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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화요일, 또 일제고사가 치러진다. 이 시험은 시도교육감협의회주최로 초등학교 4,5학년과 중학교 1,2학년 대상 교과학습진단평가이다. 시험을 보는 교과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5개 교과이다.
 
또 하나는 초등학교 3학년 대상으로 보는 기초학력평가이다. 이 시험은 작년초 시험주체도 분명하지 않고 시험 과목도 읽기, 쓰기, 셈하기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국어, 수학 교과학습진단평가로 바뀌었다. (정체불명의 초3평가, 누구의 작품인가?) 올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최로 바뀌었으니 2008년까지 10월에 보던 3학년 기초학력평가를 다시 부활시킨 셈이다.

 

이 시험에 대해 진보교육감이 있는 강원, 광주, 경기, 전남, 전북 교육청은 시험 자체를 보지 않거나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서울 교육청은 국어, 수학만 보고 나머지 교과는 학교별로 기간을 정해 보라고 했다가, 뒤늦게 교사 선택권을 주었다. 그래서 시험을 온전히 보는 교육청은 보수교육감이 있는 나머지 지역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시험 - 교과부 책임 전가

 

전국적인 진단평가는 2008년에 처음 생겼다. 전 공정택 서울교육감이 교육감협의회의장으로 있을 때에 시작했지만 이름은 국가수준 교과학습 진단평가였다. 그래서 10월에 보는 초3 국가수준 기초학력평가와 초6, 중3, 고3 대상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까지 이어지는 일제고사의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그러다 2009년 12월에 교과부가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진단평가 실시권을 이양했다. 진단 - 성취도 평가의 양날개를 고수하던 교과부가 평가권을 넘긴 것은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책임을 미뤘다는 분석도 나온다. (2% 부족한 곽노현 교육감의 '공정택표 일제고사'청산)

 

 

 

진단평가는 학교나 학급 담임이 할 일을 빼앗고, 학생들을 제대로 진단할 수도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통 학기초에는 학급배정을 받으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받게 되고, 이전 담임이 새로운 담임에게 작년 지도 상황, 올해 신경 쓸 부분에 대해 알려준다. 학습이나 가정환경에 신경을 써야 할 아이들은 꼭 알려준다. 교사 스스로도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 등을 이용해 보통 한 달간은 아이들을 파악한다. 아이들도 역시 교사를 여러 가지로 시험하는데, 흔히 간보기라고 부른다.

 

이 중 시험지로 보는 진단평가는 진단활동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업 초기에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부족한 점을 채워가면서 수업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진단평가만 볼 뿐 후속대책은 하나도 없고 고스란히 담임만 발을 동동 굴러야 하고, 정확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작년에 5학년 담임을 했는데, 이 시험을 본 결과 우리 반에는 국어, 사회, 과학, 영어에서 4명의 학습부진아가 생겼다. 이 중 두 과목 이상에서 걸린 아이는 2명이다. 3월 말에 결과가 나왔으니 이미 수업을 하면서 미리 파악한 아이도 있었고 전혀 의외인 아이들도 있었다.

 

일단 아이들이 부족한 부분을 알아서 가르쳐야겠는데, 시험지는 교무실에 걷어서 다 갖다놓았으니 쓸모가 없다. 4학년 시험을 본 것이니 4학년 책을 봐야 하는데 학교를 찾아봐도 교육과정이 바뀌어서 다 버리고, 이전에 무슨 내용을 제대로 배웠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료 찾는 것만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아이는 가정에서 보살핌을 잘 못받는 아이라 서둘러 급식지원이며 돌봄교실에 넣는 것이 시급했다.

 

시험 보면 땡, 뒷처리는 모두 담임 일

 

이상한 것은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아이가 국어부진아로 걸린 것이다. 문제에서 답을 찾는 요령이 부족한 것인지 내용을 잘 이해 못하는 것인지 알아보고 책 읽는 것을 지도했다. 또 영어는 수업시간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은데 시험에는 걸리지 않았다.

