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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덕과 사회교과를 폐지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어 해당교과 교사들이 반대서명을 추진 중이다.
▲ 고교 교과서(도덕,윤리와 사상, 한국 근현대사, 철학, 독서) 최근 도덕과 사회교과를 폐지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어 해당교과 교사들이 반대서명을 추진 중이다.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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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풍부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되는 일제고사, 학교정보공개 차원의 수능성적 공개, 학교장 및 교사초빙제 확대 등이 역설적이게도 교육경쟁력을 오히려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적으로 단위학교의 성적을 비교하여 하위권 학교에 재정 및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상황 하에서 학생들에게 문제풀이가 늘어나고 보충수업이 확대된다. 그러면 학교의 최하위권 학생들 중 술, 담배, 무단결석 등의 일탈적 행동을 보이는 학생에 대해 전출을 더 많이 권고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최하위권 학생들에게는 맹목적으로 문제풀이 수업을 시킨다. 그러면 단기적으로 학교의 평균점수가 올라간다. 그러면 학교는 최하위권 순위는 면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경쟁일변도의 교육정책은 오히려 교육경쟁력을 훼손

문제풀이가 주가 되고, 교과서와 참고서에 묻히는 학생들이 과연 소설 한 편을 제대로 읽고 느낀 점을 표현할 수 있을까? 소설을 습작하고 이를 발표할 수 있을까? 동료 학생들과 영화 한 편을 찍어 출품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으로 성장할 훈련을 할 수 있을까? 해리포터와 같이 문학적 가치는 적더라도 최소한 그러한 상상력을 발휘하며 베스트셀러를 쓸 작가 지망생이 나올 수 있을까?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기초과학과 기술분야에서 꾸준히 탐구활동을 하여 미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보일까? 아니다.

게다가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소양을 키워주고 있을까? 이 또한 아니다. 오히려 취약해지고 있다. 최근 전국도덕교사모임, 전국지리교사모임, 전국사회교사모임에서 사회과목, 도덕과목의 폐지를 추진하는 정부에 반대하는 서명을 진행 중에 있다.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자질은 특정 직업으로 연결되는 기능(예컨대 골프, 농구, 자동차 정비, 컴퓨터 프로그래머, 영화제작 등), 도덕적 판단력이다. 여기에 문화예술적 감성이 더해지면 삶은 훨씬 풍요롭고 아름답게 해석되고 또 그렇게 만들어질 것이다.

도덕교과 폐지는 찬성, 사회교과 폐지는 반대

도덕성은 도덕교과와 도덕교과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접할 사안이다. 반면 사회교과는 법적 판단, 정치적 견해 등을 다루는 부분이라서 폐지에 반대한다. 사회교과에서 얻는 공정성의 시각이 취약하면 동네에 대형마트가 들어와 재래시장이나 골목의 가게를 무너뜨려도 방관하거나 조장하는 시민들이 배양될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과도하게 맹위를 떨치는 곳에서 낙오자가 발생하기 쉬우며 한국도 이미 신자유주의의 이름아래 IMF때 대환란을 겪지 않았던가? 삶의 세부영역에서 다양한 공정성의 시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 사회교과는 존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폐지에 앞서 선진국의 교과 상황을 점검하는 것도 필요하다.

도덕과목의 폐지는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나아가 현재의 윤리전공 교사들에 대해서 재교육을 거쳐 철학교사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덕, 윤리과목을 특정 교과와 교과서로 제작하는 나라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유일하거나 다른 한두 개 나라가 있을 정도다. 국가나 교과서 제작진이 도덕적 판단을 앞에서 선점하여 한 방향으로 이끄는 형태는 '교육(education)'이라기보다는 '교화(indoctrination)'에 해당한다. 교육이 열린 사고로 학생들을 유도하는 것이라면 교화는 닫힌 사고로 학생들을 유도한다. 과거 국민교육헌장은 교화의 한 예다.

