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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을 따라 걷는 것은 무언가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 색다름이란 평소에는 일반 도로만 걷는 데 따른 생소함일 수도 있고, 또는 수십 년 동안 기차가 왔다 갔다 하면서 철길에 녹아든 소시민들의 애환이 피부로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정체가 무엇이든 이와 같은 색다름을 즐기고자 많은 사람들은 철길따라 걷는 낭만을 한번쯤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실행에 옮기기가 여간 쉬운 게 아니라서, 보통의 경우에는 괜히 철길로 들어섰다 관리인의 호통에 쫓겨나기 일쑤다. 이렇게 철길따라 걷는 여행의 기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복선전철화 완료로 인해 2005년 이후로 폐선된 중앙선 철길은 가슴 속에 묻어둔 낭만을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선 철길 여행의 출발점이다.
▲ 새 팔당역 건물 중앙선 철길 여행의 출발점이다.
ⓒ 한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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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철길 여행은 보통 팔당역에서 시작해 능내역에서 마무리된다. 사람들은 철길따라 걸으면서 과거의 낭만에 흠뻑 취하게 된다. 이렇게 철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낭만은 사라지고 지루함이 그 자리를 대체할 법 하지만, 중앙선 철길 여행은 그러한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꼽자면, 일단 철길 바로 옆에는 한강이 수놓은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 평소에는 철길따라 걷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도 가끔씩 시선을 멀리 두면서 주변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특히 중간중간에 놓여져 있는 다산 정약용의 여러 시들은 이런 신선놀음을 더욱 극대화해준다.

중앙선 철길 여행이 특별한 두 번째 이유는, 철길따라 걸으면서 역사 배움의 장 또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옛 간이역, 어느 세도가의 위세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신도비, 다산 정약용의 애민정신,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박물관까지 이 모든 것들이 철길 여행객들의 시선을 유혹하고 있다. 낭만에 지치면 주변 절경을 즐기고, 또 주변 절경에 지치면 역사를 공부하면서 철길을 한 발 한 발 내딛게 되니, 중앙선 철길 여행은 카멜레온과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시시각각 변하면서 사람들의 방문을 맞이하고 있다.

중앙선 철길따라 떠나는 역사여행의 기적을 울려보자.

지금은 역사의 흐름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다.
▲ 기적 소리가 울렸을 중앙선 철길 지금은 역사의 흐름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다.
ⓒ 한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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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남양주역사박물관

남양주 지역의 역사 이해에 도움을 준다.
▲ 남양주역사박물관 남양주 지역의 역사 이해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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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역 바로 옆에 있으며, 앞으로 있을 역사여행의 사전지식을 챙겨가는 데 그만인 곳이다. 남양주의 역사와 생활상을 재구성한 역사문화실, 겨레의 기록문화가 숨쉬는 금석문실, 기증문화재실 등이 있다. 특히 남양주에 산재한 왕릉의 구조 이해에 많은 자료를 제공해 준다. 한자교실, 왕릉지도 만들기, 금석문 탁본도감 만들기 등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또한 다채롭다.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2층의 쉼터에서 차 한 잔 마시며 한강의 절경을 즐겨보는 것 또한 추천할 만하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 ~ 오후 6시이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날 · 추석, 입장료는 무료.

② 구 팔당역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를 취하고 있다.
▲ 구 팔당역 건물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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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제295호. 남양주역사박물관을 지나친 채 철길 옆에 나있는 인도를 따라 걷다가 철조망 너머로 볼 수 있는 간이역 건물이다. 1939년에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게 플랫폼에 노선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一' 자형의 장방형 역사로서 희소성이 있다. 전에는 중앙선 폐선 후의 역 건물을 가까이서 자유롭게 볼 수 있었으나, 2008년 2월에 한 사진동호회 회원이 역 건물을 찍고자 무리하게 화차 위에 올라섰다가 감전으로 중화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현재는 그 출입이 통제된 상태이다. 따라서 지금은 철조망 너머로 멀리서밖에 볼 수 없으나, 코레일 측에서 구 팔당역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조치를 머잖아 취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③ 한확선생 신도비

한확은 여걸 인수대비의 부친되는 사람이다.
▲ 한확선생 신도비 한확은 여걸 인수대비의 부친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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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중앙선 철길을 따라 걷다가 능내역 못미친 곳에 한 사대부의 무덤을 멀리서 볼 수 있는데, 바로 인수대비의 부친되는 사람인 한확의 무덤이다. 신도비는 무덤 아래에 있으며, 비문은 임사홍이 지었다. 누이와 여동생 모두가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었던 한확은 세종 시절 막강한 권세를 누린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다. 더욱이 사돈인 수양대군이 훗날 세조로서 왕위에 오르고 자기 딸은 세자빈이 되자, 그의 세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한확이 죽은 후에도 딸 인수대비가 성종의 뒤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니 그 세도는 사후에도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도가의 위세를 거침없이 보여주려는 듯 신도비 이수의 조각은 지극히 힘차면서도 화려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④ 다산유적지