 

시험보는 과정을 보니 듣기 평가가 많고 듣기 지문이 쉬운 편이었다. 또 잘 모르더라도 대부분 아이들이 답을 듣고 일제히 몸을 숙이기 때문에 담임인 내가 지문을 듣지 않고도 답이 무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영어시험은 눈치만 있으면 통과한다는 말이 진짜라는 걸 알았다.

 

수학은 시간마다 단원마다 확인을 하면 어려워하는데 부진아로 판정된 아이는 전혀 없었다. 점수 1점 차이로 부진아냐 아니냐가 갈리니 정확하지도 않은 것이다. 부진아로 판정된 아이를 비롯해 이 과정에 교과부나 교육청, 평가원을 봐도 쓸만한 자료는 없어서 지도를 할 때마다 늘 담임이 새로 뭔가를 만들거나 신경을 써야 했다. 어찌보면 담임만큼 누가 아이들의 상태를 자세히 알아서 가르치겠는가?

 

하지만 수업이 3시에나 끝나고 그 뒤에는 해야 할 공문, 각종 조사가 쌓여 있고 다음 날 쓸 수업자료도 신경써야 하는데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다른 반 교사는 부진학생들이 수업시간에는 집중하지 않고 방과후에 담임과 하는 보충수업을 더 좋아해서 힘들다고 푸념했다. 영어는 전담교사가 가르친다고 해서 한숨 돌렸다. 이렇게 결국 뒷처리는 모두 담임이나 가르치는 교사 몫인데, 왜 교육감들은 진단평가만 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뒤인데 말이다.

 

특히 안타까운 점은 교과학습 진단평가에서 부진아로 걸린 아이들은 명단이 나오니까 아무래도 신경을 쓰게 되는데, 시험에 걸리지 않은 부진아들은 더 신경을 쓰기가 어려웠다. 단원평가나 수행평가 후에 날을 잡아서 방과후에 복습을 시키고 이해 못한 것만 겨우 가르치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점을 둔 아이는 아무래도 가정의 돌봄이 부족한 아이였다. 시험결과와 상관없이 아이에게 부족한 문화적 부분이나 상식, 자기 관리, 친구관계를 1년간 꾸준히 신경써야 했다. 그 결과 학기말에는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나 학습 능력도 다소 좋아졌지만 수업시간에 흥미가 없기는 여전했다.

 

선생님,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진단평가는 전국에서 같은 시험지로 한날 한시에 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교사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진단을 할 수 있고, 지도 방법이나 지원에 대해서 신경을 써달라는 것이 교사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런데도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는 현장의 의견수렴이나 작년 방법에 대한 개선도 없이 그대로 진단평가를 강행하고 있다.

 

게다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초등학생들의 점심시간을 미뤄서 아이들을 배고픔에 떨게 하고 있다. 작년 초등 4,5학년의 진단평가 시험일정표를 보면 5개 교과를 쉬지 않고 보느라고 점심시간이 미뤄졌다. (진단평가, 초등 5학년은 점심 굶고 봐라?)

 

그래서 4학년은 12시 40분, 5학년은 1시에나 시험이 끝난다. 5학년의 경우 시험시간만도 200분이고 준비와 쉬는 시간을 합치면 250분이나 된다. 아마 6학년도 학교에서 문제를 출제하지만, 시험시간은 같을 것이므로 똑같이 점심시간이 1시부터 시작될 것이다. 영어는 처음에 듣기평가를 해야 하므로 전교를 조용하게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 때문에 비판이 많았는데 왜 교육감협의회는 또 점심시간을 마지막으로 미룬 것일까? 작년에 진단평가가 끝나고 점심을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어떠냐고 물으니 한 아이가 말했다.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막아보려고 애는 썼지만 안되었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시험시간이 미뤄졌다고 배꼽시계도 당연히 2-30분이나 미뤄지는 건 아닐 것이다. 보통 5, 6학년은 12시부터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게다가 시험문제를 풀 때는 많이 긴장하고 탄수화물 소비가 보통때보다 많다는 건 기본 상식이다.

 

이 진단평가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수 십 만명의 4, 5, 6학년이 배고픔에 떨면서 시험을 봐야 하나? 10개 지역 교육감들은 답을 해야 할 것이다.


태그:#일제고사, #교과학습진단평가, #진단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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