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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덕수궁의 정문은 대한문이지만 예전에는 동문이었던 문이다.
 현재 덕수궁의 정문은 대한문이지만 예전에는 동문이었던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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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원래 궁이 있던 자리는 아니다. 임진왜란이 나고 모든 궁이 불에 타버린 상태에서 선조가 돌아온 곳은 다름 아닌 장안에서 가장 큰 월산대군의 집이었다. 이곳을 임시 궁궐로 삼다가 광해군 때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은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조선 말기 아관파천을 갔던 고종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며 다시 궁궐로 사용됐다.

강대국들에 의한 압박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독립국을 만들고 싶었던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의 나라로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일제의 침략에 의해 좌절되고, 강압에 의해 왕위까지 순종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붙여진 것으로 순종이 덕수궁을 떠나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의 장수를 빌며 이와 같은 이름을 지었다.

조선의 마지막 궁궐이자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현대와 고전미가 조화된 궁으로 유일한 덕수궁, 그곳에 새겨진 역사적 의미들을 새기며 걸어보자.

덕수궁으로 통하는 정문, '대한문'은 원래 '대안문'이라는 이름의 동문이었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경희궁의 홍화문처럼 모든 궁궐의 정문은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로 '화'자를 넣어 이름을 만들었다. 덕수궁의 정문 역시 '인화문'이라는 이름이었으며 정전의 정문인 중화문 앞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궁의 동쪽이 서울의 중심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문이었던 대한문이 정문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임금의 정전으로 들어가는 중화문
 임금의 정전으로 들어가는 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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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을 통과하여 길을 따라가면 임금의 정전 '중화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중화문'이 있다. 조정으로 들어가는 계단은 세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무관, 오른쪽은 문관이 다니는 길이며, 가운데는 임금이 다니는 어도인데 임금의 길은 또 다시 2개로 나뉜다. 임금은 걷지 않고 어연(임금이 타는 가마)을 타고 다녔기 때문에 양쪽 계단은 가마꾼이 지나다니는 길인 셈이다.

어연이 지나가는 부분은 계단이 없이 석판 위에 용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이 문양은 서울의 5대궁 중 유일한 것이다. 명나라의 속국이었던 조선은 명나라에서 사용하는 문양인 용 문양을 쓸 수 없었고 대신 봉황 문양을 사용했는데, 덕수궁만 용 문양을 사용한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자주독립국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는 고종의 의지가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이 정사를 보던 중화전과 그 앞 조정
 임금이 정사를 보던 중화전과 그 앞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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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임금이 정사를 보던 '중화전'이 바로 보이고 넓은 조정이 펼쳐져 있다. 한 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조정의 바닥에 대한 설명을 가이드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돌이 깔려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한다. 요즘처럼 마이크가 있다면 좋겠지만 당시에는 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도구가 없어, 바닥에 굴곡을 줌으로써 목소리에 파장이 생겨 멀리 퍼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신하들이 신고 있던 가죽신발의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며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경우 빛을 반사시켜 햇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조정의 양쪽으로는 품계석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신하들은 이를 토대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덕수궁에서 가장 높고 따뜻한 위치에 자리를 잡은 '중화전'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어좌(임금의 의자)가 보인다. 어좌의 뒤쪽으로는 '일월오악도'(또는 일월오봉도라고 부른다.)가 병풍처럼 쳐져 있는데, 이 그림은 우리의 지갑 속 만 원짜리 지폐 앞 면에 그려져 있는 그림과 같은 것이다.

한 곳에 해와 달을 양쪽으로 배치함으로써 음양의 이치를, 다섯 개의 봉오리 앞으로는 시냇물을 그려 넣음으로써 배산임수의 풍수지리를 나타낸다. 장수를 뜻하는 십장생 중의 하나인 소나무를 둘러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이 그림은 어좌 뒤에는 항상 따라다녀야 했기 때문에 사냥을 나가거나 외출 시에는 병풍으로 만들어 가지고 다녔는데 이를 '일월오봉병'이라고 부른다.

중화전의 천장에는 황룡이 매달려 있다. 사방신 중 중앙을 지켜주는 신인 황룡이 바로 임금의 정전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며, 이 또한 중화문 계단에 새겨진 용 문양처럼 고종의 의지를 나타내는 장식물이라 할 수 있다.

