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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 (ISIS)가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위성사진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 (ISIS)가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위성사진
ⓒ 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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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경악했다. TV 화면을 통해서 접한 화면은 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진도 7, 진도 8, 진도 9가 어느 정도의 느낌인지 접해보진 못했지만, 쓰나미가 몰고 온 파도의 높이가 10m를 넘는다고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쓸려가고 죽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TV와 모든 언론들은 일주일이 넘게 톱뉴스를 관련 뉴스로 채우고 있고, 국민들도 엄청난 재앙 앞에서 새로운 소식에 귀를 열어 놓고 있다. 강도 9도의 지진. 쓰나미가 만들어낸 15m가 넘었다는 파도, 그리고 여의도의 48배에 이른다는 피해지역과 집계조차 되지 않은 수많은 재산상의 피해. 2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실종자, 그 몇 배가 넘을 이재민들.

자연의 힘은 무서웠다. 천재(天災), 하늘이 만들어 낸 대재앙 앞에서 일본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고 한다.

천재(天災)와 인재(人災) 사이

지진과 쓰나미는 한순간 피해지역과 일본의 심장부라는 도쿄까지도 암흑 세계로 만들어 버렸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멈춰버린 것이다. 단지 멈춰 버린 것이 아니라 원전 1, 2, 3, 4호기가 폭발하고 나머지 2개(5, 6호기)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일본 열도는 일주일째 사투를 벌이고 있다.

방사선 수치가 안전 기준치를 초과하고 '죽음의 재'라고 불리는 세슘이 검출되면서 원전 폭발은 일본의 문제를 넘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고 있다. 이런 극한 위기는 후쿠시마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자사이기주의와 일본 정부의 늦장 대처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높다.

일례로 1호기의 폭발이 있은 직후 도쿄전력은 미국의 기술 지원과 바닷물 투입 권고를 무시했으며, 일본 총리는 TV를 통해서 원전이 폭발했음을 알았다고 한다. 후쿠시마원전 방사선 누출 사태가 오롯한 천재라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진과 쓰나미가 '천재'라면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인재(人災)'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위기 앞에서 차분함을 보인 일본인들에게 세계 언론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부모가 죽고 자식이 실종되는 혼란 속에서 이해하기 힘든 얼굴 표정과 감정 자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원인을 분석하는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은둔적인 민족성'에 기인한다고 말하는 신문이 있는가 하면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후천적 교육의 효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극단적 애국주의의 발로'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들은 이런 일본의 국민성이야 말로 종전 이후 짧은 기간 동안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힘이었으며 따라 배워야 할 일등 국민의 덕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 참 불편한 논리 전개가 아닐 수 없다. 대자연의 천재지변에 국가의 통제를 믿고 서로를 의지하고 돕고 인내하는 것은 어떤 국민이든, 어떤 민족이든 다르지 않다. 오히려 민족성 국민성 운운하기 전에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위기 대처능력을 먼저 봐야하지 않을까?

거듭되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본은 위기 대응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어지간한 지진이나 자연재해에도 국민들은 정부의 대응능력과 정보의 의지하여 믿고 따라왔다. 이번 지진이나 쓰나미 대참사에도 일본 국민들이 그토록 차분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선진국형 국민성이라고?...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진도 9.0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한 일본의 동북부 해안과 인접한 이와테현에서 지난 12일 오전 어린 아이를 업은 한 여성이 쓰나미로 인해 잔해와 진흙으로 가득찬 곳을 지나고 있다.
 진도 9.0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한 일본의 동북부 해안과 인접한 이와테현에서 지난 12일 오전 어린 아이를 업은 한 여성이 쓰나미로 인해 잔해와 진흙으로 가득찬 곳을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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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일본 국민들은 참을성의 한계에 다다른 듯하다. 정권 퇴진과 원전 가동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도 있었다고 한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위기 속에서  대응능력이 잘 갖춰진 정부를 믿고 따라야 할 것이 국민의 의무라면, 인재를 야기하고 은폐하는 국가와 정부를 규탄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국민의 권리이다.

