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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첫 여행지였던 마나과에 이은 다음 여행지는 그라나다(Granada). 중남미에서 손꼽히는 역사적 도시 중 한 곳이다. 그동안 마나과에서 호세아저씨 덕분에 편안하게 지냈다면, 이제부터는 '우리들 만의' 진짜 니카라과 배낭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설렘과 걱정스런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라나다는 마나과에서 남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중남미에서 세번째로 크다는 니카라과 호수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특히,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절 '콜로니얼(colonial)' 양식의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1524년, 스페인 사람들은 이미 니카라과 사람들이 잘 정착해 있는 이 지역에 자기들식의 도시를 일방적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원주민 지역 깔아뭉개기 식의 도시 세우기는 당시 스페인 식민정책의 근간이었던 것이다. 당시엔 스페인 침략으로 민족의 아픔이었을 이 도시가 현재는 니카라과 최고 관광지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니카라과에서 버스타기

마나과에서 그라나다로 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교통수단을 택할 수 있다. 일반 버스나 고속버스, 택시, 심지어 렌트카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가장 추천하고 싶은 교통수단은 버스타기. 버스는 일반 버스와 고속 버스가 있는데 승차비가 매우 저렴하다.

일반버스가 일인당 10 꼬르도바인 반면, 고속버스는 20 꼬르도바(미화 1달러 미만). 가격이 두 배인 만큼 더 좋겠거니 싶어, 우리는 에어컨이라도 틀어줄려나 하는 기대로 고속버스를 택했다.

이곳에서 인근 도시로 갈 수 있는 버스를 탈 수 있다.
▲ UCA 버스 터미널 이곳에서 인근 도시로 갈 수 있는 버스를 탈 수 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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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터미널은 마나과의 유명한 대학,UCA (Universidad Centroamericana ) 건너편에 있다. 터미널 근처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 그리고 상인들로 매우 붐비고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난데없이 버스 운전기사들과 차장들이 우리 곁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경쟁하듯이 목적지를 확인하고는 무작정 우리 가방을 낚아채갔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서 맘에 드는 고속버스를 고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대체 우리 가방을 어디로 가져가는지... 그들의 친절함이 당황스러웠다.

걱정스레 운전기사 뒤를 따라가보니, 버스 뒤에 딸린 작은 화물칸 안에 있던 양동이를 치우고 우리의 배낭을 넣고 있었다. 돌다리도 두드리랬다고, 혹시라도 중간에 가방을 분실할세라 곁에서 지켜보았다. 잠시 후, 운전기사가 자물쇠로 화물칸 문을 단단히 잠그는 걸 보고나서야 안심이 됐다.

반면에 니카라과 현지인들의 짐은 버스 지붕 위에 던져 올리는 게 아닌가? 그러고보면 우리가 외국 여행객이라서 '특별 대우'를 해줬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에도 몇번 고속버스를 탔는데, 항상 우리 배낭은 화물칸 안에 잘 넣어주고 자물쇠로 잠가주었다. 니카라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치안이나 절도 문제로 걱정을 했는데 지낼수록 사람들이 착하고 순박해 아무래도 이놈의 의심병은 접어야할 듯하다.

버스에 타자, "아구아~아구아~" 외치며 비닐봉지에 담긴 물을 파는 이들이 한바탕 들어왔다 나간다. 말이 고속버스지 규모는 미니 버스 정도? 학원 승합차 정도가 딱 맞겠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에어컨은 고사하고 정거장마다 세우고 있으니, '고속(expreso)'이라는 말이 참으로 무색하다. 차장은 위험스럽게 문에 매달려 "그라나다~그라나다~"를 외치며 입석으로 승객을 계속 태워댔다. 곧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정장 차림의 직장 여성, 그리고 동네 총각들까지 어느새 버스 안이 만원이 되었다. 버스 안에 외국인은 우리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레 우리에게 집중됐다. 우리는 좁은 좌석에 앉아 버스에 탄 니카라과 사람들과 가볍게 눈 인사를 나눴다. 그들의 체취까지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다.

결국 약 45km 거리를 1시간 반이 걸려서야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하긴 차비가 그렇게 저렴했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만일, 니카라과에서 이보다 더 저렴한 일반버스를 타려면 특별한 용기가 필요할 듯 하다.  일반버스 대부분이 미국 중고 스쿨버스를 개조한 것들이었는데, 볼 때마다 버스가 터질 것 같이 사람들이 콩나무시루처럼 빽빽히 탑승해 있었다. 바라만봐도 숨이 막히는 것만 같다.