임금의 밥그릇 '정'과 소화기로 사용되었던 '드므'
 임금의 밥그릇 '정'과 소화기로 사용되었던 '드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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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 건물의 옆에는 '정'과 '드므'를 볼 수 있다. 3개의 다리가 달린 화로모양의 '정'은 임금님의 밥그릇이다. 밥그릇이 왜 이렇게 크냐고 하겠지만 이것을 정말 밥그릇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백성을 두루 먹여 살리겠다는 상징적인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몸통을 지탱하고 있는 3개의 다리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天, 地, 人 하늘과 땅과 사람과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보이는 것처럼 향로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넓적하게 생긴 독이라는 순 우리말 '드므'는 소화기의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화재가 나면 사용할 수 있도록 언제나 물을 가득 담아 두었는데, 이 역시 해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물건이다. 넓디넓은 궁궐을 이 소량의 물로 소화시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어떤 재미있는 사연을 담고 있을까? 화마(火魔 : 불의 요괴)가 불을 피우러 내려왔다가 이 물에 비친 자신의 험상궂은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을 간다는 것이다. '정'과 '드므'는 어느 궁을 가든지 다 있는 물건이지만, 덕수궁의 '드므'에만 '萬歲'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고종이 황제국의 번영을 기원하며 새긴 글자다.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조전 서관과 분수대가 설치된 정원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조전 서관과 분수대가 설치된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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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은 고전적인 우리 전통의 건물과 서양식 건물을 함께 볼 수 있는 유일한 궁궐이다. '석조전'은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 건물이며, 현재 석조전 서관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석조전 서관 앞 쪽 정원에서 또 하나의 서구식 양식을 만날 수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분수대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조선인들에게 거꾸로 솟구치는 분수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930년대 순종에 의해 서양의 문물이 받아들여졌고, 최초로 분수가 설치됐다.

석조전 본관은 원형 모습을 되살리기 위한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며, 2012년 10월까지 기다려야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원이 완료된 뒤에는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활용될 계획이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2층 목재 전각 '석어당'
 유일하게 남아있는 2층 목재 전각 '석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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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의 뒤채로 가면 '준명당'과 '즉조당', '석어당'의 모습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가장 왼편에 위치한 '준명당'은 고종이 덕혜옹주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 일본의 약탈을 받던 시기 그녀가 혹여 납치라도 될까봐 바깥출입을 금지시켰고, 답답해 하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궁 안에 일종의 유치원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준명당'의 '명'자의 왼쪽 한자가 날 일(日)이 아닌 눈 목(目)이다. 이것은 어두운 조선의 현실 속에서도 그녀만은 밝게 세상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고종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준명당의 왼편으로 서 있는 '즉조당'과 '석어당'은 덕수궁 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건물로 그 중 '즉조당'은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다시 돌아왔던 월산대군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그 일이 발판이 되어 궁궐이 되었으니 덕수궁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석어당'은 덕수궁 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2층 목조 건물로 안쪽에는 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계단이 아직도 남아있다. 인목대비가 폐위를 당한 후 이곳에서 유폐를 하였고, 또한 그 후 다시 이곳에서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반정에 성공한 역사적인 공간이다. 건물이 잘 보존되었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한국적인 미와 서양식 건축이 조화된 건물인 '정관헌'은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다.
 한국적인 미와 서양식 건축이 조화된 건물인 '정관헌'은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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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어당 왼편으로 이동하면 화사한 꽃담과 아치형의 '유현문'이 손님을 맞는다. 유현문을 지나면 바로 '정관헌'과 이어진다. 조용히 궁궐을 내려 보고 있는 이곳은 고종이 커피를 마시며 연회를 즐기던 휴식 공간으로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이다.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어 밖에서 정관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멋진 제복을 차려입고 커피 향을 음미하며 궁을 내려다보고 있는 고종황제와 마주하게 된다. 커피 마니아였다는 고종황제, 잃어버린 왕후에 대한 그리움과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긴 밤을 지새우며 커피로 마음을 달랬을 지도 모르겠다. 4월부터는 노는 토요일을 이용해 '궁중 차 마시기'라는 행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니 프로그램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왕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함녕전'으로 명성왕후가 승하하신 후 왕비의 침전은 만들지 않았다
 왕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함녕전'으로 명성왕후가 승하하신 후 왕비의 침전은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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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헌 앞쪽의 계단으로 내려오면 양쪽으로 '함녕전'과 '덕홍전'이 있다. '함녕전'은 임금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내각으로 고종이 승하한 곳도 이곳이다. 다른 궁과는 달리 덕수궁에는 왕비의 침전이 없다. 이는 명성왕후가 시해를 당하고 아관파천 후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며, 그 후로 다시 후궁을 맞이하지 않았다. 고종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가슴 속 깊이 느껴진다. 명성왕후는 너무나 비참하고 잔인하게 사라졌지만 하늘에서도 슬프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함녕전의 바로 옆에는 접견실로 사용했던 '덕홍전'이 있다. 덕홍전이 있던 자리는 원래 왕비의 침전을 대신하여 명성왕후의 위패와 신주를 모신 '경효전'이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고 이 건물로 대체되었다. 덕홍전의 외각은 한옥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며진 것이 특징이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고 샹들리에 주변은 오얏이씨꽃 모양의 구슬로 장식되어 있는데 지금은 붉은색이지만 예전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졌다.