현 정부의 시책에서 '윤리와 사상' 교과는 유지한다고 했다. 당분간 이를 유지하되 수년 후에는 이 윤리교과도 폐지하고 전면 철학으로 대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지금도 고교 졸업 및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서 모든 학생들의 필수교양 시험으로 철학을 논술로 치른다. 이어서 전공별로 논술시험을 또 치른다. 독일,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에서도 교양과정을 수반한 글쓰기 시험을 치른다. 지금 세계의 인문학적 지성은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교 철학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아비투어에 대한 위키백과사전의 내용: Abitur (from Latin abeo = leave, go off) is a designation used in Germany, Finland and Estonia for final exams that pupils take at the end of their secondary education, usually after 12 or 13 years of schooling. http://en.wikipedia.org/wiki/Abitur)

철학이 필수과목이어야

우리나라에서 고교철학은 아직도 전두환 독재의 그늘이 드리워진 윤리교과의 기득권에 의해 밀려나 있다. 전두환 정권은 성장하는 세대에 대해 독재를 합리화하는 인재를 양성하려고 사대에 국민윤리과를 개설했다. 이것이 윤리교육과의 태생적 한계다. 이제 사범대 윤리교육과 교수와 여기서 배출된 윤리교사(본인을 포함)들이 자리를 내줄 차례가 되었다고 본다. 윤리보다 철학이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게 분석, 비판, 종합적 사고를 키워줄 수 있음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철학은 데카르트가 지적했듯이 방법적으로 회의(doubt)하는 것이며, 니이체가 말했듯이 언어의 연막을 뚫고 들어가 진실을 캐내는 작업이다. 즉 사회교과가 삶의 작은 단위에서 공정성을 지켜내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면 철학은 시민들의 삶의 총체적 영역에서 정의(justice)의 감성을 키워냄으로써 편견과 이기심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면역주사의 역할을 하는 교과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비판을 허용함으로써 민주주의적 사고를 함양하는 힘이 철학에서 나온다. 정의에 대한 판단력이 취약해지면 리비아의 카다피, 과거 한국의 박정희-전두환-노태우와 같은 독재자가 다시 출현하는 토양이 마련될 것이다. 윤리가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하지만 윤리교과가 아니라 철학으로 접근할 때 더욱 민주적이고도 탈권위적인 인간의 양성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미 세계적인 사회학자 안토니 기딩스는 한국이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사회 속에 편재한 권위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역사과목 필수에 찬성

한국사 및 세계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은 늦은 감이 있으나 환영이다. 과거 2차 대전의 주범 독일과 일본은 지금도 세계사가 필수과목이다. 자국의 역사는 두말 할 나위도 없다. 반면 한국은 근래에 들어 선택과목이었다. 선택에 맡김으로써 6.25 전쟁, 4,19혁명, 5.18혁명 등을 모르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역사문헌에 입각하여 훌륭한 논문을 써서 국제적으로 독도가 한국땅임을 알리는 것이 핵무기를 확보하는 것보다 합리적임은 상식이 아닌가? 이를 위해서도 역사학도는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비밀을 해제하는 문건이 공개되는 순간 거기에는 벌써 일본의 연구진들이 문건 복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문건을 복사하여 일본말로 번역하면서 문건을 그대로 일본 본국으로 전송한다. 그 자리에 한국의 연구진을 드물거나 없다. 고교생들 중 역사책을 읽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논술, 토론, 면접능력면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입시위주의 문학수업을 탈피해야

문학은 이미 학생들에게 작문, 독서, 문학, 국어 등 이름만 달리할 뿐 다양한 교과명으로 다가와 있다. 수능에서도 주요 영역으로 치러진다. 따라서 필수과목으로 인정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입시중심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입시로서의 문학과 교양으로서의 문학은 다르다. 입시를 위한 문학은 문제풀이가 주가 되어 문학적 감성을 키워내지 못함과 동시에 책읽기에 싫증을 내게 한다. 수능시험이 끝나는 다음날 전국의 고교생들의 책들은 휴지로 변하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읽기를 시작해야 하지만 이미 입시에 덴 아이들은 교양서적까지 거부한다.

