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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운 젖소 살처분 시키고 망연자실!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시에서 최초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필자는 그 어느 축산 농민 못지않게 구제역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것은 바로 나의 고향 파주에서 45년여 낙농업을 하는 절친한 친구와 강화에서 한우를 키우는 큰 처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이 멀다 할 정도로 나는 친구에게 전화하여 (100여 두) 젖소 안부를 묻곤 했다. 그때마다 친구는 의연한 자세로 '너무 걱정하지 마라. 자네가 알다시피 내가 어디 한 두 해 낙농을 한 것도 아니고 반평생 젖소와 살아온 사람인데 설마 방역에 소홀하겠느냐'면서 나더러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 구제역으로 살처분 하기 전 지난해 8월 100여두 이상의 젖소들이 사육되며 왕성하게 우유 생산을 하던 친구네 농장 '은잔디목장'을 필자가 방문했을 때 찍은 화면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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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제역으로 살처분한 후 이번 구제역으로 자식처럼 애지중지 공들여 키운 100여 두 이상의 젖소를 구제역이 다 걸리지도 않았는데 살처분한 뒤 망연자실한 채 축사를 바라보는 친구 노윤호씨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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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마치 내가 축산 농민이라도 된 듯 불안했다. 그러다 보니 만에 하나 친구 농장에 구제역이 발병했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 겁이나 전화를 못 하고 애를 태우다 10여 일 만에 친구와 통화를 하니 친구는 '아직은 괜찮다, 다행히 구제역에 대한 저항력이 한우나 돼지보다 젖소가 더 강한 것 같다'고 말해 나는 한숨을 돌리기도 했다.

 

그 후 다시 지난해 연말경 친구와 통화를 하니 친구네 농장이 위치한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축산단지"에도 구제역이 발생해 몇 집이 살처분 했다는 소리를 하며 이젠 어쩔 수 없이 "하늘의 뜻"에 맡겨야겠다"고 친구가 말하는데 그 힘 빠진 목소리를 듣고 얼마나 난감하던지…. 그 후 얼마 지나 친구에게 전화를 시도해도 신호는 분명히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혹시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하며 불안했다.

 

그러다 올해 1월 초 친구와 어렵게 통화를 하니 첫 마디가 "틀렸어, 어제 100여 마리 넘는 젖소를 모두 살처분시켰다"는 기막힌 소리를 하며 지금 그곳은 마치 삭막한 북한땅처럼 이웃 간에 오가지도 못하고 서로 반목하고 경계하는 분위기고 심지어 외부에 나가 사는 자식들도 집에 오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탄식을 한다.

 

 

친구 부부는 1980년과 1990년대 2차례에 걸쳐 임진강물이 축사 지붕까지 범람하여 자식처럼 키우던 젖소를 강물에 떠나 보내는 아픔을 겪고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번에는 그때의 피해보다 몇 배나 더한 심한 피해를 봤으니 고희를 몇 해 앞둔 친구 처지에서 재기할 수 있을지 그것이 염려되었다.

 

