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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과 진중권이 또 다시 부딪쳤다. 그 무대는 조국 서울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공동집필한 <진보집권플랜>.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은 <진보집권플랜>의 두 저자의 정체성을 '진보'가 아닌 '개혁'이라고 규정하며 책의 제목이 "<시민집권플랜> 혹은 <민주집권플랜>쯤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두 저자가 논하는 것은 "시민 기반 운동(개혁이라 불리는)"이지 "민중 기반 운동(진보라 불리는)"은 아니라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이에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자칭 'B급 좌파'라 부르는 철인좌파가 최근 C급 가짜 좌파를 폭로하는 일에 단단히 맛을 들였다"라며 "나에게 '자유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더니, 이번엔 조국·오연호에게 '중산층 엘리트' 딱지를 붙였다"라고 비판했다. 진씨는 "그(김규항)의 비판의 요지는 상표권 도용"이라며 "왜 자기 허락 없이 '진보'나 '좌파'라는 상표를 쓰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놓고 이른바 '자유주의 논쟁'을 일으켰던 두 논객이 이번에는 '진보 정체성' 논쟁을 벌이는 것이다.

"조국, 오연호는 개혁적 중산층 엘리트... '진보' 아니다"

지난 2월 10일자 <한겨레>에 실린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의 칼럼.
 지난 2월 10일자 <한겨레>에 실린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의 칼럼.

포문을 연 것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김규항씨였다. 그는 지난달 9일 <한겨레> 칼럼을 통해 <진보집권플랜>의 두 저자를 "개혁적인 중산층 엘리트"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진보란 먹고사는 데 별 걱정이 없는 중산층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대다수 인민들을 위한 변화라 과장하는 게 아니"라며 "자신들에겐 충분한 변화더라도 대다수 인민들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면 변화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저자가 주장하는 적극적인 선거연합을 통한 정권교체는 '대다수 인민들에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노무현이나 이명박은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한 노동자의 말을 인용하며 두 저자의 주장이 왜 '진보집권'이 아닌지를 설명했다.

"물론 오연호, 조국 같은 분들에게, 즉 개혁적인 중산층 엘리트들에게 이명박인가 노무현인가는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니다. 그들에게 이명박인가 노무현인가는 정권은 물론 학술, 문화, 방송, 엔지오 등의 헤게모니를 '우리가 갖는가 저들이 갖는가'가 달린 절체절명의 일이다. 그들에게 그런 정권교체가 세상이 뒤집히는 수준의 변화라는 것, 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을 존중한다.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권교체를 굳이 '진보집권'이라 부르는 것이다."

김씨는 "그런 정권교체를 진보집권이라 부르는 건 그런 정권교체로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이명박이냐 노무현이냐가 그 밥에 그 나물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B급좌파' 10년, 이제 영전하셔라"

3월 1일자 <한겨레>에 실린 문화평론가 진중권씨의 칼럼.
 3월 1일자 <한겨레>에 실린 문화평론가 진중권씨의 칼럼.

이런 주장에 진중권씨는 플라톤의 '철인정치'에 빗대 자칭 "B급 좌파"라고 하는 김씨를 "철인좌파"라고 꼬집었다. 진씨는 1일 김씨와 같은 <한겨레> 칼럼을 통해 김씨가 '전능한 위치'에서 '진짜 좌파'와 '가짜 좌파' "딱지를 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플라톤은 세계를 세 등급으로 나눈다. A급은 이데아 세계, B급은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계, C급은 현실계를 흉내 낸 유사계(=시뮐라크르)다. 정치인에도 세 등급이 있다. A급은 '이상적' 정치인. 하지만 이상은 현실이 아니기에, 실존하는 것은 이데아를 모방한 B급과, 다시 이를 흉내 낸 C급뿐이다.

