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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0일 오후 8시 20분 ]

새해 첫날 홍익대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홍익대 청소·경비·시설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44일째 벌이고 있는 가운데,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에서 열린 '홍대 분회 집단 해고 철회와 1만인 선언 결의 대회'에서 해고 노동자들과 지지자들이 해고 철회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새해 첫날 홍익대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홍익대 청소·경비·시설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44일째 벌이고 있는 가운데,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에서 열린 '홍대 분회 집단 해고 철회와 1만인 선언 결의 대회'에서 해고 노동자들과 지지자들이 해고 철회와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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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이기 이전에 부모 입장에서 학생들을 생각했다. 일생에 한 번인 졸업식과 입학식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합의서에 사인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간다는 기쁜 마음도 있지만, 마음이 무겁다."

20일 오후에 만난 이숙희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경지부(이하 노조) 홍익대 분회장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날 노조는 용역업체들과 홍익대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와 임금 인상 등을 합의했다. 많은 이들의 축하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 분회장은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농성이 계속될수록 힘들어 하는 언니(여성 청소 노동자)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며 "고생한 만큼 좀 더 많은 것들을 얻어내고 싶었는데, 다들 만족할 수 없는 합의였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분회장은 또한 끝내 마음을 열지 않은 학교 쪽과 총학생회장 등 일부 학생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노조는 부모 입장에서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일터로 복귀하고자 했지만, 학교와 일부 학생들은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던 탓이다.

홍익대 청소 노동자 21일 일터 복귀... "아쉬움도 많아"

노조는 홍익대 노동자들이 21일 일터로 복귀한다고 20일 밝혔다. 지난달 2일 해고된 이후, 3일부터 홍익대 문헌관에서 농성을 벌인 지 49일만이다. 노조는 17~19일 3일 동안 홍익대 청소·경비·시설관리 용역업체 3곳과 집중 교섭을 벌였다.

노조는 19일 오후 용역업체와 ▲ 고용 승계 ▲ 주 5일·하루 8시간 근무제 보장 ▲ 임금 인상 등에 잠정합의했다. 이 합의안은 20일 오전에 열린 노조 총회에서 참석 조합원 86명 중 77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조합원 이순자(가명·66)씨는 "하루에 보통 10시간 이상 일하고, 한 달에 한두 번 토요일 근무를 해도 수당을 받지 못했는데,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라고 전했다.

또한 노조 전임자(청소부문 1명, 경비부문 0.5명)가 확보돼, 최소한의 노조활동이 보장된 것도 적지 않은 성과다.

하지만 이날 노조 총회에서 이숙희 분회장 등 노조 관계자들은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 조합원은 "분회장 등 노조 협상단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노조 총회 때 '미안하다'는 말에 조합원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노조 총회 분위기를 전했다.

앞으로 홍대 노동자의 시급은 4450원(실 수령액 월 100여만 원)으로 오른다. 해고 전 청소 노동자들의 월급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약 81만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0만 원가량 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급 기준 올해 최저임금(4320원)과 큰 차이 없고, 노조가 요구했던 생활임금(5180원)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경비 업무 노동자의 경우,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아 청소·시설관리 노동자의 80%인 3560원으로 시급이 결정됐다. 많은 이들의 분노를 일으켰던 식비의 경우, 당초 월 9000원(일 평균 300원)에서 5만 원(일 평균 1666원)으로 올랐지만, 여전히 적다.

노조 관계자는 "임금과 식대가 적지 않게 올랐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청소 노동자들이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만 받고 있다, 앞으로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가 더 좋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사진 찍어야 하니, 농성을 그만해 달라'는 말 너무 서운했다"

홍대 청소 노동자들이 일터로 복귀하게 됐지만, 농성 과정에서 학교와 홍대 총학생회 등 일부 학생의 무성의한 태도에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학교 쪽은 청소 노동자의 농성은 노조와 용역업체와의 문제라며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는 학교 쪽은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와 용역업체가 고용 승계 등에 합의를 이뤘지만, 학교는 그동안 노조에 제기했던 고소고발을 취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또한 노조가 요구하는 휴게실 개선, 노조 사무실 마련 등은 학교의 협조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학교가 순순히 이를 받아 줄지는 미지수다.

교직원에게 받았던 설움도 홍대노동자들은 잊을 수 없다. 이숙희 분회장은 "얼굴 한번 비치지 않은 학교와 농성을 하는 우리를 두고 '청소하는 사람들이 감히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했던 교직원들을 생각하면, 너무 서운하다"고 밝혔다.

그는 김아무개 홍대 총학생회장 등 일부 학생들에 대한 서운함도 어렵게 꺼내놓았다.

 이숙희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경지부(이하 노조) 홍익대 분회장.
 이숙희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경지부(이하 노조) 홍익대 분회장.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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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입장에서, 학교 입장을 대변했지만 자식 같은 총학생회장에게 '20일 농성 끝내니 노조 총회를 방문해 달라, 화해하고 잘 지내보자'고 했다. 하지만 끝내 방문하지 않았다. 정말 속이 상했다. 또한 우리는 오래 전부터 졸업식과 입학식 전에 농성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전에 졸업준비위원장이 와서 '사진 찍어야 하니, 농성을 그만해 달라'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서운하던지…. "

"다른 곳의 청소노동자 위해서 연대하고 싸우겠다"

홍대 노동자들은 연대를 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한 조합원은 "합의문이 가결될 때, 동네 주민이라고 하면서 밑반찬을 가지고 농성장을 방문해줬던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며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오늘 학교 내에서 설치했던 노조의 펼침막을 제거하는데, 학생들이 와서 '잘 해결됐느냐'며 박수를 쳤다"며 "마음속으로 우리를 지지해줬던 많은 학생들이 고맙다"고 전했다. "비정규직인 딸이 농성하는 동안 '그만하라'고 했지만, 결국에는 '엄마 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는 조합원도 있었다.

이숙희 분회장은 "얼마 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한쪽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던 한 청소 노동자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우리의 경우 많이 이슈화돼 해결됐다, 우리도 다른 곳의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연대하고 싸우겠다"고 밝혔다.


태그:#홍대 청소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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