시속 70km로 달리는 버스. 한 남자가 지붕위로 올라가, 자전거를 꺼내고 있다. 정말 달인의 묘기가 아닐 수 없다.
▲ 일반 버스 시속 70km로 달리는 버스. 한 남자가 지붕위로 올라가, 자전거를 꺼내고 있다. 정말 달인의 묘기가 아닐 수 없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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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우리 앞에 약 시속 70km로 달리고 있는 버스를 볼 수 있었다. 버스 안은 이미 초 만원 상태. 작은 충격에도 사람들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그런데 한 남자가 달리는 버스의 뒷문 밖에 매달려 있었다. 보기만해도 아슬아슬해서 계속 지켜보는데, 이번에는 다른 남자가 뒷문을 열고 나오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다. 갑자기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더니, 일어서서 자전거를 꺼내기 시작한다. 이게 웬 진기명기 서커스 곡예란 말인가? 놀랍고도 어의없어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보란듯이 '브이(V)'를 하며 웃는다. 진짜 버스 곡예의 달인이다.

목적지는 그라나다였지만, 어디서 내려야할지 몰라 걱정스럽다. 중간에 사람들이 내리든 말든 무조건 버텼다. 그러다 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탑승했던 사람들이 모두 내리길래 '엣다 모르겠다!' 하고 따라 내렸다. 다행히 용케도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에 잘 도착했다. 그라나다에 도착하자마자 좁은 도로 사이로 자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파랑, 분홍, 노랑의 알록달록 건물들이 이색적이다. 뭔가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도시 느낌이다.

몇 걸음 걷다보니, 한 택시 운전기사가 휘파람을 불며 호객을 한다. 우리가 묵을 호스텔 이름을 말하니, 저쪽으로 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의 말대로 몇 블럭 걸으니, 금세 호스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름 한번 잘 지었네! 배낭객을 위한 오아시스

우리가 머무를 곳은 호스텔 오아시스(Hostel Oasis). 이미 많은 배낭객들이 추천한 바 있는 곳 중 하나다. 그런데 재밌게도 호스텔이 바로 그라나다 시장의 한 입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지나 호스텔에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거리 상인과 택시, 오토바이, 자전거, 마차, 버스 등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그 좁다란 시장골목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내 집처럼 자유롭고 편했던 오아시스. 배낭족들의 진정한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내 집처럼 자유롭고 편했던 오아시스. 배낭족들의 진정한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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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도착하여 안을 둘러보았다. 니카라과 여행중 마나과에서 보기 힘들었던 외국 여행객들이 여기 다 모였나보다. 흔들 의자에 앉아서 인터넷을 하는 이, 해먹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이, 그리고 맥주를 마시며 그간의 여행담을 풀어놓는 이들의 모습이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이름 한번 잘 지었다! 호스텔 오아시스는 배낭객들에게 꼭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을 다 갖추고 있었으니,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만난 느낌이다. 호스텔 안에는 무료 인터넷, 카페테리아, 수영장, 공동 주방 등이 있었다. 방은 기숙사 형식(domitory)부터 개인방(privit room)까지 있다. 그리고 방 안에 에어컨이 있느냐 없느냐, 공동 욕실을 사용하느냐, 방에 딸린 욕실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니,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여행비를 절약할 수 있겠다.

(호스텔 오아시스 http://www.nicaraguahostel.com/ )

호스텔 오아시스의 내부. 벽면에 그려있는 '배낭'을 보니, 이곳이 배낭족들의 위한 공간임을 알리려는 듯하다.
 호스텔 오아시스의 내부. 벽면에 그려있는 '배낭'을 보니, 이곳이 배낭족들의 위한 공간임을 알리려는 듯하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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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 중 여권이나 귀중품을 소지하고 밖에 나가는 건 위험한 짓이다. 오아시스 같이 배낭객을 위한 호스텔은 방 안에 개인 사물함이 있어 자물쇠로 잠글 수 있게 되어있다.

호스텔 프런트 옆에는 맥주와 음료가 들어있는 냉장고가 있었다. 방 번호와 이름을 노트에 적고 자유롭게 꺼내 먹을 수 있다. 말하자면 '무인매점'인 셈이다.

왁자지껄, 사람냄새 나는 그라나다 시장

우리가 머물던 호스텔이 시장 한 가운데 있었다. 북적북적 시장 거리 모습이다.
 우리가 머물던 호스텔이 시장 한 가운데 있었다. 북적북적 시장 거리 모습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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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시, 가장 해봐야 할 것이 바로 재래시장에 가보는 것일 게다. 그런데 운 좋게도 우리가 머물게 된 호스텔이 장사꾼과 사람들로 복작이는 그라나다의 시장통에 있었다. 이 왁자지껄 사람냄새나는 골목길에서 길거리의 치즈장수, 과일장수, 구두 수리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 이웃이 된 셈. 누군가 말했다. 실의에 빠져있을 때 장터에 가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온다고... 그라나다 시장도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삶 그 자체였다. 시끌시끌한 소음과 찌릿한 땀냄새마저 아름다웠다.

