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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준 신임 기상청장이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27년 전 그가 저질렀다는 '음주 뺑소니 사망 사건' 때문이다.

교통사고 현장
 교통사고 현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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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청장은 당시 피해자 유족과 원만하게 합의하였으며 도의적 책임을 지고 기상캐스터에서 물러난 것으로 죗값을 치렀다고 주장하고 있고, 청와대도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누리꾼들과 야당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상청장의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가 벌금형?

조석준 기상청장
 조석준 기상청장
ⓒ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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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청장은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를 내고도 벌금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피해자 유족과 합의했더라도 그렇게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 있었는지 내막이 궁금할 따름이다.

현행법으로는 '음주'를 빼고 '뺑소니 사망사고'만으로도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만일 뺑소니가 아니라 '사상자 구호 조치 위반'만 인정됐다면 벌금형이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만 음주 사망사고를 내고도 그 정도의 형량이 나왔다는 건 여전히 미스터리다.

하지만 2011년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이 이런 사고를 냈다면 벌금형 정도로 종결되리라는 기대는 아예 접는 게 좋겠다. 다음 사례들을 보면 뺑소니 사고가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처벌 수위가 얼마나 높은지 알게 될 것이다.

[사례 1] A씨는 오늘따라 마음이 급했다. 중요한 사업계약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신호는 왜 이렇게 계속 걸리는지. 차라리 차를 두고 올 걸 그랬다는 후회까지 들었다. 그는 삼거리에서 또다시 직진 신호를 대기하게 되었다. 좌회전 차량이 멈춰서자 그는 곧 직진신호가 파란 불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차량을 서서히 출발시켰다. 그런데 바로 앞 B씨의 차량이 그대로 서있는 바람에 아주 살짝 부딪히고 말았다. 그는 미안하다는 손짓을 하고는 바쁜 마음에 갈 길을 계속 갔다.

[사례 2] C씨의 차량이 네거리에서 좌회전하기 위해 서 있었다. 편도 4차선 중 2개가 좌회전 차선이었는데 왼쪽 1차로에 C씨가, 바로 옆 2차로에는 D씨가 나란히 대기하고 있었다. 신호를 받은 C씨와 D씨는 동시에 좌회전을 하였는데 C씨가 너무 크게 도는 바람에 D씨의 차를 살짝 스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서로 상대방의 탓이라고 우기면서 언성을 높였다. 20분간 말싸움을 벌이다가 D씨가 112에 신고를 하자 C씨는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두 사례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도로에서 이런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사고 며칠 뒤 A씨와 C씨는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뺑소니 사고로 신고가 들어왔으니 조사를 받으라"는 통지였다. 뺑소니라니, 두 사람은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단순 접촉사고 내고 뺑소니로 몰리게 된 까닭은?

자초지종인즉 이렇다. 먼저 첫 번째 사례. B씨는 사고 직후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A씨는 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별 문제되지 않겠다고 생각하여 그냥 가버렸다. B씨는 A씨가 도망가는 걸로 생각하고 뒤따라갔으나 잡지는 못하였다. 대신 차량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B씨는 큰 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일상 생활을 하다가 이틀 후에야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되었고, 뒤늦게 병원에서 진단서(전치 3주)를 끊게 되었던 것이다.

C씨도 억울하다고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비록 먼저 자리를 뜨기는 했지만 좌회전 도중 가벼운 접촉사고를 일으켰을 뿐이고 상대방이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고 항변했다. 두 사람 모두 경미한 사고에 뺑소니로 몰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따졌다. 

하지만 수사기관에서 "피해자가 상해진단서를 제출했고, 차량 수리비가 나올 정도라면 구호조치를 했어야 한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그들은 재판에서 뜻밖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 C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형이었다.


"경미한 사고도 최소한 차에서 내려서 직접 확인하라"

두 사람이 뺑소니로 몰리게 된 연유를 알아보자. 두 사람에게 적용된 죄명은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의 도주차량이다.

먼저 '사고 후 미조치'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교통사고를 낸 사람은 피해자를 구호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사고 후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런 조치 없이 도망갔다면 피해자의 사망 유무, 상해 정도에 따라 가중하여 처벌하겠다는 취지의 조항이다.

법원은 상해가 경미할 때는 구호조치를 하지 않더라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A씨와 C씨도 무죄가 되어야 맞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다. 대부분의 사고에서 법원은 "사고 후 최소한 차에서 내려서 피해자가 다쳤는지 혹은 차량이 파손되었는지 확인한 후에야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아무 상처가 없다고 사고 현장에서 피고인을 안심시켰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고 운전자로서는 최소한 미필적이나마 피해자가 상해를 입었음을 인식하였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맞는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할 것"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니까 사소한 접촉 사고가 났을 경우라도 일단 내려서 피해자의 상태를 파악하지 않았다면 뺑소니로 몰릴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구호조치나 경찰신고의무는 쌍방 과실이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이 클 경우에도 해당한다.

