문서들은 13993년에 받은 '도응위조봉대부전의소감사령교지'와 1394년에 받은 '도응위선절장군흥위위좌령장군사령교지', 그리고 1395년에 받은 '도응위선절장군용우무위사좌령장군사령교지', 태조 6년인 1397년에 받은 '도응위보공장군호용순위사간대장군사령교지' 그리고 '회사선절장군흥위위좌령장군사령녹패' 등이다.

 

 

태조의 왕명으로 받은 이 왕지에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관직이 섞여 있으며, '조선지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이 도응이 왕명으로 받은 왕지를 보관하고 있는 장소가 바로 논산시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성주도씨 종중 문서각이다.

 

문서각을 찾아가다

 

연산면 관동리에 있는 문서각을 찾아간 것은 지난 3월 13일이었다. 황사가 심하게 부는 날 찾아간 문서각. 문서각은 앞에 3칸으로 지은 보호재가 있다. 아마도 이 문서각을 지키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인 듯하다. 보호재를 지나면 일각문이 있다. 층계를 올라 일각문을 들어서면 좌측에는 숭덕제라는 집이 있고, 우측에는 보호각 건립기념비가 서 있다.

 

 

좌측의 숭덕재는 아마도 재실인 듯하다. 방안에는 각종 기물이 쌓여있다. 숭덕재는 세 칸 팔작집으로 바라다보면서 좌측의 한 칸은 누마루를 깐 정자방으로 꾸몄다. 이 정자방은 마름모꼴의 장초석으로 기둥을 대신하고 있다. 누정과 같은 형태로 꾸며놓았다. 중앙 한 칸과 우측 한 칸은 통한 두 칸 방이다.

 

쇠문으로 제작된 보호각의 창호

 

숭덕재를 지나면 다시 담을 친 일각문이 나타난다. 그 문을 들어서면 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세 칸으로 지어진 문서각이 있다. 문 위에는 나무 현판에 '청송각(靑松閣)'이라 적고 있다. 세 칸 앞에는 창호를 내었는데 모두 자물통으로 굳게 잠겨있다. 처음에는 칠을 해 놓아 목제 창호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만져보니 느낌이 다르다.

 

창호는 모두 쇠로 제작을 해 놓았다. 문처럼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쇠로 제작을 해 견고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전체적으로 칠을 해 놓아 안을 볼 수가 없다. 문서각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문이라고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문서각이니, 이 정도는 돼야 소중한 보물을 보호할 것이란 생각이다.

 

 

안에 보관하고 있는 성주도씨 종중문서를 볼 수가 없어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든든하게 잘 지어진 문서각이 있어 고맙다. 수많은 문화재들이 도난을 당한 우리 현실이 늘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보물인 성주도씨 종중문사를 보러갔다가 정작 보물은 보지 못하고 뒤를 돌아섰지만, 보물을 보지 못하고도 기분이 좋았다니. 문서를 보호하고 있는 전각만 보고 돌아서면서도, 이렇게 기분이 좋다는 나를 참 나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태그:#성주도씨 종중문서, #보물 제724호, #논산, #문서 보호각,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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