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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해고 통보를 받은 홍익대학교 청소·경비용역 노동자들이 1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처우 개선과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해고 통보를 받은 홍익대학교 청소·경비용역 노동자들이 1월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처우 개선과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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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4일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3일째 되었을 때다. 취재를 나가 학생들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 여학생과 대화를 하는데,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던 남학생이 끼어들었다. '서른 살의 대학원생'이라고 했다. 당시 여학생은 노동자들을 해고한 대학을 비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대학원생은 달랐다.

"민주노총 종북세력이 들어와서 학교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청소원들이 저러는 것은 다 그들의 공작 때문이다."

이어 그는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에 비판적이었던 총학생회도 옹호했다.

"'면학분위기를 위해 농성을 자제해 달라'는 총학생회의 요구는 정당하다. 이전 총학생회가 학생들을 무시하고 운동권 행사를 학교에서 개최해 학습권을 침해당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지금 비운동권 총학생회를 뽑았고 그것이 존중돼야 한다."

청소노동자들은 영하 10도의 추위 속에서 학교 정문을 오가는 학생들을 상대로 선전전을 하는 중이었다. 그 대학원생은 뭔가 불만 섞인 표정으로 청소노동자들을 바라보며 앞에 서 있던 여학생에게 "솔직히 짜증나지 않냐, 그쪽도 비운동권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운동권 아니면 비운동권'이라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듯했다. 

그 말을 듣던 여학생이 짜증이 났는지 "나는 운동권 쪽에 가깝다"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기자도 인사하고 돌아섰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학부생들보다 학교를 더 오래 다녔고 나이도 많은 대학원생이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단지 "외부세력의 공작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니. 청소노동자들이 승리해도 그 이후가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부터다.

홍대 사태가 주목받은 진짜 이유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농성 49일 만에 일터로 돌아갔다. 지난 20일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경지부 홍익대학교지회(이하 노조)는 용역업체와 조합원 전원 고용승계, 주 5일·하루 8시간 근무제 보장, 임금인상 등에 잠정합의했다. 생활임금(시급 5180원) 보장, 직접고용, 고소고발 취하 등 일부 요구사안은 얻어내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가장 시급한 문제였던 고용승계와 임금인상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이 49일을 밖에서 보내는 동안 수십 년 만의 한파가 몰아쳤고, 구제역 사태가 터졌으며, 이집트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났다. 굵직한 뉴스들이 계속 쏟아졌지만 '홍대 사태'에 분노한 여론은 결코 묻히지 않았다.

해고된 홍익대 청소·경비 비정규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영화배우 김여진씨와 '날라리 외부세력'이 주최한 '우당탕탕 바자회'가 1월 22일 오후 홍익대앞 놀이터에서 열렸다.
 해고된 홍익대 청소·경비 비정규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영화배우 김여진씨와 '날라리 외부세력'이 주최한 '우당탕탕 바자회'가 1월 22일 오후 홍익대앞 놀이터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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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한진중공업은 희망퇴직 228명과 정리해고 172명 등 총 400명의 생산직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했고, 이에 노조의 투쟁이 이어졌지만 여론은 무관심했다. 동국대학교, 한국교원대학교 등에서도 청소노동자 해고문제가 불거졌지만 이것 역시 홍대만큼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유난히 홍대 사태가 주목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여론을 만드는 데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결국 그 여론이 학교와 용역업체를 지속적으로 압박했고, 결국 고용승계와 임금인상, 노조인정 등의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왜 홍대만 주목받았는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홍대의 상황이 매우 특수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우선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한 달 점심값이 9000원이라는 게 여론을 가장 크게 자극했다. 하루로 따지면 300원꼴인 점심값.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은 마른 장작에 불을 붙였다. 

'홍익대학교'라는 지형적 특징도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트위터에서 맹활약한 일명 '날라리 외부세력'들은 홍대 재학생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학교나 직장만큼이나 홍대 앞을 많이 갔다. 클럽과 공연 문화가 가장 활발한 서울에서 가장 젊은 거리로 손꼽히는 '홍대 앞'에는 그만큼 '개념 찬' 젊은이들도 많다는 얘기다.

홍대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인디밴드와 같이 젊은 예술가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이번 싸움에 큰 힘이 됐다. 길에서 구호를 외치는 아줌마 아저씨들을 젊은 학생들이 응원하고 함께하는 모습은, 그곳이 명동이었으면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고려대·동국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 등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의 파업과 농성이 있었지만 홍대만큼 대중적으로 불이 붙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15일 '홍대 분회 집단 해고 철회와 1만인 선언 결의 대회'에 참석한 배우 김여진이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15일 '홍대 분회 집단 해고 철회와 1만인 선언 결의 대회'에 참석한 배우 김여진이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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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배우 김여진씨 등 유명인들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무개념 총학생회'에게 밥 한 끼 먹자며 쓴 글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고, 그 뒤로도 일주일이 멀다 하고 농성장을 방문했다. 김씨가 트위터에 쓴 글을 김재동·박원순·김미화 등 수만 명의 트위터 친구를 가진 유명 인사들이 퍼 날랐고, 신문광고와 자선바자 등에 많은 사람이 동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월의 혹독한 추위와 끈질긴 침묵을 뚫고, 불안함과 두려움을 견디고 오늘을 맞으신 홍대 미화노동자 여러분 고맙고 사랑합니다. 어여쁜 응원 달인, 날라리 외부세력들. 흐흐 잘 놀았지요? 놀랍고 자랑스러워요!"