선진국형 국민성을 따라 배우길 강요하는 언론들. 국민성 운운하여 정부 비판에 재갈 물리는 후안무치의 논리 강요보다 우리 정부의 위기 관리는 제대로 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일본 대지진 이후, 정부와 한나라당은 국내에서 가동중인 원전의 안전성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출이 국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론전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는 것이야 정부와 여당이 할 일이지만 무조건 '우리나라는 안전하다', '국익에 큰 도움이 된다'는 식은 문제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15일 일본 대지진에 따른 국내 원자력발전소 피해 우려 등에 대해 "국내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고 다수의 언론이 전하고 있다. '절대' 안전?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고자 한 말이라고는 하지만 '절대 안전'이라는 것이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상대'적인 안전성을 검증하고 안전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절대 안전'이라고 오금 박듯이 말하는 정치적 수사가 더 위험해 보인다. 일본의 예에서도 보듯이 '절대' 안전한 것도 없고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없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며 확률의 차이일 뿐이다.

해외에서 일본 대참사를 계기로 원전의 안정성을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나섰다. 유럽연합 27개국이 원전 안전성 점검에 나섰으며 독일의 경우 1980년 이전 원전 7기의 가동을 중지하기로 했다. 스위스나 중국은 원전 건설 계획을 철회하거나 중단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동안 비교적 값싼 에너지로 인식되어 왔던 원자력 에너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위험하고 통제하기 힘든 에너지로 인식된 것이다.

우리 정부도 국내 원전시설 안전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직접 고리 원전을 점검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의 야당이나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안전 점검이나 원전의 운영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민주당 김영환 의원의 지적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원전 안전 불감증은 쌍생아 같고 80년 이전에 지어진 원전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절실하다고 했다. 내년으로 설계수명이 끝나는 월성 원전 1호기에 대해서도 10년 연장 운전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7, 8도 이상의 강진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수명이 끝난 노후한 원전의 운전을 10년 연장하면서 일본과 비교해서 '절대 안전'하다고 내세울 근거는 빈약하다. 오히려 야당이나 시민단체, 원전 운행의 즉각 중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절대' 안전은 없다

도쿄소방청이 19일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3호기에 냉각수를 투입하고 있다.(YTN 화면 촬영)
 도쿄소방청이 19일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3호기에 냉각수를 투입하고 있다.(YTN 화면 촬영)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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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4월호는 'UAE 문건으로 본 원전 수출 내막 -방사성 폐기물 부담도 떠맡나'라는 제목으로 "한전이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을 한국이 떠안을 수도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아랍에미리트(UAE)내에 핵 페기물을 둘 수 있는 시설이 없으며 새로 건설할 움직임이 없고, UAE 원자력 공사의 문건에 국내 재처리를 포함하지 않는 종합적인 핵폐기물 관리의 개발이 요구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원전 수주 당시 정부 발표를 인용한 언론 보도에 '한국형 원전 수출은 폐기물 처리까지 원전 전단계를 일괄 공급하는 형태로'라고 돼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종합하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가동 이후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우리나라가 다시 가져 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에 한국전력공사(한전)은 <신동아> 4월호 배포 및 판매접수 가처분을 신청하고 언론정정보도와 10억 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나는 <신동아> 4월호 문제의 기사를 지난 20일 서점에서 읽었다. 기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이라고 자랑하는 UAE 원전 수주에 대해, 덤핑 수주의 문제점과 더불어 방사성 폐기물이 한국으로 되돌아 올 수 있음을 구체적인 근거를 토대로 서술하고 있다.

한전은 허위 보도로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기사를 읽어 보면 오히려 한전이나 정부가 해명해야 할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설사 부분적으로 틀린 사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대답을 회피하고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측의 문제가 우선 지적돼야 한다.

후쿠시마원전 폭발 사태가 전력 공급과 냉각 장치 가동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제발이지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일본 이재민 돕기에 언론사와 정치권, 구세군까지 나서고 있다. 물론 은원의 관계를 떠나 세계 인류가 인류애를 바탕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나 한류 스타를 투입 하고 생수에 태극마크를 찍어 보내자는 의견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도, 경제도, 서민 살림살이도, 그것을 전하는 뉴스도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 왔으면 좋겠다. 일본 쓰나미에 우리나라 정치도, 경제도, 서민 살림살이도 다 쓸려가 뉴스 언저리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일본 쓰나미에 정치는 숨어 버렸고, 경제는 멈춰 버렸고 서민들의 삶은 대책없이 표류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되돌아 보아야 하지 않을까? 타산지석이라고 했다. 아프지만, 그래서 도와야 하지만 우리는 '절대안전'이라는 맹신도 한번쯤 의심하고 점검해 봐야 한다.


태그:#일본 대지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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