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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모든 일, 내가 당사자

 

지난 11일 오후 2시 46분, 전 세계 지진 관측 역사상 4번째로 강력한 진도 9.0의 대지진이  일본 열도를 강타했습니다. 높이 10m의 지진 해일은 일본 도호쿠(東北) 해안지역을 뒤덮었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지구의 자전축이 2.5cm 기울고 쓰나미로 태평양 연안의 일본 해안선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지도를 다시 그려야할 판인 일본의 대지진 참사를 걱정하는 소리들이 빠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참사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면서 일본과 관련되지 않은 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지인들이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13일 다녀가신 김영미 화백님은 여동생이 일본으로 시집가서 나고야에 살고 있고, 친구는 아들이 일본을 여행 중이었습니다. 사업하는 이웃은 가정의 대소사에도 오갈만큼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맺어온 분의 나라가 일본이었습니다. 모티프원도 4월 초 일본의 갤러리 관장이신 야시마씨가 오실 예정이고, 4월 말 한국인과 결혼하는 일본인 신부인 하야시 히리키씨가 그 가족과 친지들을 위해 모든 공간을 예약해놓은 상황입니다. 이것은 지구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곧 내가 당사자일 수 있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저도 급히 제 일본인 지인들께 연락을 했습니다. 계신 곳이 일본의 서북부와 남서부 지역이라 진원지와는 열도의 반대이거나 아주 먼 곳이라 직접적인 피해가 없을 것으로 짐작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일부는 메일의 답변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혹 그들의 가족이나 인척이 피해를 입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일본, 내 나라 같은 안도를 주는 땅

 

제게 여행얘기를 들려달라는 분들의 마지막 질문은 대게 비슷합니다.

 

"가보신 곳 중, 제일 살고 싶은 곳은 어디에요?"

 

그때마다 저는 비슷한 대답을 하곤 합니다.

 

제가 만약 한국에서 어떤 이유로 타국으로 추방명령을 받고 한국을 떠나야하고, 어느 나라를 택해도 좋다면 일본을 선택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한국과 가까워서 한국을 바라보고 고국을 그리워하기 좋다는 것입니다. 추방된 자는 분명 추억이 삶의 원동력일 테니까요.

 

둘째는 청결하다는 것입니다. 일본 어디에서건 쓰레기가 방치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천성적으로 이웃을 배려하는 국민성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음식입니다. 저는 일본의 어떤 음식도 제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장기간 해외에 체류할 사정으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기운이 쇠해지면, 한식당이 없는 곳에서는 일본식당을 찾으면 됩니다. 귀국길에도 저렴한 항공권을 이용하다보면 일본에서 환승해야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때도 일본 공항인근 싸구려 식당에서 일본 우동 한 그릇만 비워도 소진된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입니다.

 

넷째는 안전입니다. 늦은 밤거리를 배회하더라도 일본에서는 언제나 안심이었습니다. 80년대 처와 저는 '청춘18티켓(青春18きっぷ ; JR전노선의 보통, 쾌속 열차 보통실을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열차할인권)'을 이용해 18박 19일 동안 도쿄에서 후쿠오카까지 배낭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경험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봉고차, 대학의 기숙사, 심지어는 공원의 야외음악당 무대, 철도역사의 복도를 숙소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처와 저에게 어떤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낮에도 길거리를 걸을 수 없으며, 집의 담장은 전기펜스로 둘러야하는 요하네스버그의 치안상황을 경험했으므로 치안은 몸의 안전뿐만 아니라 마음의 안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결론은 30여 년간 30여회 정도 일본을 드나든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출장, 개인적인 여행, 전시를 위한 답사 방문 등 그 이유는 각각이었지만 저는 항상 일본에서 내 나라처럼 안심이었고 자유로웠습니다.

 

일본의 성씨, '金氏'

 

저는 지난해, 헤이리와의 일본작가들의 교류전시를 위해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長崎縣의 사세보시를 두 번 방문했습니다.

 

지난해 7월 4일, 아버지에 이어 도예작품을 하고 있는 다테이 씨의 안내로 하사미의 부친인 일본전통공예 도공의 지스케 가마에 들렸습니다. 평생 도예작업을 해 오신 장인의 고집이 작업실과 장작 가마 그리고 전시실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습니다.

