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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만 원 때문에 전셋집 빼거나 월급 차압 들어가면 생활이 막막해지는 거다. 회사에서 이미지가 나빠져서 해고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한 집안이 날아간다."(원호연)
"저는 항소심 선고 받고 나서 파산신고 할 생각까지 했다. 파산하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니까 회사에서도 나가야 한다."('해안선')

지난 2009년 5월 2일. 이른바 '촛불시민'이었던 원호연(38, 회사원)씨와 '해안선'(닉네임, 28, 회사원)씨는 촛불 1주년 기념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청계광장으로 향했다. 이날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죄로 각각 시청역 5번 출구와 서울광장에서 연행된 이들은 이후 다른 6명의 '촛불시민'과 함께 형사처벌에 이어 2억 원이 넘는 민사소송까지 당하게 된다. 이들은 지난해 4월 1심에 이어 12월 항소심에서도 2억여 원의 '연대 배상' 판결을 받았다.

'보는 족족' 검거 된 그들, 형사처벌에 2억여 원 민사소송까지

2009년 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예정돼있는 서울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차량으로 에워싸 원천봉쇄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가 진행중이다.
 2009년 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 행사가 예정돼있는 서울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차량으로 에워싸 원천봉쇄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서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가 진행중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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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원호연씨와 '해안선'의 표정은 어두웠다. 최근 다른 3명의 '피고'들과 함께 '촛불 민사재판 피해자모임'을 결성한 이들은 항소심 판결에 대한 대법원 상고와 함께 '원고'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소송 취하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들은 "서울시와 법원이 의사표현의 자유를 봉쇄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원씨의 부인, '해안선'의 여자 친구도 동석했다. 

2009년 5월 2일.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원호연씨와 '해안선'은 연행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원호연(이하 원) : "촛불 1주년 행사가 청계광장에서 열린다는 건 '아고라'를 통해 알고 있었다. 친구들과 (청계광장에) 갔더니 차벽으로 막혀 원천봉쇄 되어있었다. 갈 데가 마땅치 않아 밥을 먹고 나오는데 태평로가 다 뚫려 있더라. 거리 행진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축제도 즐길 겸 해서 왔다 갔다 하다가 친구를 잃어버렸다. 그러다 사람들이 서울광장으로 밀려들어가면서 저도 같이 (광장으로) 들어갔다.  

(광장에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이 피켓을 들고 왔다 갔다 하더라. 그러고는 깃발들이 하나, 둘 올라가 무대를 점거했다. 저도 '용산참사 해결하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한 5분 정도 있었나. 경고방송이 나오고 대한문 쪽에서 전경들 수백 명이 무대 쪽으로 뛰어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도망가고. 저도 나왔다. 그러고는 시청역 앞에서 '시민악단' 공연을 보고 있다가 연행됐다. 같이 노래 부르면서 박수치고 있는데 전경들이 둘러싸면서 거기 있던 사람 전원을 연행했다."

'해안선'(이하 해) : "저도 아고라를 보고 나왔다. (원호연씨와) 마찬가지로 거리행진을 따라가다가 전경들이 대한문 쪽에서 막으니까 밀려서 시청광장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대 위로 올라가 깃발을 흔들었다. 이후 경찰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단상 위로는 안 올라갔고, 경찰들이 (사람들을) 연행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러다 경찰들이 저를 잡아서 끌어내는 과정에서 저항을 하다가 경찰을 발로 찼고, 폭행죄로 연행되었다."

'1300여 명 시위대'(중앙지법 판결문)가 참여한 이날 집회에서 50여 명의 사람들이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 무대를 점거한 것은 오후 8시 5분경. 2009년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주상용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일선 지휘관의 무전 녹취록에 따르면, 주 청장은 이날 오후 8시 20분경 "지금 시청행사가 다 엉망이 됐기 때문에 검거 인원이 많아야 한다. 초반부터 검거를 많이 하라고 했는데 오는 족족 검거해서 검거인원이 많도록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1시간 반 만에 시청 앞에서는 64명이 검거되었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주 청장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2일 오후 6시 50분경)부터 "초기에 검거를 많이 하는 게 해결책이기 때문에 보는 족족 검거하기 바란다", "(시민들이) 인도에 산재돼 있더라도 공격적으로 쫓아가서 검거를 해!"라며 '강경진압'을 주문했다. 이날 하루 동안 경찰이 검거한 인원은 무려 178명. 이 때문에 이날 경찰의 연행에 대해 '과잉진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힘 없는 개개인에게 소송 걸어 본보기로 삼겠다는 것"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촛불시민들이 2009년 5월 2일 저녁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2009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 무대를 점거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촛불시민들이 2009년 5월 2일 저녁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가로막히자 서울광장에서 열리고 있는 '2009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 무대를 점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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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원호연씨와 '해안선'은 집시법위반과 업무방해로 기소되어 각각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민아무개군(벌금 500만원)을 제외한 다른 5명 역시 이와 비슷한 수준의 형을 선고받았다. 보석으로 풀려나기 전까지 이들은 두 달 정도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구속수사에 대해 원씨는 "17년 동안 한 집에 살면서 8년 동안 같은 직장을 다녔고 범죄 사실을 인정했는데 왜 구속을 시켰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는 '해안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구치소에 들어가 있던 두 달 반 동안 아무것도 못하니까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더라"고 말했다. 당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구형받은 받은 대학생 방아무개씨는 2009년 9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유기정학 처벌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지난해 12월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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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청행사가 엉망이' 된 것에 대한 서울시의 대응은 형사처벌로만 끝나지 않았다. 2009년 6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이들 8명에게 "개막식 행사 중단으로 입은 직접피해액 6억 1600여만 원의 30%와 행사 이미지 실추 비용 5000만 원을 합한 2억 3500여만 원을 배상하라"며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일부 개인에게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4월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고 이는 항소심에서도 확정되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최자나 단체가 아닌 단순 참가자만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승소한 첫 사례였다. 2010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은 방아무개씨 등 2명에게는 각각 1000만 원을, 이들을 제외한 5명에게는 각각 3000만 원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원씨는 서울시가 단체가 아닌 개개인에게 배상 책임을 물은 데는 '전략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동영상이나 사진채증된 걸 보면 온갖 단체들 깃발이 다 보인다. 민주노총, 하다못해 대학동아리까지. 판결문을 봐도 이날 집회에는 50개의 단체가 참여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하나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개개인한테 (소송을 제기) 했다.