문학수업이 살아있는 공부가 되도록 하려면 교사만 변해서는 불가능하다. 이 정부는 지금도 교육경쟁력을 교사의 변인 하나에만 떠밀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을 완화해야 하는 바,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직업교육 즉 국내외 산업수요에 걸맞은 맞춤형 직업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이 때 대학진학률 70%가 넘는 기현상이 완화된다. 선진국 중 대학진학률이 고교 졸업생의 50%를 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학급당 학생수 15~20명으로 축소하고 입시에 포획된 교육과정이 아니라 여기서보다 자유로운 수업이 가능할 때 학생들은 문학작품을 자기 나름으로 감상하고 인생관을 정립하는 데까지 진전될 것이다. 교양으로서의 문학수업을 위한 열쇠는 교육풍토 자체를 바꾸는 데서 찾아야 한다.

수학은 기초과학의 토대

수학적 사고능력 예컨대 미적분 계산능력은 사무능력 예컨대 우리가 많이 쓰는 엑셀의 함수를 익히는데도 도움이 된다. 프랑스에서 수학을 강조하는 이유도 응용과학의 저변 지식 즉 기초 과학기술의 토대구축에 있을 것이다. 미국의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은 한국보다 쉽다. 하지만 세계적인 수학자, 과학자의 절반 이상이 모여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한국은 중고생에게 수학을 어렵게 가르치고 있으나 세계적인 석학은 없다. 무언가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2012학년도 수능시험부터 미적분, 기하, 벡터를 수능시험에 출제토록 한 것 역시 찬성한다. 하지만 학교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를 앞세우는 것이 문제다. 단위학교에 기존의 전 교과가 큰 변동없이 대부분 그대로 개설된 상태에서는 학생들이 선택적으로 시간표를 짜서 이동하는 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어, 수학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수준별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형식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 중학생들의 상위 30~40%이내에 드는 학생들이 인문계 고교로 진학하고 나머지 60~70%가 전문계(실업계) 고교나 직업학교에 진학하도록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인문계 고교 학생들에 대해 필수로 수학을 모두 공부하게 한다. 현재의 인문계 고교 수와 학생수가 너무 많다. 이러한 환경을 개선할 줄 모르는 정부가 무능한 것이다. 현재의 인문계 고교의 하위 10~20% 학생들은 고교 진학시에 전문계 고교진학도 안될 만큼의 기초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이다. 정부에서 이러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평가위주의 정책을 펴니까 학교현장에서는 이 하위권 학생들에 대해 방과후 수업을 통해 문제풀이를 시킨다. 그리고 성취도평가에서 불이익을 피한다. 이 얼마나 무익한 일인가?

이 중학교의 하위권 학생들은 교과성적 경쟁의 낙오자가 아니라 미래의 소중한 기능인으로 그 인식을 바꿔야 한다. 이 학생들에 대해 일찍부터 전문계 고교진학 및 직업학교 위탁을 통해 요리, 헤어디자인, 네일아트, 보일러, 건축시공 등의 기술을 익히게 하여야 한다. 이 학생들은 손을 쓰고 몸으로 익히는 작업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위권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의 길을 터주되 직업차별을 줄여주는 노력을 동시에 기울이는 등 복합적으로 상황을 개선해야 상위권 학생들에 대해 수학, 문학, 철학, 역사 등 기초학문 및 교양교육이 가능해진다.

이주호 장관은 최근 수년 후에 전면 이동수업이 가능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증설이 따라주어야 한다. 교장승진제, 각종 시범연구학교 운영, 학교평가 등을 위한 전시성 자료생산으로 불필요하게 교육예산과 교사들의 열정이 사라지고 있다. 이를 바로잡고 교장을 교사 중에서 선출하는 전향적이고 선진화된 정책변화가 필요하며, 주요정책은 현장에 광범위하게 물으면서 교육투자를 통해 실질적으로 이동수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현장과 함께 수립한 정책은 정치논리에 따라 정권변동에 영향받는 악습을 끊고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


태그:#사회과목 폐지, #도덕과목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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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에 교육평론 45편 정도 기고했으며, 현재 인천교육청 공립 대안교육 자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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