 

 

저의 눈길을 끈 것은 그분의 작업실 옆 사무실 벽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두 개의 선돌 사진은 이 지역에 도예 가마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도미나가 지스케의 묘라고 했습니다. 1598년 정유재란이 종식된 58년 뒤인 1656년에 80세로 사망한 이 사람은 조선의 도공을 데려다 관리 감독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세보와 하사미는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 아리타야끼(有田燒)의 아리타와 지척에 있습니다. 아리타야기는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조선인 도공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저는 다테이 부친에게 안내를 부탁드려서 도미나가 지스케의 묘를 둘러보았습니다. 도미나가의 일족이 묻힌 그 묘역을 되돌아 나오면서 저는 아리타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도 우리 선조들의 영혼이 가득함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지난해 12월 '2010한일교류전' 개막식 참가를 위해 다시 사세보시를 방문했습니다. 전시 개막 후 양국의 작품을 소개하는 일정을 진행하는 중에 일본측 한 작가의 작품에 붙은 이름에 주목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가네우지 타키코', 한자표기로는 '金氏 多喜子'였습니다. 저는 그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선조는 조선에서 왔습니까?"

"그렇게 들었습니다."

 

조선에서 온 그녀의 먼 조상이 새로운 성씨의 필요성을 느꼈고 당시 한국에서의 자신의 성인 '김'을 남이 부르던 대로 '김씨'로 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렇듯 일본은 많은 부분 한국입니다.

 

거대한 지진재해 앞에 나는 무엇인가

 

그 일본이 지금 통곡하고 있습니다. 지진해일은 집과 가족을 쓸어갔고 여진은 살아남은 자를 더욱 공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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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어젯밤 모티프원에 모인 사람들도 모두 일본인이 겪은 쓰나미의 공포를 자신의 다른 경험에 빗대어 이해하려고 애썼습니다.

 

"몇 년 전 남동생의 시장 가게에 들렀을 때, 시장에 화재가 났습니다. 저는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자욱한 그 시장을 무사히 빠져나왔고 한참 뒤 시꺼멓게 변한 동생의 가게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후 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삶의 의욕은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그 무기력의 터널을 빠져나오는데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했고 몇 년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일본은 여진이 완전히 멎고 지진의 물리적 피해가 복구된다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인 패닉 상태가 더 오랫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짙습니다."

 

통역사로 일하고 계신 오향래 선생님은 물리적 복구, 그 이후를 더욱 염려했습니다.

 

마침 안부를 여쭌 한분으로 부터는 안전하다는 메일이 왔습니다.

 

이안수 선생님,

 

안녕하세요, Odawara입니다. 일본의 지진·해일는 정보로 아시는 바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진 재해로부터 3일이 지났습니다만, 일본의 보도는 지진 재해 일색입니다.

 

지진 재해의 지역은 SASEBO로부터 먼 곳이었으므로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일본이나 세계 각지로부터 구원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은 이 지진 재해로 무엇이 가능한 것인가'라고 일본인은 고뇌하고 있습니다.

 

아마 사망자는 10, 000명은 넘는다고 보도에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더 문제인 것은 원자력의 사고입니다. 무사히 해결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교류전은 개최할 방향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문제가 있으면 또 연락을 하겠습니다.

 

큰 불행 앞에서는 모두가 구원舊怨도 잊히나 봅니다. 현재, 그들의 비극 극복을 위한 물질적, 정신적 지원에 한국인의 누구도 임진왜란, 일제강점, 독도 영유권분쟁을 문제 삼는 이가 없습니다. 진도 9.0, 상상할 수 있는 가상보다도 더 참담한 자연재해 앞에서 너와 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복구에 힘을 보태고 정신적인 공황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보태는 길 밖에요.

 

오다와라 씨는 '거대한 지진재해 앞에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습니다.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에 큰 의문을 던진 이번 재해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오직 한 가지, 자연 앞에 겸손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가이아(Gaea 대지의 여신, 거대한 유기체로의 지구)가 몸을 뒤척이지 않도록 '문명화'라는 이름의 이기심으로 그녀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화산폭발과 지진, 그리고 지진해일에 저항할 수 있는 피존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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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일본, #지진, #쓰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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