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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명의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있어요!
 네 명의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있어요!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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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요일 낮에 아빠를 텔레비전 앞에 잡아두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국노래자랑이다. 아빠께서 넋을 잃고 쳐다보시기에 나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재미있었다. 출연자들의 촌스러운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한창 목청을 높이는데 '땡'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란…, '나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였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노래자랑 무대에 서고 싶었다. 당당하게 무대에 서서 멋지게 노래를 하고 상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전국노래자랑이 내가 사는 광주에 왔다. '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구나' 싶었다. 20일 일요일 오후 예심이 열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예심은 오후 1시부터 광주 남구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다.

내 접수번호는 532번... 왜 노래가사가 기억 나지 않을까?

문화예술회관은 시끌벅적했다. 밖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노래를 연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잠옷 비슷한 옷을 입고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웃기는 모습으로 분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재롱잔치에 온 듯한 유치원생들도 보였다. 나는 현장에서 출연접수를 했다.

그때까지 나는 운이 좋았었다. 현장접수도 내 다음으로 몇 명만 더 받고 끝이 났다. 내 접수번호는 532번이었다.

  출연자가 한복을 입고 노래를 하고 있네요~^^
 출연자가 한복을 입고 노래를 하고 있네요~^^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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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이 시작됐다. 출연자들의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모두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처럼 실력을 뽐냈다. 심사위원장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면 탈락이었다. "합격" 또는 "통과"하는 말을 들은 출연자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1차 예심 통과가 저렇게 기쁠까 싶을 정도로 좋아했다.

어떤 참가자는 노래 가사가 기억이 나지 않는지 머뭇거리다가 탈락하기도 했다. 왜 노랫말도 기억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가사를 얼른 바꿔서라도 부를 텐데… 저렇게 말고 다르게 하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들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탈락자가 많을수록 내게 기회가 오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예심 진행시간을 보니 내 순서는 두세 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계속 예심을 지켜보는데 모두 쟁쟁한 상대였다. 사실 나는 노래 연습을 많이 하지 못했다. 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경험 삼아서 출연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자신감은 있었다.

긴장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무대 위에 여러 번 서 본 경험이 있어서다. 춤이라면 더 자신 있었겠지만 노래는 조금… 그랬다. 한편으로는 어느새 내가 심사 패턴을 읽고 있었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예심을 통과하는지… 어떻게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뽑히는지…

예심이 시작된 지 네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 순서는 아직도 많이 남았다. 지치기도 했다. 차에 가서 잠시 쉬기도 했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졌다. 예심을 통과한 사람들처럼 노래 실력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것을 가지고 나온 것도 아니어서다.

1차 예심을 통과한 사람들의 유형을 살펴본 결과 실력 아니면 재미 둘 중의 하나를 갖춘 출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재미를 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것을 더 높이 사는 것 같았다.

예심 시작된 지 다섯 시간...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름대로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네요 ^^;;;
 나름대로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네요 ^^;;;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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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예심이 시작된 지 다섯 시간도 넘어서다. 그런데 객석에 앉아있을 때만 해도 긴장하지 않았는데, 무대 위에 올라가니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무대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단지 흥을 돋우고 재미를 주는 게 아니라 경쟁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얼굴도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왜 이럴까' 싶었지만 내 순서가 다가올수록 더 긴장됐다. 노래에 대한 자신도 없어졌다. 그래도 긴장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무지 애를 썼다.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시작하면서 무대 위를 누볐다. 한 소절을 자신 있게 했는데…, 아뿔사!! 다음 구절이 생각나지 않았다. 긴장을 풀고 다시 노래를 시작했는데 또 그 구절에 와서 '앗!!!' 거짓말처럼 노래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것 같았다.

머뭇머뭇하는데… 심사위원장의 말이 들려왔다. "수고하셨습니다." 탈락이었다. 관람석에 앉아서 생각했던 순발력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아!! 이렇게 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어요~(이 때까지만 해도....)
 노래를 부르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어요~(이 때까지만 해도....)
ⓒ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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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비로소 다른 출연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고 나왔을 것인데…. 앞에 서서 기억을 못하는 것이고,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픔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뭐… 내가 여기 나가려고 열심히 준비한 것도 아닌데…' 탈락한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도 들었다. 노력하지 않은 탓일 거라는….

노력은 하지 않고 너무 얕잡아 본 것 같았다. 게다가 무대에 서는 걸 즐기지 못하고 본선을 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너무 앞섰던 것 같았다.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욕심을 부리기에 앞서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송해 오빠'를 직접 만날 기회를 다음으로 미뤘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앗!!!!!!ㅇㅂㅇ  가사가 틀렸어요......
 앗!!!!!!ㅇㅂㅇ 가사가 틀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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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슬비 기자는 광주 동신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문정여자고등학교에 입학 예정인 '예비고딩'입니다.



태그:#전국노래자랑, #노래자랑, #광주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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