그런데 섣달 그믐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 반갑게 통화 하니 '올해 설은 차례를 모시지 않기로 했다'며 나더러 시간 되면 설날 조상님 묘소 성묘 왔다 들렀다 가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때나 저때나 통행 가능한 시기를 기다렸는데, 매우 반가워 외지 사람 내왕이 가능하냐 물으니 그 지역 35개 축산농가 중 반은 살처분하고 나머지 농장 살아있는 가축은 2차 접종을 끝낸 지 3주 지나 내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 설날 아침 서둘러 조상님 성묘를 마치고 곧바로 친구의 농장으로 달려가니 농장 주변 일대가 온통 출입금지 줄이 쳐 있어 구제역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었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우리 부부가 온다고 하면 언제나 친구 부부가 농장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는데 이번에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러다 보니 조심스럽게 친구 집에 들어 '위로 인사'를 나누고 그동안의 자초지종 이야기를 듣는데, 그런 와중에도 친구는 강단한 사람이 되어 나름대로 현실을 인정하며 마음을 다잡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우리 부부를 보자 그동안 간신히 참았던 설움이 복받치는 듯 웬만해선 나약한 모습 보이지 않는 분인데 한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도영이 할아버지에게 새해부터 눈물 보여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 광경에 너무도 화가 나 나도 모르게 친구가 따라주는 동동주 서너 잔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아내는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하고 나는 친구와 함께 며칠 전까지 100여 마리가 넘는 젖소들이 활동하며 우유를 생산하던 축사를 돌아보는데 세상에, 그 넓은 축사가득하던 얼룩이 젖소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삭막한 축사 안에는 구제역 방역하느라 뿌려놓은 소석회 가루만 가득 채워진 채 텅텅 비어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어떻게 이번 어려움 이겨내고 재기할 수 있겠느냐? 물으니 자신의 마음 같아선 나이도 있고 이참에 그만두고 싶지만, 아버지 축산업 대를 잇겠다며 4년 제 대학 졸업을 하고 다시 어렵게 축산대학을 나와 지난해 장가들어 부모님 모시고 산다고 집까지 새로 단장한 아들 부부를 봐서라도 꼭 재기하겠다고 한다. 친구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얼마나 고맙던지 코끝이 찡하다.

 

 

 

덧붙여 살처분한 젖소 보상 과정에 대해 물으니 확실치는 않지만, 한우는 두당 400만 원 그리고 한우보다 사육비가 훨씬 더 많이 든 젖소는 두당 200만 원밖에 보상을 안 해 준다며 평소 그렇게 의연하고 당당하던 친구가 상심한 모습으로 '내 인생 반 평생을 젖소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축산업에 몸바쳐 살았는데 이 꼴이 뭐냐'며 '이번 일 당하고 자네 만나 처음으로 눈물 흘린다'며 고개를 떨어뜨린 친구 모습을 보니 내 가슴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듯 아프다.

 

그런 친구 부부를 두고 설날이라 처가 방문 약속이 있어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떠나려니, 친구가 오늘은 자네와 하룻밤 지새우며 술 한잔 하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싶었는데 이렇게 잠깐 왔다 가면 어떡하냐며 섭섭하다고 집에 가서 자네 들라고 자동차 트렁크에 동동주 두 병을 실어주며 우리 부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서있는 친구 부부를 남겨두고 자유로를 달려오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시야를 가릴 정도이다.

 

그런데 이번 구제역 발병 과정에 정부의 초기 방역 부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문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되지 않는 재앙 수준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다 한 수 더 떠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가축까지 무조건 다 살처분 하고도 아직도 구제역이 성하고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살처분으로 구제역을 방어"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에게는 구제역에 걸린 가축도 고기를 50도 이상 익혀 먹으면 인체에 해가 없다고 홍보를 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서둘러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수백만 마리의 가축까지 "살처분" 시키는 편법을 썼다. 이는 정부나 해당 부처가 당장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대처로 허둥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좀 더 숙고해서 "구제역에 걸리지 않은 가축"은 생고기 판매가 어렵다면 육가공 식품으로 이용하든지 아니면 "구제역 인근지역 육류"라 표시하여 반듯이 50도 이상 익혀 먹을 것을 홍보하여 판매해도 괜찮았을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신종 인플레"가 번성하여 떠들썩 했을때, 세계 어느 나라도 "사람을 살처분 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바로 가축이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살처분한 가축도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사람과 같은 맥락에서 살처분전 예방 접종을 하고 가축이 내성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해서도 완치가 안 된 가축에 한하여 살처분을 했어야 옳았다. 그래야 가축에게도 자연적으로 면역성이 생겨 또다시 구제역이 발생해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마련이다. 

 


태그:#구제역, #살처분, #은잔디 목장, #축산농민, #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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