한 시대의 위대한 개혁가였던 그는 현재 생가 뒷동산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 정약용 묘소 한 시대의 위대한 개혁가였던 그는 현재 생가 뒷동산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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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기념물 제7호. 능내역 못미친 곳에 우측으로 빠져있는 길을 통해 15분 쯤 걸으면 다산유적지에 닿을 수 있다. 유적지 경내에는 다산 정약용 묘소, 생가 여유당, 사당 문도사, 다산기념관 등이 있어서 관람객들로 하여금 옛 다산의 숨결을 느끼게 해 준다. 현재의 여유당은 홍수로 떠내려간 것을 1975년에 복원한 것이며, 묘소는 여유당 뒷동산에 검소히 마련되어 있다. 다산기념관 내부에는 거중기 모형 및 다산의 각종 서적들을 전시하고 있어서 다산의 사상 이해에 도움을 준다. 유적지 경내와 주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다산 관련 조형물들이 너무 번잡한 것 아니냐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겠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 ~ 오후 6시이며, 입장료는 무료.

⑤ 실학박물관

이익, 박제가, 정약용, 정약전 등 당대 실학자들에 대한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 실학박물관 이익, 박제가, 정약용, 정약전 등 당대 실학자들에 대한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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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유적지 바로 옆에 있으며, 다산 뿐만 아니라 여타 실학자들의 사상 또한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배움의 장이다. 주요 전시실은 2층에 있으며, 제1전시실은 '실학의 형성', 제2전시실은 '실학의 전개', 제3전시실은 '천문과 지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수광, 김육, 이익, 박지원, 박제가, 이중환 등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었을 법한 실학자들의 유물 및 관련 사상을 비교해가면서 볼 수 있다.

복제품이 다소 많은 것이 흠이기는 하나, 컴퓨터를 통해 각 저서의 원문과 번역본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공간, 어린이들의 시각적 흥미를 끄는 데 부족함이 없는 각종 멀티미디어 자료 등은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도 남는다. 전시실을 다 둘러본 뒤 2층의 미니 도서관에서 실학 관련 책을 읽으며 차 한 잔 마시는 휴식 또한 누릴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 ~ 오후 6시이며, 연중무휴, 입장료는 무료.

⑥ 구 능내역

2008년 폐역 후 현재는 적막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다.
▲ 구 능내역 건물 2008년 폐역 후 현재는 적막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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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철길 여행의 종점이라 할 수 있는 능내역은 1956년에 영업을 시작했으며, 2008년에 폐쇄되었다. 비록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구 팔당역과는 달리 역 경내를 돌아다니는 데 어떠한 제재도 없다는 점에서 간이역의 향수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녹슨 표지판과 외로이 남아 있는 승객용 벤치, 그리고 몇 년도인지도 모를 정도로 지극히 멀리 떠나보낸 과거의 세월을 아직도 보여주고 있는 역 건물 내부의 달력 등은 여행객들로 하여금 낭만을 넘어 떠나보낸 과거에 대한 슬픔이라는 감정을 북돋케 한다.

최근 중앙선 철길을 자전거 도로화(化)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철길을 철거하지는 않되 해당 부지를 아스콘으로 포장해서 자전거도로를 만든단다. 이미 2월 25일에 기공식을 가졌으며, 9월 개통을 목적으로 사업 추진 중에 있다.

자전거도로로 탈바꿈한다면 이 길은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분명 지금과는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공사 완료 후에는 이 길이 이동하는 데 더 편리해질까. 분명 지금처럼 발 아프게 자갈밭을 걸어야 하는 수고는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다면 철길따라 걷는 낭만이 공사 완료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까.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주변 절경이야 변할 리 없겠지만, 철길을 따라 걸으면서 절경을 즐기는 것과 자전거를 타면서 절경을 즐기는 것은 분명 그 분위기가 서로 다를 것이다.

철길을 선호하느냐, 아니면 자전거도로를 선호하느냐의 문제는 어느 쪽이 더 좋다 나쁘다 할 성질은 못 된다. 그러나 만약 전자를 선호하는 행자(行者)들에게 있어서는 이제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현재의 낭만이 반년 후에는 그저 지워져 버린 시간의 흔적으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를테니···.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입실론'이라는 필명으로 네이버에 '대중교통으로 떠나는 문화역사여행'이라는 인기없는 블로그를 운영 중에 있다.



태그:#중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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