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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내에 자리한 천연온천으로 인기가 높다.
▲ 오에도 온천이야기 도쿄 시내에 자리한 천연온천으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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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바다 위에 세워진 인공섬 오다이바(お台場). 우리는 유리 카모메(ゆりかもめ)라는 경전철 라인을 타고 오다이바 안으로 들어섰다. 유리 카모메는 거대한 인공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순환하고 있었다. 흡사 모노레일을 닮은 유리 카모메는 일본인들을 닮은 듯 아주 조용했다.

나는 아내, 딸과 함께 도쿄 텔레콤 센터 역(テレコムセンター駅)에서 내렸다.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오에도 온천 모노가타리(大江戶溫泉物語)'. 우리말로 하면 '대에도시대의 온천이야기'이다. 테마파크 성격의 이 온천은 도쿄 대표온천으로 다양한 온천시설로 유명하다.

온천 건물은 유리 카모메에서 빤히 내려다 보였기 때문에 길을 찾아가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온천 가는 길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아내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잔뜩 날리고 있었고 길가에 나란히 세워진 버드나무 가지도 바닷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이곳 온천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낮 시간보다 저녁 시간인 9시 이후 입장요금이 더 저렴했다. 추가 요금만 조금 더 내면 자고 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정보에 밝은 동서양의 배낭여행자들은 이곳에 일찌감치 와서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기도 한다.

유카타를 직접 고를 수 있는 도쿄 온천

마음에 드는 유카타와 오비를 자신이 직접 고를 수 있다.
▲ 유카타 고르기 마음에 드는 유카타와 오비를 자신이 직접 고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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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을 지불하자 온천 내에서 사용한 비용을 자동으로 정산해 주는 바코드 팔찌와 사물함 열쇠, 수건을 나누어준다. 우리는 온천 안으로 들어섰다. 온천 입구 천장에 붙은 총천연색 우산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온천 입구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신발장 열쇠를 챙긴 후 유카타(浴衣)를 나누어 주는 '에치고야(越後屋)'로 갔다. 에치고야는 현재 미츠코시 백화점의 에도시대 이름이니, 이미 우리는 에도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목욕 후나 여름에 입는 기모노인 유카타는 색상과 크기가 다양하게 16종이나 준비되어 있었다. 이 온천 이야기의 특이한 설정은 바로 자신이 입을 유카타와 유카타를 허리에 고정시키는 허리끈, 오비를 자신이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내는 얇은 하늘색 유카타에 흰 오비를, 신영이는 꽃이 그려진 분홍색 유카타에 남색 오비를 골랐다. 옷들이 후줄근하지 않고 마치 새 옷인 양 깨끗했다. 유카타는 한국 사람인 아내와 딸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한국 여자들이 유카타를 입은 모습이 일본 여자들이 유카타를 입는 것보다 더 예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동양 체형이지만 한국 여자들이 일본 여자들에 비해 키가 더 커서 옷맵시가 더 살아나는 것 같다.

나는 회색 유카타에 붉은색 오비를 골랐다. 탈의실에서 유카타를 갈아입는데 생각처럼 간단하지가 않았다. 유카타 안쪽에 있는 끈을 잘 매고 오비도 예쁘게 묶어야 하는데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끈들이 마음에 들게 잘 매어지지 않아서 몇 번을 되풀이하다가 겨우 끈을 맸다. 끈을 대충 맸더니 걸음을 걸으면 옷이 벌어지면서 자꾸 가슴이 보이려고 한다. 옆에 아내가 있었으면 손재주 없다고 벌써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처음 입어보는 옷이라서 몸도 왠지 부자연스러웠다.

과거 시대로의 여행... 1800년대 에도시대가 펼쳐진 온천

탈의실 밖으로 나서면서 나는 꿈을 꾸는 듯 했다. 그곳에는 1800년대의 일본 에도시대가 펼쳐져 있었다. 어두운 천장은 마치 에도시대의 밤하늘을 재현한 듯 했고 실내에 조성된 거리에는 에도 시대의 각종 상점과 식당가가 재현되어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과거 시대로의 여행이 눈앞에 있었다. 어린 시절 최배달이 나오는 만화에서 많이 보았던 과거 일본의 가게들이 몽환처럼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에도 시대의 한 서민이 되어 일본을 즐겨보는 색다른 경험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영이도 외국 옷을 입고 과거 시대로 들어서자 너무 즐거워한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참으로 기막힌 설정이다. 우리나라 찜질방 문화와 비슷한 듯 하면서 즐길 거리가 훨씬 다양했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저자거리를 그대로 재현한 테마온천을 만들면 대박나지 않을까?

시골 장터와 같은 정겨운 공연이다.
▲ 에도시대의 서커스 공연 시골 장터와 같은 정겨운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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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홀의 무대에서는 에도시대의 서커스 공연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하루 3차례의 공연 중 오후 5시에 시작되는 공연을 운 좋게 처음부터 만난 것이다. 기모노를 입은 젊은 청년이 접시 돌리기, 테마 풍선 불기, 컵 저글링, 칼과 사과 저글링을 선보인다. 마치 시골의 시장에서 서커스단을 만난 것 같은 추억과 재미 속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접시를 2m도 넘어 보이는 나무 막대 위에서 돌리던 이 젊은이가 한 꼬마 여자아이를 무대 위로 불러낸다. 접시는 나무 막대 위에서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그는 이 막대를 어린 아이의 손에 맡기고 갑자기 무대를 내려가 버린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잡고 있는 접시는 약간 기울어지면서도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어린 아이가 균형 감각이 뛰어난 것인지 뭔가 알지 못할 속임수가 있는 것인지 봐도 모르겠다.

