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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콩이 수많은 인류를 먹여살리는 콩의 원종이라는 설과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라는 설이 있다.
 돌콩이 수많은 인류를 먹여살리는 콩의 원종이라는 설과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라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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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콩의 95%는 다 수입된 콩이란다. 오늘 저녁 마트에서 산 콩나물이나 두부는 대부분 유전자 조작된 콩으로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확인할 길도 없다. 종자를 지키지 못해서 토종 콩을 구하려면 미국에 가서 구하는 편이 더 빠르다는 말도 있다. 이게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지난 6월 미국 농무부는 미국이 가자고 있는 한반도 원산의 유전자원(종자)을 돌려주겠다고 농촌진흥청과 합의하였다. 돌려주겠다고 한 종자 가운데는 콩 901점, 돌콩 351점 등 콩류가 가장 많았다. "미국이 1901년부터 1976년 사이에 한국에서 수집해 간 재래종 콩은 무려 5496점이나 된다. 미국은 이것으로 다수의 우량품종을 육성해 다시 한국에 역수출하고 또 세계 각국에 수출해서 콩 수출 세계 1위의 나라가 되었다."(안완식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종자>)-<강우근의 들꽃이야기>-'돌콩'중에서

새콩, 돌콩, 여우콩, 새팥, 여우팥 등 여러 종류의 야생콩 꽃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피어나 길을 걷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콩꽃들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에서 쉽게 잘 자란다. 돌콩도 마찬가지. 서울 시내 한복판 가로수 아래서도 볼 수 있고, 다소 한적한 길가나 자투리 땅, 산기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돌콩이 오늘날 수많은 인류의 중요한 먹을거리인 콩의 원종이고, 어디서나 흔하게 돌콩이 자라는 한반도가 원산지라는 설이 있다.

<강우근의 들꽃이야기>겉그림
 <강우근의 들꽃이야기>겉그림
ⓒ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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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한 식물의 재배종과 야생종 그 중간종이 가장 많은 곳이 그 식물의 원산지라고 하는데, 이런 점에서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콩들이 자라는 나라가 거의 없다고 하니 콩의 원산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콩을 좋아하는지라 일 년 내내 밥에 콩을 넣어 먹는다. 콩나물과 두부는 반찬이 마땅하지 않을 때, 그리고 주머니가 얄팍할 때 가장 만만하게(?) 살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콩요리는 유부초밥과 숙주나물이다. 우리 식탁에 없으면 안 될 된장과 간장도 콩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가장 많이 먹는 것은 이 콩(콩으로 만든 제품) 아닐까. 우리 가족의 건강 몇 퍼센트는 이처럼 즐겨 먹는 콩 덕분이려니, 이런 콩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턱없이 비싸지면 어쩌나. 그래서 이 부분은 특별하게 와 닿았다. 산기슭이나 길가에서 만나면 나도 모르게 빙긋 웃게 했던, 보는 것만으로도 예쁜 콩 꽃들이 피어있던 곳들을 떠올리며.

<강우근의 들꽃이야기>(메이데이 펴냄)는 북한산 자락, '텃밭과 빈터가 있는 아파트 동네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사계절 자연놀이를 하며 어린이책 그림도 그리고, 아이들과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노는 이야기들을 쓰고 그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저자(책 프로필 참고)가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풀과 나무에 대해 쓴 생태 에세이집이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위에 인용한 돌콩 이야기처럼 꽃과 나무에 대한 지식이나 소소한 이야기들 외에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봄맞이꽃이 로제트 잎으로 혹한의 겨울을 견디고 꽃피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입춘전에 찍은 것이다.
 봄맞이꽃이 로제트 잎으로 혹한의 겨울을 견디고 꽃피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입춘전에 찍은 것이다.
ⓒ 그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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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 잎으로 겨울을 난 광대나물이 입춘을 앞두고 꽃망울을 맺었다.
 로제트 잎으로 겨울을 난 광대나물이 입춘을 앞두고 꽃망울을 맺었다.
ⓒ 그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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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해살이풀이 겨울을 날 때는 뿌리에서 바로 자라 나온 잎이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추위를 피하고 체온을 유지한다. 그 모습이 꼭 바닥에 깔아놓은 방석 같아서 '방석식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추위에 빨갛게 얼어버린 아이들 볼처럼 잎사귀들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데, 이런 모습이 꼭 장미꽃이 핀 것 같아서 '로제트식물'이라고도 한다.-<강우근의 들꽃이야기>-'달맞이꽃'중에서