단체들한테 (소송을) 걸면 단체들은 나름의 시스템이 있지 않겠나. 딜도 하고 빠져나갈 수도 있고. 그런데 개개인은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 기자 한 명 만나기도 어렵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없었으면 아마 국선 변호사를 썼을 거다. 결국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개개인한테 (잘못을) 물어서 본보기로 삼겠다는 전략적인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누가 집회를 나오겠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봉쇄하는 거다."

"촛불 집회 나가는 아이에게 '나가지마 3000만 원이야' 해야하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2009년 5월 2일 저녁 서울광장에 모인 촛불시민들을 경찰이 강제 연행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2009년 5월 2일 저녁 서울광장에 모인 촛불시민들을 경찰이 강제 연행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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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씨와 '해안선'은 특히 돈 문제를 호소했다. 이들은 이미 보석금과 소송비용 등으로 1인당 700~800만 원 정도의 돈을 썼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지 않는다면 이들은 지연손해금을 포함해 3000만 원이 넘는 돈을 배상해야 한다. 서민이 감당하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다.

이에 '해안선'은 2심 판결이후 '파산신고'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놓았고, 옆에 있던 '해안선'의 여자 친구는 "소송 때문에 결혼도 못 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원 : "2009년 12월에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1년하고 좀 넘었는데 3000만 원 때문에 전셋집 빼거나 월급 차압 들어가면 생활이 막막해지는 거다. 회사에서 이미지가 나빠져서 해고될 수도 있고…그렇게 되면 한 집안이 날아간다."
해 : "부모님 돌아가시면서 그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누나가 하나 있는데 병원에 입원을 해 있다. (누나한테) 이야기도 못했다. 다들 민사 자체를 '판도라의 상자'처럼 보더라. 워낙 배상액이 크니까. 또 개인마다 소송비용을 내다보니까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되고. 몇 분은 변호사 비용이 없어서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항소도 못했다. 그래도 형사소송 같은 경우에는 주변에서 도와줬는데…."

원 : "맞다. 형사 때는 구치소에 들어가 있으니까 '촛불 네티즌 모임'에서 돈도 보내주고…그런데 민사는 그게 불가능하다."
해 : "민사 건은 까놓고 이야기하기가 너무 미안하다."

원 : "금액이 한 두 푼이면 촛불집회 같이 했던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할텐데…. 거기 무대 위에 올라갔던 사람이 50명이라고 치자. 우리가 그 사람들한테 '그래도 촛불 같이했으니까 도와 달라'. 이렇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 사람들도 '안 됐다'고만 이야기하지 발 벗고 나서지 못하는 게, 자기도 거기에 있었는데 밝혀지면 자기한테도 소송을 걸 수 있다는 압박감이 있다."

원씨는 "지금까지는 집회로 인한 손해 배상을 개인한테 건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직장생활도 바빴기 때문에 법적대응만 해왔다"며 "그런데 작년 말에 항소심 결과가 이렇게 떨어지니까 이대로 있으면 우리가 당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전했다. 그는 "촛불 1주년을 기념하고자 모였던 시민들을 구속시키고 심지어는 금전 배상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선 안 될 일"이라며 "이런 전례가 남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그 집회를 기획하고 운영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 하나의 참여자일 뿐이다. 형사처벌도 이미 받았다. 시민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기 위해 나왔는데 '배상금 3000이야' 하면 누가 앞으로 광장에서 이 정권이 잘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나. 제가 앞으로 아들이나 딸을 낳아서 '촛불 집회 나간다' 그러면 '나가지마, 3000만 원이야' 해야 하는 건가."

"앞으로는 기자회견과 토론회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이슈화시켜나갈 계획"이라는 원씨는 "서울시가 소송을 취하할 때까지 촛불 때와 똑같이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태그:#하이서울페스티벌 , #촛불 1주년 , #촛불집회 손해배상, #오세훈 , #원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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