(중략) 플라톤의 환생일까? 이 사회에도 좌파'를 세 등급으로 나누는 이들이 있다. 물론 A급 좌파는 존재하지 않거나, 이념형으로만 존재한다. 고로 실제로 존재하는 건 B급과 C급. 이 둘을 구별하는 게 이들에게 좌파정치의 핵심 과제가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을 'B급 좌파'라 부르는 철인좌파가 있다. 최근 C급 가짜 시뮐라크르 좌파를 폭로하는 일에 단단히 맛을 들였다."

진씨는 이어 "현재 진보정당은 집권 전망도 수권 능력도 없다. 이것이 철인좌파마저 모자 눌러쓰고 진보정당을 외면해온 바람에 생긴 빌어먹을 현실"이라며 정당활동에 인색했던 김씨를 비판했다. 그는 "그보다 암울한 것은 앞날. 딱지치기로 '진보'하는 좌파정치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는 '선거연합'에 대해서도 "진보집권이 아니"라는 김씨를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다가올 연합 속에서 되도록 진보의 가치를 많이 관철시키는 것이지, 그 연합에 딱지나 갈아붙이는 것은 확실히 아니"라고 설명했다.

진씨는 또 두 저자를 "개혁적인 중산층 엘리트"라고 규정한 김씨의 문장을 그대로 본떠 반박했다.

"정권이 바뀐다고 조국 교수의 팔자가 설마 획기적으로 바뀌겠는가. '중산층'에 '엘리트'쯤 되면 굳이 '좌파' 딱지 없어도 먹고산다. '진보'로 먹고사는 이들은 따로 있을 게다. 그런 이들일수록 생존권 차원에서 상표권 문제를 '절체절명의 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좌파 딱지'를 허락받고 써야 한다면 차라리 반납하자. 좌파증은 좌파등급심사위원회로 보내면 되나? 그러니 이제 상표권 걱정은 마시되, 그저 우리를 C급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자신을 A급으로 구하소서. 그래야 고래와 권세와 영광이 아저씨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소망교회에서 집사 10년이면 장로 한다. B급 좌파 10년, 이제 영전하실 때도 됐다."

조국 "'진보', 특정세력 전유물 아니다"... 논쟁 계속될 듯

<진보집권플랜> 출판 기념으로 지난해 12월 27일 저녁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조국·오연호 BOOK 콘서트'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콘서트 기획에 참여한 트위터 독자들과 함께 피날레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진보집권플랜> 출판 기념으로 지난해 12월 27일 저녁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조국·오연호 BOOK 콘서트'에서 조국 서울대 교수와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콘서트 기획에 참여한 트위터 독자들과 함께 피날레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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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면을 통해 촉발된 두 사람의 논쟁은 트위터에서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누리꾼 아이디 'staff310'는 "진중권과 김규항이 붙는건가요? 아침부터 재미난 칼럼에 잠이 확"이라며 관심을 나타냈고 누리꾼 아이디 'lamb_of_mammon'은‎ "진중권이 김규항을 저격"했다며 " 김규항 딱지붙이기가 좀 심하긴 하지"라고 공감을 나타냈다.

반면 반복되는 두 사람의 논쟁을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누리꾼들도 있었다. 아이디 'danpyunsun'은‎ "김규항, 진중권 논쟁이 화투치는 거랑 다른 점이 뭔 질 모르겠다"고 말했고, 아이디 'gwangeun'은‎ "뭐, 신문이 김규항과 진중권의 댓글놀이 공간도 아니고, 그냥 두 사람 조용한 곳에 가서 남들 모르게 한 판 붙으면 될 것을"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조국 교수는 김규항씨의 칼럼 이후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진보'라는 단어는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짧게 반박했다.

한편, 김규항씨는 진씨의 칼럼이 게재된 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진중권씨 비판 글에 대응할 건지 궁금해들 하시네요. 공중 앞에 제출된 의견이니 대응을 하는 게 맞겠지요. 마침 내일이 같은 지면 마감이군요. 너무 빠른가요?"라고 밝혀 두 사람의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그:#진중권, #김규항, #진보집권플랜, #조국, #오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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