종이채의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공을 들어 올리는 놀이이다.
▲ 에도시대의 어린이 오락 종이채의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공을 들어 올리는 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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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는 에도시대 시장에서 서민들이 즐기던 오락거리들이 모두 모여 있다. 활이나 총을 쏴서 풍선 터뜨리기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에도 시대의 오락도 많다. 신영이는 집게로 쿠마 인형 퍼즐을 집어 올리는 오락을 했다. 거의 집어 올렸던 퍼즐이 번번이 오락기계 안으로 떨어지자 신영이는 화가 난 듯했다. 그런 신영이를 겨우 달래 오락의 거리를 빠져나왔다.

따뜻한 태양 아래서 즐기는 노천 족욕

노천에서 족욕을 즐기는 족탕에 가 보았다. 복도를 지나 실외로 나오자 따뜻한 태양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족탕의 작은 수로를 따라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나무판자 벤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내, 딸과 함께 3명이 앉을 수 있는 나무 벤치를 찾아 엉덩이를 걸쳤다. 무릎 아래까지 차는 온천수에 발을 담가 보았다. 발에 전해지는 뜨거운 온천수의 느낌이 아주 좋다.

족탕에 발을 넣고 있으면 몸이 노곤해지면서 피곤이 풀린다.
▲ 족탕 족탕에 발을 넣고 있으면 몸이 노곤해지면서 피곤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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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수가 가득 찬 족탕의 수로 바닥에는 다양한 크기의 자갈들이 박혀 있다. 족탕 안을 걸어 다니면서 지압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주 어린 꼬마가 족탕 안을 걸어 다니고 있어서 나도 따라서 족탕 안을 걸어보았다. 족탕 안에서는 급하게 이동할 수도 없었고 발바닥이 꽤나 아팠다.

에도시대를 재현한 식당에서 다양한 일식을 즐길 수 있다.
▲ 오에도 온천의 식당 에도시대를 재현한 식당에서 다양한 일식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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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탕에서 본격적인 온천을 하기 전에 에도시대 식당 탐방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에도시대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은 서울의 수많은 일식집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먹음직스러운 일본 음식들을 지나치다가 결국 한미촌(韓味村)이라는 한국 식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한미촌 입구의 거인상이 눈길을 끈다.
▲ 한미촌 입구 한미촌 입구의 거인상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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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와서는 현지 음식을 먹어야지 참다운 여행이라는 나의 지론은 여기에서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너무나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한국 라면과 떡만두국을 주문했다. 꼭 라면을 먹고 싶다는 딸의 주장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은 나 자신도 라면을 먹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라면 맛에 반해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한국의 일상적인 음식을 가족과 함께 먹으면서 나는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남탕에서 아무렇지 않게 때 밀고 있는 '여자 때밀이'

식사 후 우리는 도쿄 바다 밑 1400m에서 솟아나는 천연 온천수를 만나기 위해 남탕과 여탕으로 헤어졌다. 도쿄에서 무슨 온천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오에도 온천은 온천수를 이용하는 진짜 온천탕이다. 나는 실내의 대욕탕, 모래탕, 사우나 등을 모두 섭렵하면서 온천탕 안을 돌아다녔다. 이 탕 저 탕에 모두 몸을 적시고 돌아다니다 보니 실내탕 안에 유리로 둘러싸인 큰 방이 있었다. 나는 그 방을 들여다보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젊은 여자들이 팬티만 걸친 남자들을 눕혀놓고 때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 밖으로 시선만 돌리면 벌거벗은 남자들이 떼로 돌아다니고 있는데 이 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들의 때를 밀고 있었다.

한국과 많이 비슷한 듯 하지만 가끔씩 한국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곳이 일본이다. 도쿄 한복판의 이 온천탕은 우리의 전통인 때밀이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많은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손님 중에는 서양 아저씨도 있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때밀이 목욕을 신기해 한다고 하는데, 벌써 이들은 자기들의 수도에 때밀이 문화를 받아들여 외국 손님을 유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때밀이가 한국의 욕탕에서만큼 시원한 손맛을 느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에도시대의 거리를 즐기고 있다.
▲ 에도온천 이야기 많은 관광객들이 에도시대의 거리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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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노천온천으로 나갔다. 워낙 인기가 좋은 온천탕이라 탕 안에 사람이 가득이다. 러시아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한데 모여서 온천을 즐기고 있다. 노천에서 온천을 즐기고 있는데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비행기는 한국에서 많이 본 색동옷을 입고 있었다.

바로 바다 앞의 짠물을 눈앞에 두고 나는 지하에서 올라온 민물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 온천수에는 바닷물이 조금은 섞였는지 바다 내음이 나는 듯 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했고 몸을 휘감은 온천수는 미끈하고 따뜻했다. 걸어 다니느라 지쳤던 다리의 피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나는 아내, 딸과 족탕에서 다시 만나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해가 지고 야외 족탕에 은은한 조명이 깔리기 시작했다. 도쿄 바닷가의 노란 종이등 조명 아래에서 나는 족욕을 즐기고 있었다. 대도시 안의 한적한 온천은 마치 꿈나라 같았다. 호텔로 돌아가자는 내 말에 신영이는 한사코 거부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09년 7월말~8월초의 일본 여행 기록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6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도쿄, #오다이바, #오에도온천, #족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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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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