두해살이풀인 봄맞이꽃과 광대나물은 지난 가을에 싹을 틔우고 자란 잎으로 겨울을 나는 방석식물(로제트식물, 이하 방석식물로 표기)이다. 얼었던 눈이 녹고 햇살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것을 알아차린 광대나물은 다른 꽃들이 피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고자 재빨리 꽃망울을 맺었다. 봄맞이꽃도 머지않아 꽃대를 밀어 올려 예쁘고 하얀 꽃을 피울 것이다.

꽃다지, 꽃마리, 방가지똥, 뽀리뱅이(박주가리), 민들레, 개망초, 망초, 달맞이꽃, 지칭개, 별꽃, 점나도나물 등도 가을에 싹을 틔운 잎으로 혹한의 겨울을 견디는 방석식물들이다. 이들뿐이랴. 저 여린 잎으로 어떻게 겨울을 날까 싶을 정도로 작고 여린 풀일지라도 꽃 설명에 '두해살이'이라고 되어 있는 풀들 중에는 이 방석식물들이 많다.

방석식물들의 생존전략은 다른 식물들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꽃이 많이 피면 생존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생물들이 겨울잠을 자고 잎을 떨어뜨리며 쉬기 시작하는 가을에 이들 방석식물들은 꽃피울 봄날을 기다리며 혹한의 겨울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

대표 방석식물인 개망초와 뽀리뱅이가 담밑에서 여린 잎으로 혹한의 겨울을 나고 있다.2011.2 경기도 고양시
 대표 방석식물인 개망초와 뽀리뱅이가 담밑에서 여린 잎으로 혹한의 겨울을 나고 있다.2011.2 경기도 고양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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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석식물들의 이런 속성을 몰랐을 때는 남들 다 쉬기 시작하는 가을에 생뚱맞게(?) 싹을 틔워 잎을 키우는 것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혈기만 앞세우는 사람들처럼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사리 분별없고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로 보이기도 했다. 애써 싹을 틔워 자라봤자 겨울에 얼어 죽을 것, 아꼈다가 봄에 꽃을 피우지 않고 왜 저럴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낄 수 있다'고, 방석식물들의 이런 생존전략을 알고 난 후 오히려 이들의 존재가 적지 않은 위로와 희망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곤 한다. 그래서 꽃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겨울에도 풀꽃들이 피었던 자투리땅이나 건물 옆을 지날 때는 이들 방석식물들을 찾아 눈이 자꾸 땅으로 머물곤 한다. 방석식물들의 꿋꿋함은 종종 찬바람 속에서 노점을 하는 사람들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 가시(도꼬마리 열매의)를 본 따서 '찍찍이'라 불리는 매직테이프를 만들어냈다. 신발이나 옷에 쓰는 '찍찍이' 원조는 도꼬마리 가시였던 것이다.…큰 도꼬마리나 도꼬마리 열매를 까 보면 크기가 다른 씨앗 두 개가 사이좋게 들어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씨앗이 서로 하는 역할이 다르다. 크기가 큰 씨앗은 이듬해 바로 싹을 틔우지만 크기가 작은 씨앗은 바로 싹 틔우지 않고 더 나은 조건이 될 때까지 때를 기다린다. 도꼬마리 뿐 아니라 많은 풀씨들이 이처럼 역할이 다른 씨앗들을 만들어 낸다.…땅속은 온통 잠자는 씨앗들로 가득하다. 겨울바람에 뒹구는 풀씨가 대책 없이 굴러다니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도꼬마리 씨 수명은 16년쯤 된다니까 적어도 10년쯤은 내다보고 준비한 것들이다. 작은 풀씨 하나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강우근 들꽃이야기>-'큰도꼬마리'중에서

이 부분도 인상 깊게 읽었다. 도꼬마리뿐이랴. 도꼬마리처럼 열매 하나에 씨앗 두 개가 들어있는 경우 두 개의 씨앗 중 하나만 싹을 틔우는데, 다 자라 열매를 맺기 전에 꺾이거나 뽑히는 위기에 처하면 남아 있던 씨앗이 재빨리 싹을 틔운단다. 형의 빈자리를 동생이 대신하는 것처럼 말이다.