덕홍전을 마지막으로 덕수궁을 둘러보는 것을 멈췄다. 곧 진행될 '수문장 교대의식'을 관람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서둘러야 한다.

매일 대한문 앞에서 진행되는 수문장 교대의식, 정해진 시간에가야 볼 수 있다.
 매일 대한문 앞에서 진행되는 수문장 교대의식, 정해진 시간에가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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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궁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1:00, 14:00, 15:30에 진행되는 수문장 교대의식은 시간을 잘 맞춰야 볼 수 있다. 수문장 교대의식은 궁궐의 문을 지키는 수문군들이 교대를 하는 의식으로 궁성문 개폐의식, 궁성 수위의식, 행순(순라식)등이 있다. 오늘날 관광객들에게 보여지는 의식은 이 세가지의 의식을 하나로 연결하여 재현하는 것이다.

수문장의 지휘하에 교대의식이 시작되면 덕수궁 옆 골목을 따라 행렬이 이어진다. 깃발을 든 수문군(궁궐을 수비하는 일반 병사)을 필두로 취라척(행진시 군악을 연주하는 병사), 액정서 사약(종 6품의 내관으로 열쇠보관함을 인계하고 교대의식을 감독함)이 뒤를 따른다.
금군들이 모두 등장하면 이어 본격적인 교대의식이 시작된다.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군호응대 : 암호를 확인하는 절차.
2. 초엄 : 약시함(열쇠보관함)이 인계된다.
3. 중엄 : 부신합부, 순장패 인계 등의 절차를 통해 교대 명령을 확인한다.
중엄까지의 과정이 끝나면 임무를 교대하는 의식인 면간 교대가 진행된다. 이 과정을 삼엄이라고 부른다. 모든 교대의식이 마무리되면 교대한 부대는 궁궐의 외곽경비 임무를 행하는 순라를 실시한다. 순라의식은 화요일은 11:30~12:15 '대한문~보신각' 구간에서, 수요일~일요일은 15:40~16:15 '대한문~광화문광장' 구간에서 관람할 수 있다.

화려한 의상과 악기연주로 시선을 사로잡는 취라척
 화려한 의상과 악기연주로 시선을 사로잡는 취라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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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장 교대의식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엄고수'의 화려한 팔놀림이다. 엄고수는 교대의식의 신호를 북을 쳐서 알리는 병사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역동적인 모습과 힘찬 북소리가 좌중을 압도한다.

하지만 엄고수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건 단연 '취라척'이다.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색깔의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사람들의 시선을 다 잡아먹으면서 소리까지 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수문장 교대의식이 끝나면 포토타임이 진행된다. 수문장의 옷을 입어볼 수 있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고,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우리 왕궁 수비대의 늠름한 모습과 화려한 의상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문장 교대의식, 많은 외국인들이 관람하는 것을 보며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140124501728


<관람정보>

■ 홈페이지 http://www.deoksugung.go.kr
■ 관람시간 09:00~21:00 | 매주 월요일 휴궁
■ 수문장 교대의식

-왕궁 수문장 교대의식 : 덕수궁 대한문 11:00, 14:00, 15:30
-순라의식 : 화요일 대한문~보신각 11:30~12:15 | 수요일~일요일 대한문~광화문광장 15:40~16:15

■ 관람요금

-어른 1,000원 | 청소년 500원
-통합관람권 10,000원 (서울의 4대궁과 종묘 관람 가능)

■ 교통안내

-지하철 : 시청역 1호선 2번출구, 2호선 12번출구
-버스
간선(파랑)
101,103,150,172,263,401,402,406,408,421,472,504,507,600,602,603,604,607,703
지선(초록) 631,1002,1711,7011,7016,7019,7022
광역(빨강) 8600
※자세한 노선은 서울시 홈페이지 참고 http://bus.seoul.go.kr



태그:#서울시티투어, #덕수궁, #수문장교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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