최근 판결은 사고 운전자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 '구호조치', '신고조치'와 함께 피해자나 경찰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리는 '신원확인 조치'도 포함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C씨처럼 차에서 내려서 대화를 했더라도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면 나중에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  

피해자가 다친 걸 알고도 구호조치 안 하면 '뺑소니'

학생들이 대로를 건너 안전하게 등굣길에 오르고 있다.
▲ 아이들의 안전한 등굣길 뒤에는... 학생들이 대로를 건너 안전하게 등굣길에 오르고 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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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뺑소니 사고(도주차량)에 대해 살펴보자. 뺑소니사고는 윤리적으로 강하게 비난받을 일이므로 교통 안전이라는 공익과 피해자 생명 보호라는 개인적 법익을 위해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법원도 이런 취지를 감안하여 가해자에게 책임을 엄하게 묻고 있다.

최근 판결은 뺑소니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고운전자가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에 규정된 의무(사상자 구호 조치 등)를 이행하기 이전에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이다."

정리하자면 ▲피해자가 사상(死傷)을 당한 사실을 인식(죽었거나 다쳤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의 인식, 즉 미필적 인식까지 포함)하고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망가려는 의사가 있다면 도주 차량으로 보게 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신원확인 조치가 없으면 도주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따라서 피해자가 다친 줄 몰라서 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표시만 하였거나 차에서 내려 언쟁을 벌인 정도로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사례들처럼 가해자는 사소하거나 경미한 사고라고 판단하여 현장을 떠났는데 뒤늦게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하면 사태는 복잡해진다.

뺑소니로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유의할 사항 몇가지를 짚어본다.(법과 판례를 토대로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였음을 밝힌다)

1. 사고가 났다면 일단 차에서 내린다.
-사람이 다치지 않았는지 상대 차량이 파손된 곳이 없는지 직접 확인한다. 

2, 병원에 후송하거나 경찰에 연락한다.
-상대방이 치료나 차량 수리를 원한다면 처리를 해준다. 합의가 되지 않거나 책임소재가 불명확한 경우 경찰에 연락하는 게 상책이다. 쌍방 과실이거나 상대방에게 책임이 클 경우에도 구호 조치나 경찰신고의무가 있다.

3. 가벼운 사고에서도 연락처를 주고 받는다.
-판례는 신원확인의무를 인정한다. 상대방이 괜찮다고 하더라도 연락처를 주고 받는 것이 안전하다. 상대방의 연락처를 알아놓는 것도 차에서 내려서 확인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4. 서면 합의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만일 사고에 대해 쌍방 합의가 되었다면 메모지에 기록을 남기고 쌍방이 사인하는 방식으로 서면을 남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뺑소니는 아주 악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거창한 범죄가 아니다. 교통사고가 냈을 때 귀찮다고, 혹은 처벌이 두렵다고 현장을 벗어났다가는 도망자로 몰려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  

이건 뺑소니일까 아닐까
판례로 본 뺑소니 인정, 불인정 사례
그동안 법원의 판례를 통해 뺑소니가 사고로 인정된 사례, 인정되지 않은 사례들을 정리해 보았다.

뺑소니로 인정된 사례
-가해자가 부근의 택시기사에게 피해자의 병원 이송을 요청하였으나 경찰이 온 후 가겠다는 피해자의 거부로 이송되지 않은 사이에,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그 전에 사고 운전자는 현장을 이탈한 경우(그 후 치료를 받았더라도 구호조치 위반)
-피해자인 어린 아이가 "다친 데가 없고 괜찮다"고 하자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고 그냥 가버린 경우(어른은 상관 없으나 어린이는 구호 조치 위반에 해당)
-사고 운전자가 피해자를 병원에 후송조치하였으나 피해자나 병원 측에 인적 사항을 알리지 않고 떠났다가 경찰이 차량조회로 연락을 취하자 그 후에 파출소에 출석한 경우(도주에 해당)
-피해자를 병원에 후송하기는 하였으나 경찰 조사에서 자신을 목격자라고 하면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귀가한 경우(구호조치는 있었으나 신원확인 조치가 없었다)

뺑소니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
-교통사고시 피해자와 사고 책임에 관하여 언쟁하다가 아내에게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며 현장을 이탈하고 그의 아내가 사후처리를 한 경우
-사고운전자도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도중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집으로 가버렸으나 당시 이미 경찰이나 구급차량 등에 의하여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가 이루어진 경우
-교통사고 당시 이미 여러건의 연쇄충돌 사고가 발생하여 경찰이 출동하여 조사하고 있었고, 피해자 일행이 피해자를 병원에 보내는 것을 보고 그에게 가해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사고현장을 떠난 경우
-피해자를 병원으로 후송한 후 접수창구에서 가해자가 차량번호를 알려주면서 접수를 마친 다음에 병원을 떠난 경우


태그:#뺑소니, #조석준,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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