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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삼식아. 윷을 내야지. 빽도를 내면 어떻게. 김사장은 윷도 제대로 못 던지는구먼."
 

 

설날 당일인 3일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장에서는 윷놀이가 한창이었다. 4명이 한 팀을 이뤄 윷을 던졌다. 김씨가 던진 윷가락이 모가 나오자, 팀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윷가락이 윷판 밖으로 벗어날 땐 비난이 쏟아졌다.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인 것만 빼면 전형적인 명절날 큰댁분위기였다. 난방이 되지 않는 홍익대 문헌관 1층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에도 설날의 훈훈한 분위기로 데워졌다. 

 

홍익대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첫 명절

 

윷놀이를 지켜보던 정씨(60)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정씨는 다른 조합원들과 달리 유독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노동조합, 투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아온 그녀는 60번째 명절을 농성장에서 보내고 있다.

 

정씨는 작년 명절에는 남편과 함께 보냈다. 술을 유독 좋아했던 남편은 작년 말에 집을 나갔다. 자식들은 벌써 시집, 장가를 가버렸다. 시집간 딸들은 시댁에 가서 오기가 어려웠고, 삼성에 입사한 막내 아들은 설날 당일에도 출근을 했다. 혼자가 된 정씨는 언니네 집에서 머물고 있다.

 

혼자 명절을 보내고 있는 정씨가 안 돼 보였는지 정씨의 언니는 그녀에게 빈대떡을 부쳐주고 나갔다. 정씨는 2일 날에는 혼자 빈대떡에 소주 한 잔 마시고 잠을 잤다고 했다. 그녀에게 설에 어디 갈 곳이 없냐고 물었다.

 

"친정에 엄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가면 뭐 해요. 동생들이 왔다가지도 않고, 나 홀로예요. 아들도 따로, 딸도 따로. 우리는 아저씨가 술을 좋아해서 인연이 다 끊어졌어요. 이젠 조합원들이 가족같다."

 

 

정씨에게 170명의 가족들이 생겼다. 지난 1월 2일 농성을 시작한 이후부터 이들은 함께 찬바닥에서 자고, 함께 밥을 먹었다. 정씨는 설날인 3일에는 15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명절을 맞았다. 날라리외부세력에서 세배를 하기 위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오는 이도 있었고, 사과 2 박스, 믹스커피 등 명절 선물을 사서 오는 이도 있었다.

 

2일 날에는 나물, 전, 갈비등 설음식을 싸들고 온 이들도 있었다. 서복덕(59)씨는 "말한 적도 없는데, 자꾸 음식들, 물건들을 가져온다.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과와 믹스커피를 사가지고 온 고미래(32)씨는 "트위터를 통해 보내주신 성금으로 물건을 사왔다. 우리들끼리 홍대 농성장은 한 번 오면 벗어날 수 없는 아름다운 늪이다"고 말했다.

 

두리반의 두 번째 설날

 

민족의 대 명절 설날을 맞은 두리반은 어떨까? 세입자를 내쫓으려는 대형 건설사와 용역업체에 맞서 칼국수집 두리반이 농성 시작 407일, 단전 199일 만에 벌써 두 번째 설날을 맞았다.

 

2011년 설날, 기자가 찾은 홍대입구 역 근처 두리반 1층은 적막했다. 밖에서 들리는 버스와 자동차 소리, 행인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그나마 난로 위 큰 냄비에서 물 끓는 '쉬' 소리가 그나마 적막을 조금 걷어내고 있었다. 

 

2층에 올라가서 두리반 사장 안종녀씨의 남편 유채림씨를 만날 수 있었다. 유씨의 부르튼 입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건강을 묻는 질문에 유씨는 "건강에는 이상 없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입술이 부르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나마 어제 오늘 날씨 정도면 좀 살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  한달 내내 지속된 한파에서 얼마나 고생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 해 설날에는 주로 지인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그 분들이 돌아가고 나자 '혹시나 용역이 갑자기 들이닥치지 않을까'하는 불안함이 가득했었다"고 지난 설날을 기억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와 올해 설날은 비교가 된다. 올해는 마포지역 주민들과 홍대 밴드들이 찾아주셨다. 든든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자가 두리반을 찾았을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질긴 놈이 아니라 즐기는 놈이 승리한다."

 

이들은 농성장에서의 설날을 즐기고 있었다. 2일 저녁, 유씨는 두리반을 찾은 9명의 식구들과 함께 떡국을 나눠먹었다. 저녁에는 윷놀이가 예정돼 있었다. 유씨는 "저번 명절에는 이런 것(행사들이) 없었는데 활동가들이 기획해서 연휴 내내 작은 행사를 할 것"이라고 했다.

 

2년 전 두리반은 설날 연휴 내내 쉬었다. 이번 설날에도 두리반은 여전히 쉬고 있는 중이다. 이전 설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연휴가 끝나면 장사가 아닌 농성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두리반 대책위는 '다시 두리반이 문을 여는 것'과 '세입자를 마구잡이로 내쫓은 것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두리반에서 언제 다시 칼국수와 보쌈을 먹을 수 있을지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올해 설날에는 3100만 명이 고향을 찾았다. 해고된 청소노동자들과 두리반을 지키고 있는 유채림씨는 농성장을 지켰다. 한 여성청소노동자는 "지금 상황에서 고향을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이들에게는 농성장이 곧 고향이었다.

덧붙이는 글 | 구태우, 김재우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설날 농성장, #홍익대, #청소노동자, #두리반, #유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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