"사요나라~"

시장 안에서 한 니카라과 남자가 우리에게 난데없이 일본말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무래도 우리를 일본인으로 본 모양이다. "노, 꼬레아노!"라고 대답했다. 니카라과 사람들에게 우리는 보기드문 외국 여행객이었다. 배낭객의 천국이라는 그라나다에 머무는 동안 한국인이나 일본인은커녕, 동양인을 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배낭객은 유럽과 캐나다 사람들... 드물게 미국인이 전부였다. 그러니 니카라과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딜 가나 튀는 존재였던 거다. 좀 더 많은 동양 사람들이 니카라과를 방문하면 좋을텐데... 이렇게 좋은 여행지를 서양인들의 전유물로 내버려 두기가 너무 아깝다. 되생각해보면, 우리의 이 특별한(?) 존재감 때문에 니카라과에 있는 동안 스페인어 한마디 하지 못해도 '그러려니...'하고 많은 배려를 받았던 것 같다.

▲ 그라나다 시장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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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시장 골목 양쪽에는 옷과 잡화를 파는 건물들이 있었다. 마나과에서 미화 6달러를 주고 산 배낭에 구멍이 크게 나서, 실과 바늘을 사기위해 건물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었다. 드디어 실 가게 발견! 물론 언어가 통할 리 없으니 손짓발짓하며 실을 찾고 있노라고 표현했더니, 가게 총각이 용케도 잘 알아들었다. 결국 실, 바늘, 핀을 사는데 3꼬르도바를 지불했다. 22꼬르도바가 미화 1달러이니, 이건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알면 알수록 순박하고 정직한 니카라과 사람들에게 점점 더 인간적인 매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옷, 잡화를 파는 건물 뒷골목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옷, 잡화를 파는 건물 뒷골목에 있는 재래시장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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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 건물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재래 시장이 나온다. 이곳에선 각종 곡물, 생선, 육류를 팔고 있다. 마치 우리내 옛 재래시장을 보는 것만 같다. 시장 안에서 '가요 삔토(gallo pinto)'의 주 재료인 빨간 콩이 제일 눈에 띄었다.

옷과 잡화를 파는 건물 뒤에 있는 재래시장. 정육점과 가요 핀도(gallo pinto)의 주 재료인 붉은 콩의 모습이다.
 옷과 잡화를 파는 건물 뒤에 있는 재래시장. 정육점과 가요 핀도(gallo pinto)의 주 재료인 붉은 콩의 모습이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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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의 밤거리

자유로운 그라나다의 분위기에 취해 저녁을 먹으러 '밤거리'를 나가보기로 했다. 처음엔 낯선 밤거리가 걱정됐지만, 그라나다는 중앙에 있는 공원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걷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게다가 가로등 불빛도 환하고 저녁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는 걸 보면 안전한 듯 싶다.

호스텔에서 나서는 길. 그 작은 시장 안에서 카지노를 두어 개나 봤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소박한 시장분위기와 어째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호스텔을 나와 밤거리를 걷고 있는 중이다. 가로등이 환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위험하지 않다.
 호스텔을 나와 밤거리를 걷고 있는 중이다. 가로등이 환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위험하지 않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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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골목을 조금 걸어나오니, 곧 그라나다 한 중앙에 있는 공원(Centeral Plaza)에 이르렀다. 때마침 공원 한 쪽에서는 서커스 공연이 한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웃고 박수치며 광대들의 몸짓을 보고 있다. 재밌게도 그 옆, 공원의 상징물과도 같은 성당에서는 경건히 저녁 미사를 드리는 중이었다.

공원의 작은 등불 아래 손수 만든 수공예품을 놓고 파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 광대들의 몸짓에 배꼽잡으며 웃는 사람들, 그리고 신실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 이게 다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공원에 있는 성당 옆에서 서커스 공연이 한창이었다.
▲ 센터럴 플라자(Central Plaza) 공원에 있는 성당 옆에서 서커스 공연이 한창이었다.
ⓒ 하연주 박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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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 2층에 앉아서 저녁 식사를 했다. 뭔가 니카라과스러운 음식을 먹고자, 메뉴를 꼼꼼히 확인한 후 주문을 했다. 인기있는 관광 도시인 만큼 친절하게도 메뉴에는 영어 안내문도 함께 있었다.

주문한 음식과 시원한 마가리타를 즐기며 그라다나의 밤을 즐긴다. 뜨거운 한낮의 거리와는 달리 밤공기가 선선하니 참 상쾌했다. 그렇게 즐기고 있던 터, '아 따거!' 독하기로 유명한 그라나다의 매서운 모기들이 우리의 발등 위에서 함께 저녁식사 중인 게 아닌가? 한바탕 모기떼와 혈투를 벌이는 바람에 음식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지도 모를 판이다. 밤에 외출할 땐 미리 모기약을 뿌려야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었다.

내일은 일찌감치 일어나 그라나다 시내를 둘러볼 예정이다. 그라나다의 낮 풍경은 또 어떤 모습일까? 확 트인 중앙 공원처럼 자유가 느껴지는 이 도심 속에 있자니, 마음까지 여유로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 낯선 냄새, 소리... 오감을 통해 전달해오는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새롭기만 하다. 기대에 들뜬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려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1년 1월 2주간의 니카라과 여행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하연주, 박인권 부부가 공동 작성하였습니다.



태그:#그라나다, #니카라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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