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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3월 중에 섬진강 상류 쪽으로 1박2일 일정으로 가려고 하는데 추천 좀 하라는 것이다. 내 고향이 전주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내가 평소에 섬진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을 아는지라 태평양 건너 캐나다까지 물어온 것이다.

 

사실 주변 사람들이 어데 갈만한 곳을 진지하게 물어오는 경우 답하기가 쉽지 않다. 똑같은 풍경을 보아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른 뿐 아니라, 거기에 사족처럼 붙이는 개인의 감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소에 이곳저곳을 함께 돌아다녔던 선배이기에 냉큼 몇 곳을 얘기했더니, 전화상으로 말하지 말고 글로 작성해서 <오마이뉴스>에 올려 놓으란다. 그러면 참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오마이뉴스>에 올린다고 하면 좀 더 진중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노린 것이리라.

 

개인적인 취향으로 섬진강을 떠올릴 때, 제 일감은 역시 곡성 가정역부터 흘러가서 보성강과 합류하는 압록을 거쳐 구례구역을 지나 사성암에 이르는 길이다. 가정역사 밑의 자갈자갈한 섬진강 물에 발을 담그면서 시작되는 여정이 압록에 이르러 진국으로 우러나는 참게매운탕으로 속을 채운 후, 사성암에 올라 내려다 보는 섬진강물의 유려한 곡선에 마음 하나 던져 놓고 구례벌판 너머 지리산으로 눈길을 주고 받고 있노라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몇 가지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애초에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단 이곳은 긴 섬진강의 가운데 토막 중에서도 하류에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에 선배가 원하는 상류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버릴 뿐더러, 선배와도 몇 차례 다녀온 곳이기 때문에 선배로서도 굳이 나에게 묻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또한 상류라고는 하지만 발원지인 천상데미 아래 데미샘부터 추천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특별한 목적이 아닌 한 음습한 숲길을 힘들게 올라 데미샘을 본다고 하더라도 만족감을 채우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당일치기나 좀 더 장기답사면 모를까 1박2일의 일정도 그곳 주변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면 어디가 좋을까? 봄볕과 교감하며 자글자글 흐르는 섬진강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섬진강이 전북 임실군의 강진과 덕치사이를 흘러가는 구간이다. 여기에다 옥정호 하나 얹어 놓으면 1박2일 여정으로는 남부럽지 않을 터였다. 이렇게 해서 일단 포인트를 잡아보면, 옥정호부터 시작해서 덕치초등학교를 지나 회문산, 그리고 천담, 구담계곡 구간이 될 터였다. 여기에 풍물을 좋아하는 선배의 개인적인 특성을 고려해서 바로 옆 강진의 임실필봉농악 전수관을 집어넣으면 될 터이다.

 

 

그럼 다시 하나씩 찾아가보자. 우선, 섬진강댐의 건설로 만들어진 옥정호는 주변을 드라이브 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코스지만 그냥 차로만 쑥 지나가기도 아까운 곳이다. 그러니 좀 느긋한 마음으로 옥정호를 끼고 섬진강댐과 맞은 편(전주에서 가다보면 옥정호 초입에서 좌측)에 있는 국사봉에 올라가 보자. 차를 주차하고 가벼운 걸음으로 오를 수 있는 곳으로, 십여 분 오르다 보면 국사봉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은 옥정호 너른 물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붕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붕어섬이라고도 부르는, 외앗날섬을 바라보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새벽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일출뿐 아니라 봄·가을로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환상적인 군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십여 분의 다리품도 아까운 사람들은 주차장 인근에 있는 외앗날망이라는 곳에서 외앗날섬을 조망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외앗날섬에 집 한 채가 있고 노부부가 살고 계셨는데,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옥정호 밑으로 십여 분 달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덕치초등학교가 나온다.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 시인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운동장 한켠에 일렬로 늘어선 20여 그루의 왕벚꽃이 그야말로 장관인 곳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왕벚꽃을 보기 위해서는 4월 중순~5월 초순 사이에 찾아가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섬진강 참 좋은 학교'란 타이틀이 어울리는 덕치초등학교는 벚꽃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학교이다. 꼭 들러보시길 권한다. 눈으로만 봐야 꽃인가? 가끔은 상상의 꽃도 예쁘게 피어날 때가 있는 법이다.
 

덕치초등학교를 거쳐 바로 밑 작은 마을을 지나면 순창 가는 오르막 고갯길이 시작되기 전에 작은 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회문산이고 왼쪽으로 가면 천담마을로 갈 수 있는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회문산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이 대학시절 읽은 소설 <남부군>을 통해서 이듯이, 이곳은 빨치산의 근거지로 유명했던 산이며,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의 근거지이기도 했던 산으로,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는 꽤 영험한 산으로 통하고 있는 산이다. 뭔가 큰 꿈을 품은 사람들은 한번 들어가서 정기를 받아볼 만 하지 않을까 싶다.

 

작은 사거리에서 좌회전 해서 마을길로 들어가다 보면 섬진강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차를 두고 걸어볼 일이다. 섬진강은 뭐니뭐니해도 낮은 물길이 자글자글 흐르며 들려주는 자갈자갈한 소리를 듣는 맛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곳은 걸을 일이다.

 

섬진강이 걸어주는 이야기에 하나씩 대꾸하며 걷다 보면 징검다리도 만나고, 누군가의 비석이 마음을 뭉클하게 잡아끌기도 한다. 물소리와 주고받는 소 울음소리라도 듣는다면 발품 값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러다 보면 강물 따라 천담마을까지 이어진다.
 

천담과 구담은 바로 이웃해 있는 마을로 천담마을을 통해 그 길의 끝 동네인 구담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구담마을은 아름다운 영상으로 유명했던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촬영한 곳으로 유명하다.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아름다운 나무그늘 밑에서 섬진강을 내려다 보는 것도 아련한 마음의 일렁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 캐나다에 와 있다 보니 사진자료가 충분치 못해 읽는 이에게 길 떠날 마음의 일렁임을 주었는지 장담할 수가 없다. 부족한 여백은 직접 눈과 마음으로 채우시길 바란다. 그래도 출발해 보자. 서울서 옥정호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호남고속도로 전주IC나 서전주IC 혹은 남전주IC로 빠져서 모악산을 바라보고 달리는 전주 외곽도로를 타고 가다가 구이면에서 순창 방향의 2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된다.

 

** 1박을 하기 위한 숙소는 옥정호 주변에 있는 숙박시설이나 회문산 자연휴양림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국사봉을 새벽에 오를 계획이라면 옥정호 인근에서 숙박을 하면 될 듯싶다. 또한 여행에서 먹을거리가 빠질 수 없다. 고기와 술을 좋아하는 선배를 감안하면, 요즘 구제역의 여파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옥정호에서 정읍 쪽으로 가다보면 산외면에 소고기를 파는 대형식당들이 모여 있다. 근동뿐 아니라 서울까지도 입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들러 소고기를 저렴하고 맛나게 먹고 가는 곳이다.


태그:#섬진강, #옥정호, #구담마을, #덕치초등학교, #국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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