청소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복귀하게 된 날, 김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트위터를 통한 '날라리 외부세력'들의 연대활동이 어떤 성격이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이들은 홍대노동자들의 든든한 응원단이었고 하나의 놀이처럼 즐거운 일상탈출이었다. 여기서 놀이는 심심풀이로 했다는 게 아니라 신명나게 했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홍대 사태'는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럼 홍대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놀이'는 그만하면 되는 걸까? 대부분의 놀이가 그렇듯이 조금 하다 보면 다 비슷하고 흥미가 떨어진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멀어지거나 없어지게 된다. 홍대에서 한바탕 벌어졌던 놀이는 이제 어떻게 될까?

놀이를 벌일 만한 판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서울 남창동에 롯데손해보험 빌딩에서 일하는 23명의 청소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를 빌미로 계약해지 될 위기에 있으며, 63빌딩에서 일하던 청소노동자 81명도 해고에 맞서 농성 중이다.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도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서울메트로 사측이 주말 근무 수당을 편법으로 삭감해 논란이 됐던 지하철1~4호선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또 어딘가에서 우리가 모르는 작고 힘겨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현재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 해서 그늘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를 취재하면서, 단지 한 곳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서울 28개 대학25개 구청의 근무형태를 전수조사했고, 최근에는 정부 15부 2처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실태를 집중조사해 보도한 바 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립대학과 공공기관에서 홍대와 비슷한 사례들이 발견됐다. 동작구청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은 홍대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었고, 재향군인회가 용역위탁을 맡고 있는 정부과천청사도 차이가 없었다.

'날라리 외부세력'들이여 또 다른 판을 벌여보자

지난 21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진행 중인 '아름다운 점심 함께하는 릴레이 단식투쟁'. 외환은행 노조는 1주일에 한 번 점심값을 모아 청소노동자 투쟁 사업장에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21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진행 중인 '아름다운 점심 함께하는 릴레이 단식투쟁'. 외환은행 노조는 1주일에 한 번 점심값을 모아 청소노동자 투쟁 사업장에 지원하기로 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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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른 놀이를 벌일 수 있는 판은 많은데, 그 열기는 벌써부터 식은 듯하다. 연일 트위터를 분노로 채우던 홍대 이야기는 이제 훈훈한 소식이 되었고, 그저 기쁜 일 정도가 됐다. 응원단도 늘이고 더 다양한 놀이로 접근하지 않으면 겨우 피워 올랐던 불꽃은 금방 가라앉을 태세다.

여기저기서 그렇게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보인다. 외환은행 노조가 트위터로 제안한 방법이 좋은 예다. 노조는 자신들이 올린 글을 다른 사람들이 100회 이상 리트윗(RT)하면 자신들의 홍보비를 홍대에 지원하겠다고 했다가, 반응이 뜨겁자 그 방법을 조금 바꿔 더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 좀 더 진정성이 보이는 모금을 하자는 것이었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에 반대하며 투쟁중인 노조는 8000여 명의 직원들이 매주 점심 한 끼를 굶고 이를 성금으로 모아 소규모 투쟁 사업장에 지원하는 계획을 세우고 지난 21일부터 시행에 나섰다. 노조는 약 한 달간 진행되는 행사를 통해 전 직원의 80% 정도가 참여할 것으로 내다봤고, 그렇게 된다면 매 주 2000여 만 원을 모금할 수 있다고 한다. 

외환노조 측은 홍대 노조를 처음으로 지원할 계획이었지만 사태가 잘 해결돼 그밖에 다른 사업장 지원도 고려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도 청소노동자 처우개선에 나섰다. 성동구청은 지난 2월 1일 자로 이미 21명의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했고, 노원구청도 3월 1일자로 직접고용을 선언했다. 특히 용역업체에서 챙기던 수입이 많았던 노원구청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함께 예산 절감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이번 청소노동자 집중취재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두 마디가 있다. 하나는 트위터에서 유행했던 말로 외국의 한 의대 시험에서 '연구실 청소원의 이름을 써라'는 문제가 나왔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렵게 일하는 이를 기억하라는 의미의 이 말에 많은 누리꾼들이 공감했고, 청소노동자 문제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하나는 예산문제로 처음에는 직접고용을 반대했다는 성동구청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용역업체만 상대하면 됐는데 지금은 21명을 일일이 다 상대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사실 그분들이 일하는 양에 비해 받아가는 임금은 형편없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건설회사에서 꽤 높은 연봉을 받다 퇴직하고, 성동구청 시설관리공단에 입사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홍대 '날라리 외부세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그 역시도 청소노동자의 처우가 부족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직 그 '놀이'를 즐겨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응원단이 모여 더 많은 '날라리 외부세력'들이 여기저기서 판을 벌여 다시 시끌시끌해지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고 싶다.


태그:#청소노동자, #홍대, #정부, #날라리, #김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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