풀꽃의 씨앗은 어떻게 함께 자란 형제 씨앗의 위기를 쉽게 알아챌 수 있을까? 그저 신기하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풀과 나무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어김없이 작은 풀꽃들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늘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우리와 늘 함께 살아가지만 관심이 없어 미처 보지 못했던 풀과 나무를 가까이 느끼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큰개불알풀은 양지에서는 1월에도 꽃을 피운다. 분홍색 꽃이 피는 개불알풀이 우리 토종이고 이처럼 남색꽃을 피우는 큰개불알풀은 외래종이다. (3월 6일 김제)
 큰개불알풀은 양지에서는 1월에도 꽃을 피운다. 분홍색 꽃이 피는 개불알풀이 우리 토종이고 이처럼 남색꽃을 피우는 큰개불알풀은 외래종이다. (3월 6일 김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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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환경·생태·녹색이라는 딱지가 앞에 붙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그걸 붙여야 일이 되나 보다. 작은 장난감에서부터 먹을거리·가전제품·아파트까지 다 친환경을 내세운다. 그런데 환경·생태와 관계가 멀어 보이는 것일수록 환경·생태라는 간판의 크기가 더 큰 것 같다.생태도시를 만든다며 아름드리 가로수를 베어낸다. 신도시를 만들고 도시를 재개발하는 것에도 환경·생태가 붙고, 산을 깎고 강을 파헤치는 것도 다 녹색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작은 물건에서부터 큰 사업에까지 누구나 환경·생태를 갖다 붙이고 녹색을 얘기하니, 이제 앞에 붙은 간판만 봐 가지고는 그게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떤 환경·생태인지를 따져봐야 할 때가 되었다. 도시의 환경·생태를 보는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숲이나 개천을 건물 짓듯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숲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것인지, 포클레인으로 길게 파내고 물만 흘려보내면 개울이 되는 것인지, 잡초는 무조건 뽑아야 하는 것인지….-<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머리말 중에서

이 부분도 흘려 읽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일부 특성만으로 위해식물로 몰아 생태적인 요소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뽑아내자는 식의 환경캠페인, 치적 평가가 엇갈리는 역대 대통령이 심었다는 어느 인사의 말 한마디에 그에 잘 보이려고 멀쩡하게 잘 자라는 나무를 단숨에 싹둑 잘라냈다는 일화 등 본문에도 이처럼 입바른 소리들이 많다.

▲베사메무초란 노래에 등장하는 리라꽃은 수수꽃다리? ▲옛날 사람들은 붉나무에서 소금을 구했다?▲'많이 먹으면 뱀으로 변한다. 죽는다'는 소문 때문에 옆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뱀딸기가 죽을병을 고치는 약? ▲개나리를 옛날에는 튀밥꽃이라 불렀다? ▲옛날사람들이 짚신이 닳아 구멍이 나면 신갈나무 잎사귀를 짚신 바닥에 깔았던지라 신갈나무다? ▲잎의 매운맛이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주기에 일본사람들은 여뀌 잎으로 생선을 싸 먹는다?

어떤 풀과 나무가 어떤 생태적 특성으로 자라는지, 한포기 풀이 언제 우리나라에 어떻게 들어와 어떤 대접을 받고 자라는지,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등 한포기 풀과 한그루 나무에 대한 기본 상식에 이처럼 소소하고 재미있는 읽을거리 들을 녹여 들려주고 있어서 이 책은 그냥 가볍게 읽어도 좋은 그런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꽃과 나무는 대략 100종. 기관지인 <노동자의 힘>에 연재했던 글들이기 때문일까. 노동자, 서민,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점상 등 약자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품게 하는 그런 글들이 유독 많다. 그래서 따뜻하다.

덧붙이는 글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강우근 |메이데이 |2010-11-13 |15,000원



태그:#풀과 나무, #도꼬마리, #돌콩, #인문교양,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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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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