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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에 걸었던 부여보 인근 청양 왕진나루앞 저석습지와 청보리밭이 채 1년도 안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열달이 지난 후 다시 찾은 백마강(금강). 그러나 4대강 사업이 천년을 고이 자던 백마강을 이토록 함부로 깨워놨을 줄이야...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를 시작으로 호암리백사장, 낙화암을 마주하는 신리, 대제각, 수북정까지 4대강 사업이 만든 상흔을 찾아 떠난 금강트래킹.

 

신라에 화백제도가 있었다면, 백제에는 하늘을 숭배하고 회의를 통해 제상을 뽑던 천정대가 있었다. 부여는 백제의 옛도읍지 답게 걸출한 문화재가 많다보니 충청남도기념물 제49호인 천정대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천정대는 역사적인 가치와 함께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 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건설 중인 부여보를 관망할 수 있는 곳이라서 더 특별하다.

 

천정대에서 내려와 백마강섬교 아래 펼쳐진 호암리 백사장이 파괴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이곳은 부여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강모래의 가치가 수질정화에 탁월함을 인정받아 철저히 보호받아 왔었다. 때문에 이곳에선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는 물과 들의 최적의 가교역할을 했던 백사장의 이전 흔적을 찾기 쉬웠다. 또한 호암리 백사장은 금강의 몇 안되는 천연의 백사장으로 높은 생태경관적 가치를 지녔던 곳이다.

 

 

나복리에서 마을뒷산인 부산에 오른다. 부여에는 백제의 전성기에 산신이 살았다는 세 개의 산이 있는데 오산(烏山),일산(日山),부산(浮山)이 그것이다. 효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백강 이경여가 왕으로부터 받은 글을 새긴 바위가 부산(浮山)에 있는데, '지통재심 일모도원'이라 하여, '호란의 치욕을 씻지 못하는 비통함이 남아 있는데 날은 저물고 길은 멀기만 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백마강변의 많은 농경지가 철거되어 그 많던 비닐하우스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농토는 농지리모델링이라는 이름으로 시커먼 준설토로 드넓게 메워져있다. 신리 갈대밭이 있던 자리는 자전거도로에 내어주었고, 일대의 풍성하던 갈대와 모래는 깡그리 사라진 모습을 보며 내내 걸어왔다.

 

낙화암을 마주하고 있는 신리갈대밭의 이전의 모습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발을 딛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빼곡한 갈대림과 간혹 부분적으로 모래채취가 이루어졌던 곳에서 드러낸 갈대의 뿌리는 직경이 10cm 이상으로 2m 이상을 땅 속 깊이 파고들어가 있었다. 그 뿌리를 키워주던 질 좋은 모래는 가히 산을 이룰만큼 풍성하고 드넓어 갈대밭과 단무지밭이 광활하게 펼쳐져있기도 했다.
 

 

4대강사업은 고이 자던 백마강을 난데없이 흔들어 깨워 2년째 강바닥에 대못을 박고, 강길에 콘크리트를 바르고 있다. 천년역사가 한 순간 분칠로 다시 살아나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영겁의 세월동안 말없이 흐르며 선사와 천년 백제를 지나왔고, 송시열 선생의 뱃길을 채촉해왔던 금강. 금강이 흘러왔던 역사처럼 미래의 시간을 유유이 흘러가도록 우리가 할 일은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는 산하에 대못을 박아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던 일제의 만행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태그:#금강트래킹, #녹색연합, #4대강, #백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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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교육, 생태관광을 연구 기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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